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헤어질 결심> 숫자로 쓰인 메시지

그리고 헤어질 결심 [REVIEW] 4.3/5점

by JMJ

1. 관계는 5와 4로 나누어지고 메시지로 연결된다



톰 웨이츠가 부른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창녀가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 Christmas Card from a Hooker in Minneapolis’를 듣고 있으면 서래가 떠오른다. 서래는 해준을 생각하며 녹음을 하고 서래가 전달한 '녹음파일'을 해준은 듣는다. 창녀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찰리에게 보내고 그는 카드를 읽는다. 서래는 '이포'에 살고, 창녀는 '미니애폴리스'에 산다. 두 도시는 물이 많아 안개가 자주 낀다. 임신한 창녀는 이전에 만났던 찰리에게 지금 나를 사랑하는 트롬본 부는 남자가 아버지는 아니지만 자신을 위해 거리로 나가 연주를 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곡의 마지막에서 사실은 나를 사랑하는 남자는 없고 자신은 돈이 필요하고 돈을 빌려준다면 변호사를 고용해서 밸런타인데이에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로 곡은 끝이 난다. 창녀가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는 긴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마지막 메시지로 모든 게 모호해진다. 창녀는 안개 낀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유클리드 거리'에서 떨어진 낡은 서점에 살고, 서래는 안개 자욱한 '이포'에서 낡은 '산해경' 필사본을 들고 다닌다. '미니애폴리스'와 떨어진 '세인트폴'에는 '대성당(중심)'이 있고, 기도수가 죽는 '구소산(중심)'은 '이포'와 떨어진 '부산'에 있다. 겉으로 보면 창녀와 서래는 돈을 쫓는 사람처럼 보인다. 창녀는 트롬본 부는 남자와 찰리 사이에서 흔들리다 찰리가 사랑과 돈을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카드를 쓰지만 이내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어간다. 서래는 남자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해준을 선택하지만 결국 자기 길을 걸어간다. 두 여자는 남자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그녀들이 남긴 메시지는 해석이 필요하다.


찰리와 해준에게 전달된 카드와 녹음파일은 응시를 요청하고 시선을 담보한다. 메시지로 인해 서래의 진실이 있고, 창녀의 진실이 있고, 찰리의 진실이 생기고, 해준의 진실이 생긴다. 그들은 서로 메시지로 연결되지만 모호함이 남고 서로의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안개 자욱한 '이포'와 '미니애폴리스'는 진실이 닿지 않는 메시지를 닮았다. 창녀가 보낸 크리스마스카드 노래 가사는 모호한 관계로 끝이 난다. <헤어질 결심>은 만나고 헤어지는 메시지를 숫자로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2. 8자를 닮은 프레임 5와 4



영화사 모호 필름을 각인시키는 사격으로 영화는 시작하고 해준은 5라고 쓰인 오각형 프레임에, 수완은 4라고 쓰인 사각형 프레임에서 각자의 사격지를 확인한다. 프레임 5와 4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구분한다. 사람은 물리적인 차이로 경계가 생기고 각자는 5와 4로 살아간다. “우리가 해결해야지, 너랑 나” 대사처럼 어떤 사건들로 너와 나는 우리가 된다. 사격장에서 방아쇠를 당겨진 총알은 처음과 끝을 향해 표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삶은 그렇게 한 순간과 같다. 우리는 각자 한 순간을 살고, 너와 나 사이는 어떤 사건을 통해 다시 연결된다. 가로로 놓여 있는 프레임 5와 4를 수직으로 세우면 8자로 보이고 이는 <헤어질 결심>을 관통하는 숫자로 쓰인 메시지다. <헤어질 결심>은 너와 나의 경계와 연결을 보여주는 숫자 8을 첫 장면부터 제시한다.


