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주
시골로 내려간다,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정계를 은퇴한다는 뜻으로 하야(下野)라는 말을 쓴다. 예전 왕조 시절에 조정에 있다라는 뜻으로 재조(在朝)라는 말을 썼으니 야인(野人; 보통 사람)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하야(下野)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골로 내려간다라는 말은 지나치게 글자에 얽매인 뜻풀이라고 하겠다.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의 사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3번의 하야가 있었던 셈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당독재를 타파한 4.19 혁명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났으며, 윤보선 대통령은 5.16 쿠데타 세력에 의해, 최규하 대통령은 12.12 쿠데타 세력에 의해 강제로 물러났다. 우리의 암울했던 격동적 정치사의 아픔....'하야'라는 말이 대변한다
민주화 이후 이 하야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2년 봄 무렵이다. 민간인 사찰 문건이 발각되면서 우리 사회가 발칵 뒤집혔었다. 국가 기관에서 행해진 민간인 사찰의 후폭풍이 매우 거셌다. 정권 말기였던 시기랑 맞물려 그 사찰의 진앙지가 청와대라는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었다. 사회적 민주화와 더불어 민도(民度)가 한껏 높아진 민주 사회에서 대통령의 하야 요구가 나오는 것은 지극히 불행한 일, 그것이 권력의 치명적 도덕성 상실과 맞물려 있어서 전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요즘 또 다시 하야(下野)라는 말이 국민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특정 사건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총체적 국정 난맥상에서 비롯되고 있으니 그 무게감은 사뭇 다르다. 그것도 정권 말기도 아니고 이제 겨우 대통령 임기 절반이 지나고 있는 시점,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국격(國格) 운운하던 때가 언제인데 하야를 운운하게 되었단 말인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지 못하면 답은 뻔하다. 우리는 이미 한 번의 뚜렷한 기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