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한 사람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동시에 과거는 꿈을 좇지 못하게 그 사람을 옭아맨다.
어느 날, 한 사람은 언덕 위를 오르고 있는 누군가를 보았다. 양 어깨에 밧줄을 힘껏 움켜쥔 채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뒤로 늘어진 밧줄의 끝에는 커다란 돌덩이가 있었다.
돌덩이에는 밧줄이 칭칭 휘감겨 있었고, 언덕 위를 오르던 사람이 그 언덕을 오르려 할 때면, 밧줄이 이따금씩 팽팽해져 그 사람을 잡아당기고는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힘겹게 언덕을 오르면서 밧줄을 손에 꼭 쥐고는 절대 놓지 않았다. 얼굴에 흥건히 맺힌 땀을 닦을 때조차도, 양손을 밧줄과 함께 불끈 쥐고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곤 했다.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은, 바로 그 돌덩이가 그 이의 '과거'라는 것을 알아챘다. 저 이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저 무거운 돌덩이와 함께 언덕을 오르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외쳤다. "어이 형씨, 무거운 돌덩이를 어디에다 쓰려고 하는 거요?"
그러자 반대편에서, "나는 이 돌과 함께 저 산 위로 갈 거요.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이보다 좋은 돌을 보지 못하였소."라고 대답했다.
아득히 먼 산 꼭대기는 어스름한 안개 무더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그 남자는 맹렬한 기세와는 정반대로 아주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 돌보다 더 크고 좋은 돌이 저 산 위에 있을지 모르는 것 아니오? 나는 당신이 짊어진 돌보다 더 나은 돌을 이곳에 올라오면서 아주 많이 보았소. 그러니 그 돌을 내려두고 저 위에 있을 더 크고 좋은 돌을 향해 달려가보는 것이 어떻겠소?"
돌덩이를 짊어진 사람을 보며 반대편에서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 이 돌은 아주 많은 의미가 있소. 여기까지 올라오는 도중 절벽을 옆에 두고 발을 헛디뎌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뻔했을 때, 이 밧줄을 움켜쥐었기 때문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었소. 또, 사나운 맹수를 만났을 때도, 이 돌 뒤에 숨지 못했다면 나는 그 사냥감의 먹이가 되었을 거요. 그러니 나에게 이 돌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이 돌은 나의 목숨을 지켜주었고, 앞으로도 지켜줄 것이 분명하오."
"절벽을 지날 때에는 가뿐한 몸으로 돌덩이를 내려두었다면, 위험을 피할 수 있지 않았겠소? 사나운 맹수를 만났을 때는 그만큼 더 빨리 달리기 위해 밧줄을 내던지고 도망칠 수도 있었던 거잖소. 그러니 당장 빌어먹을 그 돌덩이를 내려두고 저 위로 내달리란 말이오. 당신의 그 기세라면 못할 것도 없어 보이는군."
그러자 그 남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아는 게 도대체 무어란 말이오? 당신은 지금 당장 맹수를 만난다면, 속절없이 맹수에게 물어뜯기고 말 것이오. 당신에게는 나와 같은 돌덩이가 없지 않소. 그 느린 발로는 절대 발 빠른 맹수에게서 벗어날 수도 없소. 그러니 나와 같은 돌덩이를 짊어지고 언덕 위를 올라야만 하오."
"맹수를 피하기 위해서는 돌덩이만이 필요한 게 아니오. 나는 지금 맹수를 만난다면 당장 내 옆에 있는 나무에 오르겠소. 주변을 둘러보시오. 우리는 나무를 다듬어 뾰족한 창을 만들 수도 있고, 절벽을 지날 때 내 몸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지팡이를 만들 수도 있는 법이오. 당신에게는 돌덩이가 전부이기에 그것만 바라보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어 보이는군."
그 남자의 얼굴은 한껏 굳어지는가 싶더니 서서히 맥이 풀린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는 이 돌덩이를 포기할 수 없소. 이제껏 이것을 지키기 위해 감수해 낸 것들을 생각하면 지나온 내 고생들이 모두 물거품이 돼버리는 듯한 기분이란 말이오. 나도 저 멀리 어디엔가는 이보다 더 나은 게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오. 그렇지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아니,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러한 것을 위해 지금 나의 안위를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오. 그래서 나는 이 돌덩이를 나르다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길을 가야 할 테요."
"당신의 생각은 잘 알겠소. 죽음을 무릅쓴 당신의 투지를 아주 높이 사오. 그러나 당신이 정말 죽음을 무릅쓸 수 있다면, 그 돌덩이를 잠시 내려 둘 용기는 도대체 어디 간 것이오?"
밧줄을 쥔 남자는 허공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길게 내쉬었다.
"당신의 말은 일리가 있소. 그러나 나는 손에서 이 밧줄을 놓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킨 듯 하오."
건너편에서 보던 이가 갖은 설득을 하였으나 돌덩이를 지닌 사람은 결국 그 돌덩이를 포기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