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주
‘춥고 지루했던 겨울이 지났습니다.’...이렇게 글을 시작한 3월 4일, 화요일...아침이 지나면서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춘설(春雪)이 분분(紛紛)합니다.
새해가 된 것은 달력에서 날짜가 바뀌는 것을 보고 알게 되지만, 일상의 새해는 봄을 느끼면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통해 봄을 체감할까요? 올해는 3월이 되고서도 날이 풀리지 않고, 오히려 눈이 내려 봄이 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때에도 마찬가지죠. 3월의 시작이 곧 봄의 시작은 아니니까요. 꽃샘추위다, 잎샘추위다 하여 몸을 움츠리게 하는 추위는 쉽사리 물러가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은 확연히 봄을 느끼게 합니다. ‘봄’ 하면 연상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초록으로 단장한 풀밭은 봄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온갖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해진 요즘에는 그 이름조차 생소하겠지만,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세대는 ‘삘기’의 달짝쌉쏘름한 맛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삘기’는 풀의 일종인 ‘띠’의 애순(어린 순)입니다. ‘삐비, 삐미, 필기’ 등의 많은 탯말(사투리)을 가진 ‘삘기’는 봄의 맛입니다. 젊은 세대로서는 어떻게 생풀을 먹을까 의아해 하겠지만,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이런 것도 훌륭한 간식거리였습니다.
그 무렵 칠성 바위 언저리와 밭 가장자리에는 새봄마다 지장풀이 잘 되었고, 특히 할아버지의 헛묘 묘갈과 봉분에는 달짝지근하게 배동 오른 삘기가 많아, 햇살 긴 마른 봄날이면 얼굴을 새까맣게 태워 가며 소꿉장난으로 긴긴 해를 저물리곤 했었다. -- 이문구, <관촌수필>
풀은 풀밭에 있어야 환영받습니다. 만일, 이것이 곡식이 자리는 논밭에 있다면 ‘김’이 되어 뽑히고 맙니다. 원래 ‘기음’이라고 했던 ‘김’은 논밭에 난 잡풀입니다. 이 말은 ‘깃’과 말뿌리가 같은데, ‘깃’은 외양간, 마구간, 닭의 둥우리 따위의 밑에 까는 짚이나 마른 풀입니다. 부시를 칠 때 불똥이 박혀서 불이 붙는 것을 ‘부싯깃’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깃’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잡풀을 뽑아내는 것을 ‘김매다’라고도 하지만 ‘푸새다듬’이라고도 합니다. ‘푸새’는 산이나 들에 저절로 자란 풀을 두루 가리키는 말입니다.
말이나 소에게 먹이려고 풀을 베었다면 그것은 ‘꼴’입니다. ‘꼴망태’를 걸머지고 걷던 시골길의 추억에 잠기는 이도 많을 것입니다. ‘꼴’이나 생풀만 먹은 소는 힘이 약하고 비실비실해서 제몫을 다하지 못합니다. 이런 소를 ‘푿소’라고 하는데 ‘푿’은 ‘풀’이 변한 말입니다. 이러니 농사에 유용하게 부리기 위해서는 소를 잘 먹여야 하는 거죠.
‘꼴’을 말려서 짚이나 꽁깍지 등의 갖가지 곡물을 섞어 쑤어 먹이는 것을 ‘여물’이라고 합니다. 꼴이나 여물로 쓰이는 풀은 ‘먹이풀’이라고 하며, 먹이풀을 장만하는 것도 큰 농사였습니다.
구구거리며 마당가를 외오 돌던 장닭이 홰를 치며 날아올랐고, 옹옹. 목이 찢어져라 매암이가 울어대는 참죽나무 밑에서 토욕질하던 누렁이가 여리게 짖어대는데, 어석소가 여물 씹는 우릿간 뒤쪽 토끼장 위로 떨어지는 것은 땡감이다. -- 김성동, <꿈>
노첨지네 머슴이 꼴을 한 바소구리 지고 들어오다가 이것을 보고 얼른 등에 진 꼴짐을 지게째 박아버리고 손에 든 지겟작대기로 그 사람의 골통을 내리치니 그 사람이 작대기를 받아잡고 앞으로 채뜨려서 머슴은 작대기를 놓고 맨주먹으로 대어들고 노첨지의 아들은 어느 틈에 도끼를 찾아들고 다시 대어들었다.
-- 홍명희, <임꺽정>
농사를 지을 때 거름으로 쓰이는 풀을 ‘거름풀’이라고 하는데, 논에 거름을 주기 위해서 베었다면 그것은 ‘갈풀’입니다. 보리를 갈 때 거름하는 풀은 ‘보리풀’이요, 못자리를 만들 때 거름으로 넣는 풀은 ‘모풀’입니다.
‘풀’은 잡초로 천대를 받기도 하지만 ‘삘기’의 맛과, 누가 많이 베어오나로 내기하던 ‘풀싸움’의 추억을 가진 세대에게는 아련한 고향의 품을 그리게 하는 봄의 전령사입니다.
풀 끝에 앉은 새 몸이라. = 매우 불안한 처지에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풀 베기 싫어하는 놈이 단 수만 센다. = 일하기는 싫어하면서 그 성과만을 바람을 비꼬는 말.
꼴을 베어 신을 삼겠다. =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갚겠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라고, 소의 크기는 꼴 베 오는 등짐 수에 따라 다르다. = 노력 없이 결실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말.
여물 많이 먹은 소 똥 눌 때 알아본다. = 남모르게 감쪽같이 한 일이라도 저지른 죄는 세상에 드러나고야 만다는 말.
여물 안 먹고 잘 걷는 말. = 현실과는 상반되는 희망적인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