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주: '건강하세요'의 오류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서 자주 쓰는 인사말 중에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과연 어법적으로 올바른 표현일까요?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가나다> 상담에 올라온 질문에 대해 국립국어원의 공식적인 답변은 이 말들은 어법에 맞지 않은, 틀린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하세요’와 ‘행복하세요’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쓰였느냐에 따라서 맞고 틀림이 결정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쓰인 ‘-세요’는 의문, 명령, 설명 등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상황을 보실까요?
가 : 요즘 어머니는 건강하세요?
나 : 물론이죠, 아주 건강하세요.
여기에 쓰인 ‘-세요’는 의문(가), 설명(나)의 뜻을 나타냅니다. 어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자연스러운 표현입니다. 그런데 다음 예는 어떨까요?
가 : 자, 그럼 또 만나세.
나 : 네, 또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나)의 ‘건강하세요’는 명령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것은 문법적으로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원래는 “건강히 지내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건강하다’는 형용사입니다. 형용사는 명령형이나 청유형의 표현을 쓸 수 없고, 또 현재형의 ‘-ㄴ다’를 쓸 수 없습니다.
가. *우리 같이 예쁘자.
나. 너는 왜 그리 못났니? *앞으로 예뻐라, 응?
다. *우리 아내는 아주 예쁜다.
여기에서 여러 상황에 쓰인 ‘예쁘다’는 형용사입니다. 예시에서 보시는 것처럼, 청유형의 ‘예쁘자’, 명령형의 ‘예뻐라’, 현재형의 ‘예쁜다’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명령형이 가능한 것은 동사입니다. 따라서 '앉으세요, 가라, 먹는다' 등과 같이 동사인 경우에만 명령형이 가능합니다.
동사는 움직임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단어인데, ‘명령’은 지시를 해서 상대방의 행동을 바뀌게 하는 표현이고, ‘청유’는 어떤 행동(동작)을 같이 하자고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상대방의 움직임이 촉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에만 명령이나 청유가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형 ‘-ㄴ(는)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작을 표현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용사는 단지 상태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이므로 움직임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움직임을 유발하는 명령이나 청유, 현재형의 ‘-ㄴ(는)다’를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2)에 쓰인 ‘건강하세요’라는 말은 명령의 의미로 쓰인 것이므로 문법적으로는 틀린 표현입니다. ‘건강한 상태가 되라’는 의미이므로 “건강하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건강해지시기 바랍니다.”, “건강하게 지내세요, 건강해지세요.” 등이 올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란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변하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있다’는 원래 형용사인데, 지금은 동사적 용법으로 자주 쓰입니다.
가.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 있자. (청유)
나. 꼼짝 말고 여기 있어라. (명령)
다. 너 올 때까지 여기 있는다. 빨리 와라. (현재진행)
이 예들은 모두 문법적으로 올바른 표현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주 많은 경우에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건강하세요’라는 표현도 이제 새로운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아직 공식적으로(문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닙니다. 문법이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규칙으로 자신의 언어를 운용하는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따라서 문법은 언제나 언어 현상을 뒤따르게 됩니다. 문법이 규범으로서 모든 언어 현상을 규제하고 있지만, 그것이 영원불변한 것은 아닙니다. 문법은 언어의 시녀라는 말도 있습니다. 명령형으로서, 청유형으로서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우리 다 함께 건강하자.”,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자.”와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으므로 이 말들도 ‘있다’처럼 동사로도, 형용사로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