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로 간신히 눈물을 훔치고 두 용기에 나눠 담은 파를 냉장고 야채칸이 아닌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정성스럽게 놓는다. 아무래도 한 칸 아래가 아내 눈높이에서는 더 잘 보일 것 같아 위치를 고쳐 잡는다. 됐다.
아내에게 칭찬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마지막으로 파를 다듬으면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와 하루 만에 가득 찬 20L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온다. 아무래도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이 들었다.
파를 다듬으며 들었던 아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정리해보니 암컷 앞에서 꼬리춤을 추는 극락조나 먹이를 가져다 바치는 수컷 거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약간 더 우회적일 뿐. 내가 새벽 두 시에 파를 다듬는 행위가 한 편의 춤사위와도 오버랩되었다.
아내가 연상인 탓도, 토끼띠인 나에 비해 호랑이띠인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남자들이란 아내의 칭찬을 들으려고 안달이 난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주의적인 남편조차도 아내의 인정과 존경이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 무척 노력하는 것이지 않을까.
상대적으로 아내에 대해 열세한 나의 모습은 생각해보니 또 있다. 하루에도 두 번 정도씩 나를 긴장하게 하는 그 단어.
"여보!"
아니 뭐 사실 별것도 아닌 부부간의 호칭인데, 왜 아내가 '여보'라고 부르면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딱히 잘못한 것도 숨기는 것도 없는 나같이 착한 남편이 무서워할 만한 상황은 아닌데 말이다. 그저 그냥 '여보'라고 부르기만 하면 나의 지난 10분, 1시간, 하루를 되돌아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거의 모든 상황에서 잘못한 것이 없어 아무 일 없이 지나가지만 말이다.
아내는 그냥 나를 부르는 거라고 한다. 혼내려고, 지적하려고, 문제가 있어서 부르는 게 아니고- 그냥.
그래서 아내에게 부탁을 좀 했다. 다정 혹은 상량하게, 혹은 친절하게 좀 나를 불러달라고. 나 너무 당황스럽고 깜짝 놀란다고. 나는 여전히 당신에게 숨기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아내도 그렇게 부드럽게 불러주겠노라고 나에게 약조하였다.
하지만 내일 아침은 아내가 또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여보!"라고 불러주길 바란다. 분명 깨끗하게 치워진 부엌과 잘 다듬어진 파를 발견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비록 아내를 위해 파를 다듬느라 새벽 두 시에 눈물은 흘렸고, 그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글은 쓰느라 잠은 좀 덜자지만 그래도 오늘 밤은 좋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잘 깨지 않고 잠을 잔다. 곤히 자는 아이만큼 천사 같은 모습은 없으리라.
네 아이 잘 자는지 확인만 좀 하고 자야겠다. 아내에게 바치는 파이어, 내일 아내 눈에 잘 띄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