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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면 Mar 27. 2022

림프 부종 환자의 조금 게으른 치료 후기 (1)


 나는 2021년 9월부터 4개월간 임파선 부종 치료를 해왔다. 대학병원에서 완치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아 한의원으로 찾아간 지 4개월 만에 17kg 감량, 부기 완화, 피로 해소 등의 성과를 얻었다. 4개월이 지나고 난 뒤 나는 두 사이즈나 늘어났던 옷들을 다시 이전 사이즈로 구입했고, 260mm가 주를 이뤘던 신발들을 구석에 박아놓고 240mm 신발을 다시 꺼내 둘 수 있었다.     



그래서 완치가 되었냐고? 결론은 아니다. 완치는 되지 않았다. 선천성 림프부종 환자에게 완치란 단어는 사치라고 했다. 그러나 매일매일 미라처럼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편한 길이의 붕대를 더 이상 두 다리에 휘감고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내게 깊게 파여 있었던 마음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020년 10월, 대학병원에서 2주간 입원 치료를 받은 뒤 불과 이틀 만에 원 상태로 돌아와 가족들이 상심에 빠져 있었을 때 나는 오히려 부모님을 위로하기 바빴다. 우리 집안은 대체적으로 대한민국에서 돈 없고 백 없는 흔한 어려운 가정 중 하나였으므로, 백수 신세는 면해보고자 퉁퉁 부은 코끼리 다리를 부여잡고 월 180만 원을 벌기 위해 굳이 1시간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며 안 그래도 멀쩡하지 않은 몸을 더욱 혹사시키기 바빴다.     


 그러다 용기 내어 내가 퇴사 의지를 밝혔을 때 부모님은 내게 의외의 조건을 내걸었다. 이왕 그만두고 할 거 없으면 치료받으러 다니자고. 엄마는 그때 나의 코끼리 다리를 금방 박살이라도 낼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치료의 기회는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왔다. 지금도 내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한의원 원장님은 나를 처음 본 날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 13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많이 힘드셨죠?”     



 사실상 저 말은 반 평생을 림프 부종 환자로써 살아오며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구 상 존재하는 많은 난치병 중에 유독 림프 부종에 대한 취급만 각박하다고 느꼈던 그 당시의 나는 저런 위로를 난생처음 들어본 것처럼 감동을 받았다. 유독 가족들이나 남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병적으로 기피하는 내가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기에 같이 진료를 받으러 간 친언니는 조금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당장 죽는 병도 아닌데 뭐’     

‘그냥 다리 조금 부어있는 건데 왜?’   


  

많이 힘드셨죠? 그 한 마디는 지금까지 나를 아프게 했던 모든 타인의 말들을 잊게 할 만큼의

효력이 있었다. 정말 고생 많았다는 의사 선생님은 그 뒤로 내게 약물치료, 운동, 입원 치료를 차례차례 권장하며 성심성의껏 치료해주었다. 치료와 더불어 위로와 응원의 말들도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 결과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모습에 지인들이 먼저 이야기를 건네며 병원 정보를 얻어가기 바빴다. 


그래, 결과적으로 완치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코끼리 다리로도 아프지 않게 걷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내 마음에 남아있던 염증은 완치가 되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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