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늘 나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이 있다.
한 마리의 개.
진돗개, 나이로 치면 2~3살 정도. 이제 막 성견이 되었지만,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다.
그 개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 엎드려 신음하고 있었다.
몸을 웅크린 채, 어둠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때로는 무엇인가에 분노한 듯 낮게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방 안에는 오직 그 개 혼자뿐이었다.
어둠을 걷어줄 존재도,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줄 존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예수님인지, 하나님인지, 성령님인지 알 수 없지만,
강하고도 따뜻한 존재가 개의 목줄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그런데도 개는 여전히 낮고 깊은 울음을 토했다.
그 손길이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 개는 하나님께 빛을 보여달라고 간절히 외쳤다.
“이 어둠은 너무 힘들고, 너무 외로워요.”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어둠은 여전했다.
시간이 흘렀다. 개는 점점 이 어둠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답답하고,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개는 이제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울부짖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바로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방 한구석의 문틈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문틈 사이로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희미한 빛이었지만, 개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빛을 보았지만, 아직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빛을 본 개는 가슴이 뛰었다.
‘이제 드디어 나갈 수 있어!’
그러나 하나님은 목줄을 단단히 붙잡고 계셨다.
개는 조급해졌다.
“왜요? 이제 나갈 수 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문 앞에 서서,
그 개를 놓아주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개는 점차 차분해졌다.
빛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뛰쳐나가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개는 흥분하지 않고도 침착하게 빛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하나님은 목줄을 서서히 풀어주셨다.
개는 마침내 문 밖으로 나갔다.
세상은 아름답고, 자유로웠다.
그러나 동시에 살벌한 전쟁터였다.
개는 자유를 만끽하며 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투성이가 되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문 밖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했다.
자유를 원했지만, 그 자유를 감당할 힘이 부족했다.
터덜터덜 문 안으로 들어오면서 개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었다.’
그렇게 다시 하나님과 함께 머물며,
다시금 회복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개는 다시 문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 달랐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걸어나가셨다.
하나님은 더 이상 개의 목줄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
대신 나란히 걸으며, 길을 함께 걸어가셨다.
이제 개는 겉으로 보기에 이전과 같은 개가 아니었다.
눈빛이 변했고, 걸음걸이가 변했고,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건한 존재가 되었다.
그 개는 이제 단순히 자유를 꿈꾸는 존재가 아니라,
자유를 살아내는 존재가 되었다.
세상 속에서, 그 개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 갇힌 다른 존재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과 함께 걸으며 위로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하나님이 다루신 개는
진정한 자유를 아는 존재로 세상에 나타났다.
어두운 방에서부터 빛을 보기까지,
자유를 갈망했다가, 그 자유 속에서 쓰러졌다가,
다시 회복되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까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개를 떠나지 않으셨다.
자유는 혼자서 얻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과 함께 걸을 때 완성된다.
빛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뛰쳐나가지 않고,
자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걸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