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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왔다고?

아들 교육

by 아빠 민구


퇴근 후 소소하게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던 중 둘째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지난번에도 괴롭혔던 00이란 아이가 오늘도 때렸다고.

아내는 급발진하려고 RPM을 올리는 나를 자제시켰다.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묻는 아내의 질문이 이어졌다.


00이란 아이는 같은 바둑학원 다니는 동급생인데 주먹으로 팔을 때리거나 발로 다리를 찬다고 했다. 나는 열이 뻗쳐 올랐다. 아이가 맞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도 화가 났지만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더 그랬다.


나는 어린 시절 맞고 다녔다. 특히 초등학교 3~6학년 사이에 그랬다. 가난하고 지하실에 산다는 이유로, 옷이 후줄근하다는 이유로, 신발이 구리다는 이유로, 표정이 우울하다는 이유로. 키가 작고 왜소했던 나는 어떤 아이들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주먹질을 하고 걷어차고 뺨을 때렸다. 그때의 기억이 나서 둘째 소식에 급발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물론 내일 바둑선생님을 찾아가 보겠다고 했지만, 아이가 스스로부터 잘했는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먼저 그 친구를 불편하게 한 건 없는지 말이다. 잘못된 점을 말하러 갔다가 되려 우리 집 아이가 잘못된 원인제공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아이에게 수 차례 주지시켰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일단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생각해보고, 그런게 있으면 고치겠으니 일단은 학원에 오지 말라고 했다.


그다음 화살은 첫째에게 쏠렸다. 우리는 동생이 맞고 있을 동안 도대체 뭘 했냐며 첫째를 타박했다. 첫째도 하지 말라고 말은 했다지만, 첫째의 온순하고 평화주의적인 성격상 큰소리는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을 것이다. 형제는 서로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하는 것이라며 아내의 교육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우발적 언어폭력을 참아 넘긴 나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나의 생생한 경험담에서부터 베게티우스의 군사론까지 꺼내 들며 교육했다. 단호하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대처하라고 알려줬다. 경고 이후에는 싸우면 큰일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팔을 잡아 제압하거나 비례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정당방위도 서슴지 말라고 가르쳤다.


경고에도 멈추지 않으면 엄마가, 그다음엔 대책 없고 브레이크도 없는 아빠가 출동할 것이라는 것도 말해줬다. 장난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몇 번이나 긴장시켜 가며 눈 똑바로 뜨고 단호하게 말하는 방법과 발성까지 지도했다. 형제가 위험에 빠지면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시 아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그래도 세상엔 이해할 수도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충돌은 피할 수 있으면 무조건 피하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내가 다시 바통을 뺐어와 '저 멀리서 누군가 이상한 사람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은 개가 오면 언제든 걷어차버릴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아이들도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의 톤이 다른 교육이 교차교류되었다. 폭력을 경험해보지 않은 지혜로운 엄마의 훈육과, 폭력을 경험해 본 군인 아빠의 정신교육 사이에서 누가 옳고 그르냐의 경쟁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핑퐁은 아내의 결정타로 마무리되었다.


아내는 성경 구절을 들어 침실에서 기도를 하며 아이들을 재웠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편 127편 1절)


아이들 네 명을 24시간, 365일, 평생토록 따라다니면서 지킬 수 있는 여건도 능력도 없는 주제에. 어쩌면 나 스스로도, 아이들 스스로도 지킬 수 없으면서. 내가 도대체 무얼 가르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완력과 의지로 뭔가 지키려고 한 나의 부족함과 미련함을 일깨우는 기도였다.


아직도 나의 살아가는 길은 멀고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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