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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Nov 10. 2022

시작은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끝은 내가 끝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끝이 아니라는 게 장점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지 두 달이 넘으니 어플에서 '내 글을 보고 싶으니 돌아와 달라'라는 애처로운 협박성 메시지가 나타났다.


"내가 몸이 세 개면 글을 썼지 짜식아"


내 사정은 알지도 못하는 브런치의 얄미운 알림에 약간의 짜증과 함께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끓었다.

 

현재는 글을 쓰기에 부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가르치면서 나 스스로도 내면화하고 있는 이 "뭘 할 때는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였다. 가령 밥을 먹는 아이들에게는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것에 집중을 해야지, 돌아다니거나 TV를 보면 안 된다' 라거나, '놀 때는 노는 것에 집중을 해야지, 흐리멍텅 하게, 쭈뼛쭈뼛거리면서 놀면 안 된다'라는 식의 훈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내 삶으로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에 나 역시도 매 순간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글을 멈춘 두 달하고 보름 동안도 그런 시간이었다.


4주 간의 훈련을 떠나면서는 훈련에 집중했다. 훈련 중 개인 시간이 생길 때, 예를 들면 잠들기 전이나 화장실을 갔을 때, 점심식사 시간에는 '성경을 읽겠다'라는 다짐으로 훈련하는 4주 동안 성경을 완독 했다. 그 훈련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2주 간의 휴가를 보냈는데, 그동안 밀렸던 대학원 과제와 시험에 밤낮으로 몰입했다. 육아와 가사를 하는 시간 외에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했다. 휴가가 끝난 후에는 또 부대 업무에 밤낮으로 전념하며 어두울 때 나가서 어두울 때 들어오는 시간을 반복하고 있다.


집중 후엔 보람과 성과가 따라오고, 그 기쁨은 잠을 줄이고 쉬는 시간을 쪼개며 달려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 메커니즘으로 매 순간 우선순위 1번이 먹여지는 과업에는 몰입하며 남들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다. 앞서가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정도 해야 겨우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고 허우적거리며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뻔히 알고 있는 공무원 월급 외벌이로 여섯 식구가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가 걸려있고, 자기 계발을 지속하지 않으면 내 미래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도 걸려있다. 육아와 가사는 아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취미생활을 끼워넣기란 대단히 곤란한 것이었다.


직장 동료나 선후배들을 보면 내 나이 전후로 해서 가장 왕성한 취미생활들을 하던데, 이제 나에게는 변변한 취미생활 하나 없다고 생각하면 대단히 씁쓸한 일이다. 글쓰기가 유일한 취미는데, 지난 두 달 간은 그마저도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그러다 이제 키보드를 잡았다. 그리고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자,


시작은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시작이니까 말이다. 심지어는 돈이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도 상관없다. 시작을 마음에서 시작하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롤스로이스를 모으는 게 취미야!'라고 한다면, 인터넷에서 롤스로이스를 검색하는 것으로 간단히 시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마음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마음먹기만 잘할 수 있다면야 시작은 언제든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한편, 끝은 내가 끝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끝이 아니라는 게 장점이다. 일단 시작해서 벌려놓은 일은 내가 "끝."이라고 말하기 전 까지는 보류, 대기, 관망 중-이라는 식으로 끝을 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롤스로이스를 모으는 일도 내가 끝내기 전까지는 열 대를 모았든 한 대를 모았든 아직 한 대도 모으지 못했든 끝나지 않은 것이다.


모든 일이 시작도 어렵고 끝맺기도 어렵다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참 쉽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은 여유가 없어서 글을 못쓰겠다는 쭈글이 같은 마음을 접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집안일이 끝나고 새벽 두 시지만 내가 마음만 먹으면 시작이니까- 시작됐다. 다행이다. 브런치 휴면계정이 되기 전에 다시 시작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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