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예은 <칵테일, 러브, 좀비>

by NANI


사유도 없고 통찰도 없다. 네 편의 소설 모두에서 작가는 폭력을 조명하지만 정작 폭력이 무엇인지 본인 스스로도 모른다. 그저 작품을 위해 내세울 슬로건일 뿐이다. 잘 모르는 분야를 택했으면 충분한 조사와 공부는 필수이건만.. 그런 성의는 솔직히 네 작품 모두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책이 참 쉽다. 잘 읽히고, 그것이 유일한 장점이다. 그러나 단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짧은 소설 네 편을, 이렇게 작은 책에 실어 놓고, 정가 만삼천원에 팔아? 솔직히 화난다. 아무리 장르 전문 출판사에서 낸 책이고 문장보다는 스토리 그 자체에만 초점을 뒀다 해도, 가격 책정 요인의 8할은 표지 디자인에 있을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또 한번 솔직해지자면, 장르문학으로서의 가치가 그렇게 뛰어난지도 잘 모르겠다. 핍진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세계관 직조가 헐겁다는 뜻이다.


첫 작품 <초대>를 보자. 태주라는 의문의 인물이 등장하고, 주인공이 태주를 찾아간 곳에서 납치된 정현을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인공은 정현을 직접 살해한다. 그래, 주인공이 정현에게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건 알겠다. 그런데 그게 살해로 이어질 정도인가? 작품에서 보여지기로는 지금까지 자기가 당한 것이 폭력임을 인지했다면 그저 이별하면 될 문제로 보였다. 모임에서 가장 많은 의문이 제기된 점도 이 부분이었다. 왜 태주가 등장했어야만 했는가? 왜 주인공이 직접 죽였어야 했는가?


아마도 작가는 몽환과 비현실을 연출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태주의 등장은 의문만을 남겼고, 주인공의 과장된 선택과 행위는 개연성만 떨어뜨릴 뿐이다. 주인공의 정신분열을 드러내고 싶었다면 폭력의 과정과 내면 묘사에 치중했어야 했다. 고뇌와 긴 시간이 필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작가는 간결한 기교와 '가시'라는 상징으로 노력을 대체했고, 인물 행동의 당위성과 개연성을 납득시키지 못한 핵심적 이유가 됐다.


'가시'에서 시작된 폭력이 정현의 등장으로 갑작스레 좁아지는 점 또한 아쉬웠다. 네 작품 모두 폭력을 당하던 약자가 반격을 가하며 가해자를 살해하는 이야기인데, 두 번째 작품인 <습지의 사랑>을 제외하고 작가는 모두 남에서 여로 향하는 폭력만을 부각한다. <칵테일, 러브, 좀비>,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에서도 '술먹고 엄마를 괴롭게 하는 아빠'라는 전형적 가부장이 등장한다. 직장 내 위계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 선생이 학생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혹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이렇게 다양한 폭력이 있는데, 왜 네 편 모두 남녀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만을 주제로 해야 했을까 의문이 남는다.


한가지 더 아쉬웠던 점을 언급하자면, 작가에게 폭력이 폭력적 인물을 응징하는 과정을 전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만 사용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이 눈에 띄게 즐겁고 통쾌한가? 그것도 아니다. 왜냐, 피해와 가해의 서사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사는 '아빠는 원래 다정했다. 그런데 사업이 망한 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는 문장 몇 번 휘갈기고 기교 몇 방울 떨어뜨린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단편이라 그렇다고 변명하기엔 서사가 훌륭한 단편도 너무나 많다.


책을 덮으며 남은 것은 '왜 이런 사유도 깊이도 필력도 없는 글이 베스트셀러인가'라는 의문이었다. 합평 수업 듣는 소설가 지망생들 중 이정도 쓰는 사람은 수두룩하다. 문장력과 세계관을 직조하는 능력 또한 그들이 월등하다고 느껴질 만큼 애매한 이 책이 대체 왜 베스트셀러가 된 걸까. 조금 착잡해졌다. 이런 필력과 이런 무사유의 결과물은 습작생일 때 이미 극복하고 올라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책 한 권에 작가의 실력까지 의심하기는 너무 섣부른 것 같아서, 요즘 전자책도서관 메인에 여럿 걸려 있는 <트로피컬 나이트>를 읽어보려 한다. 이 책까지 실망이면 조예은 작가 책은 다시 손 댈 일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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