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 민구 Aug 08. 2022

봄이 오면

자장가 track #01




밤 열시는 중요한 시간이다. 아이들에게는 성장호르몬이 나오는 시간이라고 가르치며 급히 이를 닦이는 시간이고, 온몸의 에너지가 거의 바닥나 절전 모드로 진입하는 시간이다. 방전을 막기 위해 야식이 생각나는 시간이기도 하고, 땀에 젖은 아기띠를 다시 차고 셋째와 넷째를 재우며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시간이기도 하다.  



열 시엔 형광등을 끄고 누릇한 조명을 켠다. 토실한 아가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고 자장가를 부른다. 그 나지막한 자장가 소리가 고요함을 간지럽히면 내가 잠이 들 것만 같다. 어제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아기를 안아 자장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가 언제 나왔는지 거실로 쪼르르 달려와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



어떻게 된 일인지, 아이들이 노래 가사를 다 알고 있었다. 이젠 음정도 얼추 맞추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당직이나 훈련이 아니면 매일같이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던 것도 벌써 6년이 지났다.


어떤 집 아이들은 저녁만 되면 피곤하다고 알아서 스르륵 잠들기도 하던데, 우리 집 아이들은 워낙 예민 한터라 재우는데 애를 많이 먹었다. 첫째 키울 때는 밤새도록 우는 아이를 달래다 아침 해가 뜨고 서야 같이 잠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밤새 아이를 안고 온 동네를 돌며 자장가를 부르곤 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들은 자장가로 불렀던 열댓 곡의 노래를 수천 번은 들었을 테고 어쩌면 아직까지 외우고 있지 않는 것이 이상할 일이었다.


특히 '봄이 오면'이라는 노래는 첫째의 주제곡으로 정해서 불러줬던 노래이다. 첫째는 3월생이었고 '봄에 태어나는 아이'라는 뜻으로 '봄나'라는 태명을 지어줬었다. 봄나를 위해서 태중에서부터 젖먹이를 지나 어린이가 된 지금까지 즐겨 불렀던 노래가 '봄이 오면'이었다. 사실 자장가로 작곡된 노래는 아니었을 텐데, 특유의 서정적인 가사에 부드러운 멜로디는 자장가로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밤새, 그것도 매일같이 부르던 그 노래가 지겨워질 때면 나름대로 편곡도 하고 애드리브도 넣기도 했다. 보사노바풍 '봄이 오면'에서부터 댄스곡풍, 발라드풍, 2배속 버전, 0.5배속 버전, 돌림노래 버전 등 다양하게 불렀는데, 그걸 들은 아내는 "이 노래가 이렇게까지 풍성하네"라며 입꼬리를 올렸었다.


생각해보면 재우는 일뿐만 아니라 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지치고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 아이들에게 부모에게서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독립하며 손이 덜 가는 시기는 올 것이다. 초등학생만 되더라도 부모보다 친구가 좋아 같이 산책도 안 나가려고 하는 애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때가 되면 지금이 그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안고 싶을 때는 언제든 마음껏 안아서 밤새도록 자장가를 부를 수 있지만 그때가 되면 아빠 징그럽다며 도망가기 바쁠 것 아닌가.


몇 년이 지나 아이들과 산책을 나가 '봄이 오면'을 불러주면 아이들은 노래와 겹쳐지는 오늘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노래에 오버랩되는 아빠의 체온과 정성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또 그게 내 아이들에게 평생에 둥지가 되고 힘이 되어 어려움이 올 때마다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지금 이렇게 지친 몸 이끌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시간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장에 지겹도록 부르던 자장가에 다시 한번 정성이 깃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도록 최대한 부드럽고 다정하게 불러주고 싶었다. 2배속, 댄스곡풍 그렇게 말고. 제대로 불러주고 싶어졌다. 아이들이 댄스곡 버전 '봄이 오면'만은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오늘 밤도 '봄이 오면'을 부르는 동안 진달래 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잠드는 아이들로부터 힘을 얻고 내 삶의 봄 날은 지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매거진의 이전글 빨리, 안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