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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ug 09. 2022

적당히 좀 해

적당히 하라는 말의 이중성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상호 상승작용으로 텐션을 쭉쭉 끌어올린다.


별것도 아닐 텐데,


아이들이 만드는 열기와 소음은 괜히 스트레스 가득한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적당히 좀 해!"


나는 또 못난 돼지마냥 '꽥-!' 하고 소리친다. 진짜 무슨 이솝우화에나 나올법한 심술궂은 돼지 같다. '꽥-!'


별것도 아닐 텐데 난리를 치는 아이들과

별것도 아닐 텐데 아이들을 다그치는 나


적당히 하라는 말을 내뱉을 때는 "지금 난리 치는 건 적당히 하라"는 의미인데, 생각해보니 목적어를 빼고 습관적으로 전달하는 '적당히'라는 말의 의미가 참 위험하다.


적당하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몰입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적당하다'라는 것은 부정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즉, 적절하다는 의미의 '적당'이 아니라 대충 한다는 의미의 '적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36년을 살면서 이뤄왔던 어떤 성과들은 '적당히' 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수학의 정석을 후두려 패고 씹어먹었을 때에도, 학술대회에 나가겠다고 매일 같이 밤을 새우며 수십수백의 책과 논문을 읽었을 때에도, 쌍방훈련에서 상대편을 이기겠다고 이 아득바득 갈면서 준비할 때도 '적당히'보다는 '미친 듯이'했었다.

 

오히려 '적당히' 했었던 것들에서는 '적당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적당히'는 하겠다는 것은 실제로는 '안 하겠다'라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당하다'라는 것은 목욕물의 온도가 적당하거나 순댓국에 간이 적당하다는 정도로만 쓰여야 할 것일진대, 내가 마구 솟아나고 날아올라야 할 아이들을 '적당히' 찍어 누르면서 아기코끼리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만치 앞에서 성장이 끝날지- 아니면 저 우주 멀리 목토천해명을 뚫고 뻗어나갈지 말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내가 강화유리 방탄유리 고릴라 글라스 천장을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내 앞에서 말이다.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도 현명한 아내가 옆에서 지도해주었다. (또 혼났다고 해야 할까)


생각 없이 뱉은 말 한마디가 아이를 가두고 옥죄지 않도록 그냥. 내 멘탈을 포기하고 '허허허'하고 웃고 있어야 하는 것일지, 아니면 아이들을 '적당히'라는 감옥에 투옥시키지 않게 내가 '적당히' 조절을 해야 하는 것인지.


따지고 보니 '적당히'가 필요한 건 아이들이 아니고 나였구나. 하는 생각이 글을 쓰다 보니 들었다. 역시 쓰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는 참 좋은 도구다.


이제라도 알게 된 좋은 사실을 브런치로 남겼으니, 이쯤에서 적당히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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