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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면 Oct 30. 2022

코끼리 다리로 걸어본 세상


선천성 원인불명의 림프부종 진단을 받은 이후 내가 얻은 것은 [애매한 환자]라는 타이틀이다.     


-혹시 지금 몸이 죽을 것처럼 아픈가? 

: 아니오


-그렇다면 아예 걷지 못하는 것인가? 

: 아니오


-그럼 일상생활에 별 지장이 없는 것 아닌가?     

:.....          



 나의 병을 둘러싼 모든 질문에 매번 저런 식으로 대답을 하다 보니, 나는 스스로 아프지 않은 사람일 수 도 있겠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혹사시키기 일쑤였다. 예를 들면 겉으로는 너무도 멀쩡해 보이므로 힘든 일을 굳이 자처한다던가, 3-4시간 걸리는 장거리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따라나선다던가, 오래 앉아있거나 오래 걷는 것은 절대 금물인데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이 아쉬워 10분 거리 20분 거리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에 거부하지 않는다던지, 보통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나의 약점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아 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행동이 오히려 인간관계에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부터는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가까운 주변 지인들과의 동행에서 나의 이동 동선은 무조건 10분 이내로 줄였고, 쓸데없이 잦은 만남을 줄이고 좀 더 장기적인 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1박 2일, 2박 3일로 함께하는 여행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은 나를 일명 “바리바리 스타”라고 부르며 커다란 백팩에 들어찬 양쪽 다리 붕대 세트와 약봉투를 흐린 눈으로 넘겨주었다.     



 대한민국에서 29세 여성이 ‘코끼리 다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비극이다. 남들이 보기엔 코끼리 다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형태일 수도 있겠으나, 부풀어 오르면 그만큼 비슷한 형태도 없기 때문에 나는 내 다리를 코끼리 다리라고 지칭한다. (나만의 애칭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와 발목이 드러나는 원피스, 반바지들을 더 이상 입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감자탕, 국밥, 매운 라면을 밥 먹듯이 먹던 삶을 청산하고 샐러드와 물, 채소를 기본 식단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며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생리주기에는 온몸이 퉁퉁 붓고 밤마다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어떤 날에는 죽고 싶을 만큼 싫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코끼리 다리를 안고 살아간 3년이라는 시간은 비극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생애는 너무 지루하게 길고 길어서 60살까지만 살고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아”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달고 살았던 내겐 이 사건이 매우 큰 변수로 작용되었다.     



 1년에 한 번 입원하기도 어려웠던 내가 연 2회씩은 입원을 한다거나, 먹을 것을 못 먹어 환장한 사람처럼 굴며 절대로 야식 없이는 살지 못했던 내가 샐러드 식단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물과 채소만 밥 먹듯이 먹고 주말에 딱 한 번 먹을 수 있는 일명 [치팅데이]를 진심으로 고대하고 먹으면서 기쁨을 만끽한다거나, 예전에는 맛집을 굳이 빙빙 돌아서 찾아 나서다가 아픈 다리를 몰래 두드리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지도 어플 검색을 하고 5분 거리 이상은 단호하게 거절을 한다거나     



 가족들과 밖에서 함께하는 시간들이 매우 귀찮았던 완벽한 내향인이 이제는 함께하는 것의 가치를 깨닫고 먼저 약속을 잡는다거나.... 그런 변화들을 체감하고선 더 이상 이 ‘코끼리 다리’를 꼭 미워하지만은 않게 되었달까     


 어쩌면 나는 이제야 선천성이나 선천성인 줄 몰랐던 병에 대한 시간을 보상받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미 갖고 태어났으나 갖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마치 인류를 구하려고 태어났으나 환경적인 여건으로 그걸 알지 못하고 살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본인의 존재 이유를 각성하고 위험한 사건 속으로 뛰어드는 히어로 물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그러나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내가 이 병을 미워할 때가 반드시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나를 낳아준 엄마와의 시간을 보낼 때이다. 사람의 눈빛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그런 말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거짓말도 좀 할 수 있게 만들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선천성 원인불명의 림프 증후군]이라는 말은 분명 나를 울게 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한다. 

엄마는 내가 그 병의 진단을 받은 날 이후 내 생각을 하기만 하면 매일 울었을 거라고      



 선천성이라는 글자 하나로 내 병의 모든 잘못을 떠안게 된 엄마를 위해서라도 진단명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선천성보다는 특별성이라거나, 특이성이라거나, 그것도 아니면 선택받은 림프 증후군...     


그러면 적어도 내 진단명이  “귀하의 아이는 선택받은 아이입니다.”라는 말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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