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 자연의 법칙 중 하나는 모든 성장에는 고통이 따른 다는 것이다.
성장 없는 고통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신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그러기 위해서 어린아이들은 자라나며 성장통을 겪으며, 몸이 다 자란 성인들은 운동을 통해 신체적 발전을 일구어 낸다.
마찬가지로, 정신적 성장에도 또한 고통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성숙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성장해야만 한다. 어린아이의 몸은 별다른 노력 없이, 심지어 고통이 없이 성장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신체가 자란다고 정신도 같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살면서 경험하는 것들에 의해 성장해가기도 하며, 누군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정신적으로 성장을 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적 고상함이 성숙으로 가는 길은 또 아니다.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정신적으로 성장해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고통'을 통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재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뜨거운 불에 넣고 망치질을 해대며 그렇게 다듬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개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다. 신체적 고통은 눈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적 고통은 사람이 인지하지 못한 채 겪기도 한다. 피하고 싶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 마음대로 피할 수도 없다. 그저 그 고통 한가운데 처량히 놓이는 셈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정신적 고통의 도피처로 스마트폰을 선택한다. 스마트폰 안에서는 쉽게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 화면을 끄면 어떻게 되나. 화면이 꺼지는 순간 검정화면처럼 뇌 또한 블랙아웃된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화면 안에서는 자유로웠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 억압되어 있고 무언가에 구속받는다. 한마디로 비참한 것이다.
그 비참함은 또다시 연쇄적인 작용으로 또 다른 도피처를 찾게 만든다. 고통은 고통을 낳는다. 이러한 고통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향락을 선택한 대가이다. 더 큰 고통으로 빨려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성장의 매개체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고통에 맞섬으로써 결국에 그 고통은 성장의 촉매제로 작용하고, 그렇게 성장한 결과 진정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즉, 고통 이후에는 기쁨이 있다.
성장한 기쁨. 성장함으로써 얻게 되는 더 많은 부산물들. 성장은 또 다른 성장을 낳는다. 일종의 레버리지 효과이다. 더 큰 고통의 굴레로 빠져들고 싶지 않다면, 고통을 성장을 위한 촉매제로 사용하자.
그렇게 고통은 성장을 만들어낼 것이다. 성장하고 싶은가? 고통을 즐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