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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면 Mar 27. 2022

<우회 가능합니다>

직진만이 정답은 아니니까

 


나는 올해로 스물아홉이 되었다. 

어딘가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사람의 기분을 참 이상하게 만든다.  

   

 20대 초반의 나는 당시 겨우 스물셋이었던 룸메이트 언니에게 ‘지는 꽃’이라는

철없는 말을 하기도 하고, 친언니의 서른 살 생일에는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기타 치면서 불러주기도 했으며 곧 다가올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채 서른에는

이미 결혼을 했지 않았겠냐고 친구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진 채 놀고먹기 바빴다.   




    


 물론 ‘지는 꽃’이라는 망발을 지껄인 지 불과 2년이 지나 당사자에게 똑같이 그 말을 돌려받기도 했고 나의 둘도 없는 친언니는 올해 나의 생일 축하 곡으로 <스물 끝에>라는 노래를 추천해줬으며 현재 내 곁에 남아있는 미혼인 동갑내기 친구는 단 한 명뿐이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여전히 응원한다. (지는 꽃 발언은 땅을 치고 후회 중이다)     



 20대 중반의 나는 앞만 보고 직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가족과 지인, 내 주변에 있던 모든 것들에게 둔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적당히 얕은 관계를 선호했다. 



그러나 20대 후반, 숨 가쁘게 달려와 도착한 나를 기다린 것은 목표점이 아니라 반환점이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끝도 없이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누군가를 향한 원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상실감에 사로잡힌 나는 1년 간 더 이상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전력질주를 하지도 않고 누군가를 경쟁상대로 삼고서 꼭 이겨먹겠다며 바득바득 이를 갈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 앞을 가로막은 장애물도, 흔한 라이벌도 없이 천천히 걷기 시작한 내 앞에 <우회 가능> 팻말이 보였다.    


 

사람 냄새도 맡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여유를 만끽한 나는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돌아가기를 택했다. 완치, 직진, 완벽주의, 계획충, 내가 일관성 있게 주장하던 모든 것들은 그렇게 스물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완벽하게 무너졌다. 완치가 되지 않았어도, 굳이 직진하지 않아도,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이젠 괜찮다.



나는 이제 적당한 타협과 수정 가능한 계획과 목표를 가진 채, 때론 많이 무겁지만 튼튼한 

<코끼리 다리>로 인생을 “우회” 해보기로 했으니까        



*우회 가능 : 곧바로 어떤 지점에 도달하기보다는 천천히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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