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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ul 25. 2022

빨리, 안돼

안돼 안돼 하지 마, 빨리빨리 얼른



대통령 연설문 같은 것을 분석할 때, 어떤 단어가 몇 번 들어갔는지를 가지고 그 연설의 방향과 중점을 파악하곤 한다. 가장 많이 언급하는 그 단어가 그 사람의 생각과 철학을 나태 내기 때문이다. 많이 언급하는 단어가 곧 철학이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하는가- 생각해보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 반성하게 된다. 난 아주 못났다.





//빨리, 안돼.//


큰아이들에게는 늘 바쁘고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빨리]를 주문한다.


"준돌이들 얼른 샤워하자. 옷 벗고 들어가. 어서. 빨리~ 얼른~!!"

"아빠가 몇 번 말해~!! 얼른 들어가! 빨리!"

"들어갔으면 물 틀어야지 뭐해 어서!"


나에게는 11시 전에는 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 한다는 제한시간이 그어져 있다. 그래야 그 이후에 집안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잠도 잘 수 있다. 마음이 너무 급하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정말 너무 급하다.


다시 생각해도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하고 미안하지만 그래도 너무 급하다.




작은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이 늘 험하다는 이유로 [안돼]를 반복한다.


"쌍둥이들~ 그쪽으로 가지 마, 안돼 위험해"

"그거 만지지 마 큰일 나. 안돼 하지 마"

"아냐 아냐 그거 안돼, 그렇게 하지 마 안돼"


아이들을 하나하나 전담 마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엔 정말 바쁘고 급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아이에게 멀리서 외치는 소리는 안된다는 말이 대부분이다.


아이의 인지능력과 정서 발달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안돼]를 남발한다. 하지만 정말 아이를 계속 안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서 안된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만 같다. 듣는 아이도 문제지만 말하는 부모도 참 숨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뭐하는 아빠일까. 나는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게 이쁘게 잘 자라 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아마도 부모가 버거워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을 아이들이 좀 봐주고, 또 이해해주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배우고, 아이들로부터 느끼고,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인간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하는 잘못된 행동을 통해 나의 언행을 돌아보고, 아이들의 표정과 긴장도를 통해 나의 자질을 돌아보고, 아이들의 건강과 옷가지를 보며 나의 세심함을 가늠해볼 수 있다.


거의 모든 항목에서 나는 재수강이다. 합격선에 걸쳐있는 항목이라곤 가끔 다른 아이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자연놀이를 시켜주는 정도일 것이다.


왜 그토록 수없이 많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가. 족한 나 스스로를 깨달으라고 하나님께서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주셨나 보다. 아마, 이렇게 부족하고 무능한 스스로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몇 명 더 주실 지도 모르겠다.


며칠간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에게 '빨리'와 '안돼'를 하지 않고 주말을 보내봐야겠다. 부족한 아빠. 아빠 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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