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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면 Mar 27. 2022

림프 부종 환자의 조금 게으른 치료 후기 (2)

내게 금지된 모든 것들

  

 4개월 간의 약물치료 이후 한의원에서는 내게 입원 치료를 권유했다. 새로 나온 기계의 성능이 좋아서 치료를 받아보는 게 어떻냐는 것이었다. 2주 간의 입원 치료라…․ 이미 대학병원에서의 트라우마가 짙게 남아 있던 내겐 그다지 유쾌한 권유는 아니었으나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컸던 나는 남양주에 있는 한방 병원에 2주간 입원을 하게 되고, 입원 후 나는 살면서 최대치로 부기가 빠진 나의 오른쪽 다리를 직면하게 되었다.      


 열네 살 이후로 처음 보는 ‘날씬한’ 오른쪽 다리를 본 그날 아침, 결국 나는 눈물이 터졌다. 

오전 내내 침을 놔주시는 선생님들의 격한 반응에 따라 웃으며 치료를 받은 뒤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퀭한 몰골로 진료실로 불려 가 치료 후기 사진을 찍었다. (선생님께서 미리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어디선가 떠돌고 있을 나의 사진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     



여하튼 이번에 내가 하게 될 이야기는 나의 <조금 귀찮아진 일상>에 관한 이야기다.

뭐,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붕대를 감는 것보다 더한 귀찮음이 존재하진 않겠지만, 그리고

붕대에 비하면 지금의 내 삶은 귀찮은 것도 아니지만 아무래도 건강한 사람들의 일상보다는 좀 더 귀찮은 일상을 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기록했던 몇 가지 특이사항을 나열해보겠다.     



1. 열 받아 죽어도 맵고 짠 음식 금지     

 스트레스받으면 매운 엽떡으로 푸는 거, 주 2회 라면은 국 룰인 거, 매운 불닭에 참치 주먹밥 계란찜 등 저 화려한 라인업들과 영원히 안녕을 고해야 한다. 물론 사람인지라 어쩌다 한 번 먹을 수는 있다. 그러나 먹은 다음 날 바로 코끼리 다리로 절뚝거리며 출근해야 한다. 하루만 그러면 참 다행이다. 내 경험 상 3일 정도는 고생해야 했다.      



2. 음주, 흡연 금지      

 맛있는 음식에 진심인 사람은 맛있는 술에도 진심이다. 원래 술은 쓴 맛에 먹는 거라는 주당들 뒤로 그래도 이왕이면 맛있게 먹으면 좋지, 라는 ‘맛 잘 알’ 파가 등장하고 나의 알코올 시대는 시작되었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많듯이 맛있는 술도 많다. 그건 담배도 마찬가지다.     

 나는 병원신세를 지기 전부터 음주, 흡연 이후 많은 부작용과 통증을 경험한 사람이다. 금연 금주 이후 대학병원 진단을 받았다. 림프부종 환자에게 나눠주는 매뉴얼에 정확히 쓰여 있다.

음주, 흡연 절대 금지라고 말이다.     

혹시나 림프부종 질환을 겪는 사람들 중에 비흡연자, 알쓰들이 있다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너무나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쭉 사시라고           



3. 무리한 활동 금물     

 오래 서 있는 거, 오래 걷는 거, 다 금방 붓는 지름길이다. 누군가는 걷는 게 만병통치약이라던데 우리에겐 골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는 하루에 30분을 매일 걷는다. 걷는 시간을 40분으로 늘려보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나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바로 발등이 붓는다. 그러나 20대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저 조항을 완벽히 지키긴 어렵다. 고로 주말 하루 정도는 오전 10시까지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 그날 밤까지 퉁퉁 부어있던 발등이 가라앉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면서 말이다.          



4. 국물... 이젠 안녕     

얼큰한 감자탕, 라면 국물, 돼지국밥 김치찌개…․ 한식과는 뗄 수 없는 국물 조합과는 소원해질 필요가 있다. 본인이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면 먹어도 된다. 그러나 먹지 않았을 때와 먹었을 때의 차이를 실감하고 나면 맘 놓고 시키기 어려운 메뉴가 된다.     



5. 생리 증후군     

중학교 때부터 생리통이 무척이나 심했던 나는 생리 때만 되면 예민해지기 일쑤였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들을 다 때려 부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 기간에는 가급적 지인들과 대화를 자제했다. 그럴 정도로 예민했기에 깨달은 점이 있다. 생리 때가 되면 유독 부종이 심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생리 때 복용하는 진통제의 성분 때문에 다리가 더 부을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당시 부모님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해당 진통제를 복용 중이다. 온몸이 아파서 사물을 다 때려 부수는 것보다는 이미 친밀한 코끼리 다리를 며칠 더 끌고 다니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황금기에는 다리 부종도 확실히 많이 호전된다. 나는 그날 아침 발목 드러나는 청바지 고르며 희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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