정안이 해준을 떠난다. 해준은 해파리 수면법으로 잠에 빠져들고 해준과 서래는 차를 타고 대화하는 꿈 장면으로 바뀐다. 해준은 이어폰을 귀에 끼고 말러의 5번 4악장을 들으며 서래와 나누었던 대화를 생각한다. 해준은 파란색 바탕 위에 빨간-노란색 그물 무늬 넥타이를 매고 있다. 파란 물속에 가라앉은 빨간 그물은 피를 싫어하지만 피를 보는 일을 하는 해준의 운명처럼 보인다. 서래는 어두운 색깔의 반짝이는 스웨터를 입었다. 침잠하듯 조용히 살아가지만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수갑을 차고 있는 해준과 서래의 손이 서로 포개어진다. 해준이 한 넥타이와 서래가 입은 스웨터가 그들의 운명을 암시한다면 수갑은 둘 사이를 엮고 잇는 운명처럼 보인다. 프레임 5와 4처럼 수갑은 8자 모양이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팔자를 닮아있다. 8자는 프레임처럼 둘로 나누어져 있지만 동시에 무한히 연결되어 있다. 운명은 서로 엮여 있고 처음과 끝은 돌고 돌아 반복한다. 프레임 5와 4가 다른 것처럼 운명은 다르지만 관계란 이들이 만나 반복되는 어긋남이다. 8자는 너와 나, 경계, 연결 그리고 무한 반복하는 운명을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은 8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3. 그래서 프레임 = 수갑 = 8 = 八자 = 月 = 해파리



헤어질 결심에는 무수히 많은 8자가 등장한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프레임 5와 4는 8자를 닮았고 해준과 서래는 수갑을 차고 있다. 정안은 해준에게 우리 결혼기간은 16년 8개월이라고 꼭 집어서 말한다. 서래를 관찰하는 해준이 사용하는 망원경은 8자다. 서래가 일하는 곳을 방문하는 해준의 상상장면에서 시계는 멈춰있고 시간은 2시 30분, 즉 2+6을 가리킨다. 월요일 할머니가 휴대폰으로 정훈이의 ‘안개’를 플레이시키는 시간은 5시 12분, 5+1+2이다. 서래가 기도수를 살해하기 위해 오르는 산 높이는 138층이다. 실제 높이를 층수로 환산하는 앱은 없다고 하니 138의 끝자리는 8자다. 서래와 해준이 비 오는 날 방문한 절에서 서로 꼭 포옹하며 서래가 해준의 주머니를 확인할 때, 해준은 저고리에는 12개가 바지에는 6개 즉 18개 주머니가 있다고 말한다. 서래가 한국으로 밀입국 할 때 배에 타고 있던 사람 수는 38명이다. 수산시장에서 서래, 정안, 임호신, 해준이 만나 대화를 나눌 때 클로즈업 된 임호신의 손은 수지 경매 시 사용하는 손가락 숫자 8을 가리킨다. 역시 정안이 이주임과 떠날 때 해준은 동일한 손가락 동작으로 숫자 8을 보여준다. 임호신이 살해된 현장에서 해준은 실수로 팔에 찬 오메가 시계에 녹음을 하는 데 그때 시간은 12시 50분, 즉 1+2+5이다. 바다에서 찾은 임호신의 휴대폰을 켰을 때 시간은 2시 42분, 즉 2+4+2이다. 2부에서 서래를 심문하는 장면에서 해준은 엄지와 검지를 하나씩 펴며 중국식 손가락 숫자 8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헤어질 결심은 러닝타임이 2시간 18분이다.



8자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계속 변주되고 가장 중요한 8자 이미지는 해파리다. ‘해파리’는 독을 가진 촉수가 있으며 ‘八’ 자를 닮은 어류라 해서 ‘해팔어’라고도 하고 月이 八자를 닮아서 ‘해월’이라고도 한다. 영화에서 해파리는 두 번 언급된다. 서래가 해준을 잠재우며 “이제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당신은 해파리예요.”라는 장면과 13개월 후 수면장애로 찾은 병원에서 의사의 뒷배경에 다양한 해파리가 유영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도수의 왼쪽 ‘팔’이 부러진 엑스레이 사진은 정안과 해준의 정사씬에서 해준에게 중첩되고 해준은 ‘팔’을 아파하며 손을 오므리고 펴기를 반복한다. 안정안(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8자와 같은 회문)이 말하는 원전완전안전처럼 8자를 팔로 바꾸는 말장난 연출을 하고 있다. 해파리는 소화기관이 머리에 있고 빨간색인데 속이 보이기 때문에 머리 쪽이 빨간색을 띤다. 그리고 해파리는 몸 전체가 투명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입과 배설기관이 동일하다. 또한 해파리는 대략 13개월(1년)을 살지만 생식을 하거나 천적인 자라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면 영생을 사는 생물이다. 기도수가 떨어져 죽은 구소산은 높이가 138층인데 13은 해파리 수명을 상징하고 8은 영생을 사는 해파리를 암시한다.


