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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un 28. 2022

여섯 명이면 호텔방을 두 개 잡아야 하나?#03

그래서 캠핑카를 빌렸지



파도소리를 반주삼아 갈매기가, 노래를 아주 못 부르는 갈매기가 잠을 깨웠다.


1, 2, 3층으로 되어있는 캠핑카 침실을 둘러보니 가족 모두 자고 있었다. 전날 묵었던 해변은 너무 조용하고 한적해서 아침은 좀 색다른 곳에서 맞이하고 싶었다.

 

팝업텐트만 접고 시동을 걸었다. 가족들이 깨지 않게 슬금슬금 차를 몰아 근처에 만리포 해변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잠에서 깨어 넓은 백사장과 파란 하늘을 맞이했다. 날씨가 참 잘했다.


날은 뜨겁고, 바람은 선선하고, 물은 시원했다.

사람은 적당했고, 갈매기는 많았고, 우리는 여섯이었다.


서둘러 아침을 차려먹고 해변으로 내달렸다. 생각해보니 바다에 캠핑을 오면서 수영복도 안 챙겼다. 이- 무슨 호텔 수영장도 아니고, 뭐가 중요할까.


아이들을 벗겨 팬티만 입혀 놓으니 얼추 해수욕 패션이 완성되었다. 특별히 뭐라 언급할 것도 없이 자기들끼리 준비운동을 하고 해변을 뛰어다니며 한 걸음씩, 한 뼘씩 물속으로 들어갔다.



까르륵까르륵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신난 게 분명해 보였다. 물은 빠지고 있었고 점점 넓고 완만한 모래사장이 만들어졌다. 첫째부터 넷째까지 여기저기 뛰고 기며 물과 아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를 만들어냈다.


해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오가며, 파도에 넘어지고 햇볕에 그을리면서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지친 줄도 몰고 놀았다. (나는 내가 지치는 것이 느껴졌는데)



캠핑카 외부에 샤워기를 연결하고 모래를 씻겨냈다. 숙소까지 걸어갈 필요도 없었고, 모래사장 바로 옆에 세워놓은 캠핑카까지만 가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뭐 그렇게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말끔해진 아이들에게 보송한 옷을 입히려고 보니 벌겋게 달아오른 살갗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팔뚝이 후끈거렸다. 또 이렇게 한 꺼풀 벗겨지겠구나- 싶었다.


다시 주린 배를 채우려 차를 몰았다. 만리포 위에 천리포로 향했다. 항구에 고깃배들이 있어 회를 좀 먹을까 했는데, 마침 낚싯배가 정박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배로 다가갔다. 구경만 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무언가 한다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 같았다.


"아저씨 많이 잡으셨어요?"  말문을 띄우고 물고기를 좀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 막 잡아온 활어를 네 마리 샀다. 그러면서 선장 아저씨에게 배를 구경시켜줄 수 있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출렁거리 배에 올라 여기저기 구경도 했고, 물고기도 만져보았다.


배를 보내고 낚싯배에서 잡은 물고기를 가지고 횟집에 가서 회를 떠달라고 하니, "그건 요즘 맛없어서 못 먹어"라며 회를 안 떠주신다. 그냥 떠줄 법도 한데, 몇 번을 물어보아도 절대 회를 안 떠주신다. 회에 진심이신가 보다.


어쩔 수 없이 네 마리를 바다에 풀어주었다. 간재미(가자미) 올라간 입꼬리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비웃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구경만 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히 뭔가 해서 돈만 날려버린 것 같은 갯벌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뭐 배는 타보고 물고기는 만져봤으니까.. 라며 합리화를 시도했지만 간재미의 입꼬리가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우리는 바다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 위에 저속으로 캠핑카를 달리며 집으로 향했다.


사실 진짜 여정. 진짜 힘든 시간은 이 해수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쓰자 하면 쓰는 나도, 읽는 사람도 피곤해질 것 같아서 쓰지 않겠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일상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아내와 아이들 가슴에 바다 한 페이지 겼으니까, 그걸로 됐다. 고생은 했지만- 갔다 와서 너무 무리했는지 병은 났지만- 잘 갔다 왔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눈 감으면 생각나는 파란 바다, 파란 하늘, 파란 아이들의 눈동자.

앞으로도 휴가가 된다면 호텔이 아니라 캠핑카를 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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