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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Aug 26. 2022

그만 낳을 결심

그리고 안 낳을 결심


여섯 식구


이제는 주변에서 더 난리다. 심지어 비뇨기과를 예약해주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여기가 잘한다더라, 저기가 잘한다더라, 내가 해보니 별로 안 아프더라- 하면서 나의 수술을 종용한다. 더는 안 된단다. 실제로 지금 네 명을 키우는데 "혹시 하나 더?"를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막막한 것도 없다. 내 나이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는데, 다시 임신, 출산, 육아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삼 년만 고생하면 아이들 대충 말귀 다 알아들을 테고, 알아서 걷고 먹고 옷도 입을 텐데. 그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내고 있는데 말이다. 이제는 좀 처분하고 싶은 신발과 옷들, 장난감과 육아용품들도 집에 수두룩하다. 특히 신발이나 옷들은 가장 작은 사이즈에서부터 큰 아이가 사용하는 사이즈까지, 계절별로, 용도별로 가지고 있으니 신방장이며 옷장이며 언제나 가득.


이제 막내둥이들만 재탕 삼탕으로 사용하고 나면 내복이든 크록스든 장난감이든 다 처분할 생각에 들떠있는데, 만일 다섯째를 가지게 된다면 이를 어쩐단 말인가. 작은 집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보행기며 유모차며 범보 의자며 하는 것들은 이제 우리 집에서 나가줘야 하지 않을까.


버티고 있다고 표현한 게 좀 미안하긴 하다.


아이들 얼굴 보면서, 대화하면서 지내는 시간들은 정말 흩뿌려 놓은 보석처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말이다. 오늘 아침에 등원을 시키면서도 아마 그 보석 같은 미소를 100개쯤 주어 담았던 것 같다. 먹으라고 준 우유팩을 신나게 흔들어 2mx2m 정도의 우유 세상을 만들어 버리고 그 안에서 온 몸에 우유 범벅을 하고 재밌게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정말 화가 났다가도 너무 이뻐 카메라를 들이민다.


난리 초반


이제는 대화가 제법 통하는 첫째, 둘째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안 봤지만 아마 그보다 나의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이 50배쯤은 더 재미있을 것이다. 생각도 못했던 재미있는 상상과 강원도 인제군 산 59번지에서 흘러내려올 것 같이 투명하고 맑은 아이들의 마음은 그 자체로 너무 귀하고 좋은 것이다.


비록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 위에다 온갖 장난감 다 펼쳐놓고 네 마리가 뒤섞여 놀고 있는 모습은 정말 보기에 좋은 것이다. 그 뒤로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아침볕이 아이들과 어우러지면 정말 한 편의 영화 같은 장면들이 펼쳐진다. 엄마도, 아빠도 찾지 않고 자기들끼리 노는 그 기특하고 행복한 모습.


버티고 있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마 즐기고 누리고 있는 것일지도. 이런 행복을 요즘 누가 누리겠는가. 누가 즐기겠는가.


가끔 아이들 돌보며 입꼬리가 올라가다 올라가다 올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섯째 생각을 하게 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실언을 하기도 한다.


"여보, 다섯째 낳으면 걘 또 얼마나 예쁠까. 어머어머 나 미쳤나 봐!!"

"딸이 하나니까 좀 그렇네. 다섯째를 낳으면 딸이었으면 좋겠다. 아아아- 내가 무슨 소리야!!"

"하나 더 낳으면 차를 뭘로 바꿔야 하나? 애들 어린이집 등원할 때 오는 그런 큰 차 있잖아?"


우리 부부는 종종 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독서실에서 졸다 흘린 침을 빨아들이듯 급하게 말을 주어 담곤 한다. 


노란옷은 우리집 애 아님


아마 미친 거겠지 싶다. 너무 좋으면 미치는 그런 거- 어떤 사람이 운동에 중독되고, 음악에 빠지고, 연예인 팬클럽이 되는 것처럼 너무 좋아서 그걸 안 하면 못 배기는 그런 상태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실로 많은 노력과 희생, 비용과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그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하고야 마는 기쁨이 있으니까.


그래서 어떤 날은 "이젠 진짜 더는 절대 정말 안된다."라고 생각하다가, "하나 정도는 혹시 아마 음, 괜찮을지도?"라는 생각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만 낳을 결심]은 어떻게 보면 6년째 달고 다니는 [살을 뺄 결심]이나, 주 2회는 먹어줘야 하는 [치킨 끊을 결심], 군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사는 [전역할 결심]처럼 가깝지만 어렵고 번복을 반복하며 고민을 고민하는 그런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연 살을 뺄 수 있을까, 치킨을 끊을 수 있을까, 전역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이를 그만 낳을 수 있을까.



요즘 사람들은 아이를 안 낳는다. 합계출산율이 0.6까지도 내려갔다고도 하고- 정부 예산을 000조를 썼다고도 한다. 아마 국가적 위기상황이고 대단한 관심이 있는 분야이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를 본다면 아이를 공무원 외벌이에 아이 넷을 못 키울 것도 아닌데, 아이를 낳는 데 있어서 돈만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안 낳아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아이를 안 낳는 사람들이 어떤 중대한 결심으로 아이를 안 낳을 결심을 하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큰 행복을 포기하는 것을 보면 그들도 정말 엄청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이다. 정말이다. 내가 맞다, 그들이 맞다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심의 크기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넷을 낳고 또 하나 더 가지고 싶어 하는 나의 결심이나, 그들의 안 낳을 결심.


여하튼 나는 그들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만 낳을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일지, 하나만 더 낳고 그만 낳을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참 어려운 고민이다.



더 낳을지 고민, 그만 낳을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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