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서평

균등하지 않은 사랑의 가치

by NANI

20대 초반까지의 내 눈에 세상은 사랑할 것보다 비판하고 따져물어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곳이었다. 그 시기의 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좋아하는 것의 이유는 못찾아도 싫어하는 것의 이유는 명확히 알고 있던, '미워함의 전문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무던하고, 잘 웃고, 사랑할 줄 아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사회성이 없는' 사람의 것이란 걸 깨닫는데는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무엇을 보든 문제점을 기가막히게 찾아내는 나의 성향이 사람들을 피로하게 만든단 걸 깨닫고 난 뒤부터는 다 좋은 척, 다 괜찮은 척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더랬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20대 후반이 된 지금, 나는 여느 사회인들처럼 싫은 것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앞세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사회성 좋은' 사람의 모습을 얼추 갖추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좋아하는 것들만이 나를 구성하는 건 아닌데 왜 나는, 왜 우리는 모든 걸 사랑하는 '척'하며 살아야 할까. 왜 사랑에 대해서만 말하기를 좋아할까. 나는 여전히 싫어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이유를 생각하기조차 힘들어 이제는 '그냥 싫다'고 말하는 사람인데도. 분명 다들 싫어하는 것들이 많을 텐데도.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말을 아끼려 '그냥...'이라고 이유를 얼버무릴수록 미움의 원천은 점점 더 불투명해져갔고, 영문도 모르는 채 나는 너무 많은 걸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순간 뒤늦게, 너무 거대해진 싫은 것들의 무덤을 파헤치며 이유를 찾다 지쳐, 그냥 내가 못된 사람이라 그렇다고, 나는 역시 사랑보다는 미움이 더 쉬운 사람인 것 같다고 체념을 하려던 무렵이었다.


이렇게나 당당하게 싫어함을 공표할 수 있다고..?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이 제목을 보고 충동적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건, 당당하고 담백하게 '이유 없는 싫음'을 공언하는 당돌함 속에서 답을 찾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살면서 무언가를 고루고루 좋아한 적이 없다.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별로라고, 내가 자주 투덜대거나 무언가를 흉보는 게 바로 그 증거다. 물론 내게도 좋아하는 것들이 있지만 뭐랄까, 내가 가진 사랑이란 한 줌 정도랄까. 그런 내 모습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요즘은 크고 균질한 사랑이 대세이자 미덕인 것 같기 때문이다. - 본문 13p




첫 챕터를 열자마자 놀랐다. 나와 데칼코마니처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너무 반가운 나머지 쉬지 않고 주르륵 글을 읽어나갔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근래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많은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는 책에 표시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글쓰기는 스스로의 밑바닥을 드러내지 않고서는 불가한 일이라, 나는 글쓰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임지은 작가도 그렇다.


마치 [애증]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것처럼, 모두가 결벽증에 걸린듯 [증]이 [애]에 흠결을 낼까 걱정하는 사람들 틈에서 '내 삶은 늘 [애]와 [증]의 혼탕이었소'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 그건 [증]이 걸러내야 할 이물질이 아닌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이해한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호두를 사랑하게 되면서 결국 엄마는 개라는 생명 전반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호두라는 세상 제일의 개 때문에, 다른 개들은 순식간에 호두보다 못생겨진다. 모든 개를 예뻐한대도, 그 기준이 되는 단 하나뿐인 개. 엄마의 가장 큰 문제는, 엄마가 수많은 개 중 호두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이다. ...(중략)... 엄마는 민망해하면서도 여전히, 다른 개는 호두보다 못생겼다고 꿋꿋이 속삭인다. 모든 걸 똑같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 게 자신의 사랑이라는 듯이. 흉보는 일과 사랑은 붙어 있다는 듯이. 거기에서 나는 균등하지 않은 사랑을 발견한다. - 본문 15p


이 책을 덮은 내게도 이 감정을 새롭게 해석할 방향성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하다. 자꾸만 면적을 넓혀가는 내 마음 속 미움을 못 본 체하지 않고 파고들 때, 실은 그것이 내 사랑을 더욱 사랑답게 만들어주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더욱 사랑할 이유가 되어줬다는 걸 이젠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 나는 미움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전히 많은 걸 싫어하는 내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조금 어렵지만, 그냥 그게 내 사랑 방식이라고 생각하련다. 그 마음의 존재가 내가 세상을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면 싫어하는 것들을 억지로 좋아하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예은 <칵테일, 러브, 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