13개월 후 2부 병원 장면에서 해파리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해준과 서래가 만나게 된다. 해준과 서래가 만나는 호미산에 하얀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내리는 어두운 밤에 서래는 헤드라이트를 끼고 있고 머리 뒤에는 빨간색 배터리가 스펙트럼처럼 깜박인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호미산은 해파리가 빛을 내는 공간이고 서래는 빨간 배터리가 깜박이는 헤드라이트는 해파리의 빨간 머리처럼 빨간색을 보여준다. 月(월)에서 二를 빼면 八자가 되는데 이 숫자는 옥상에서 떨어진 홍산오의 양 눈가에 八과 二가 문신으로 새겨져있다. 서래가 해준 방에 걸려있던 살인사건 사진들을 불태우는 장면 이후 八자를 닮은 백열전구 필라멘트(8 자)가 등장한다. 서래가 해준을 잠재우며 “당신은 해파리예요.”라는 장면에서도 백열전구 필라멘트(8)가 등장하는데 모든 장면들은 해파리로 귀결된다. 기도수가 죽은 날짜는 10시 2분 ‘월요일’이며 월요일 할머니도 영화상에서 자주 언급이 되는데 모두 月을 보여준다. 기도수와 임호신은 로렉스를 차고 있으며 로렉스 로고인 왕관을 뒤집으면 해파리를 닮아있다. 2부 임호신의 살인 현장을 조사할 때 해준이 차고 있던 시계는 오메가(Ω)며 오메가는 숫자 八=8과 닮아있다. 헤어진 결심은 수갑 = 8 = 八자 = 해파리 = 月을 끊임없이 변주하며 관객에게 8자 메시지를 전달한다. 8자는 <헤어질 결심>을 관통하는 핵심이자 메시지이다.



서래와 해준이 시마스시 초밥을 먹는다. 시마(섬이라는 의미)라고 쓰인 쟁반에 작은 간장 두 개가 놓여 있고, 간장 하나는 빨간색 뚜껑이 없고, 다른 하나는 빨간색 뚜껑이 씌워져 있다. 해파리는 빨간색 소화기관이 머리 부분에 있고 간장병은 해파리를 닮았다. 빨간색 뚜껑이 있는 간장은 서래고, 빨간색 뚜껑이 없는 간장은 해준이다. 간장 사이에는 섬이 놓여 있고 바다는 그들을 잇고 있다. 2부에서 해준이 서래를 불신하며 수사하는 장면에서 해준과 서래가 섬을 사이에 두고 각자 대비로 서 있는 장면과 닮아있고 둘은 해파리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초밥 먹는 장면에서 해준의 간장병에는 빨간색 뚜껑이 없다는 것은 해준이 아직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다는 걸 역시 암시한다. 해파리가 의미하는 원형적 상징성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감정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침대에 누워 잠드는 해준에게 서래는 “내 숨소리를 들어요. 내 숨에 당신 숨을 맞춰요. 이제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당신은 해파리예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아무 감정도 없어요.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요. 나한테.”라고 말한다.


1부에서 해준은 서래에게 다가가지만 휴대전화에 녹음된 증거 앞에 서래를 떠나보내고 해준은 사랑을 지킨다. 하지만 해준의 신념은 붕괴되고 깨어진다. 비 오는 날 절에서 해준은 “서래씨는 왜 제가 좋나요? 서래씨가 나하고 같은 종족이란 거 진작에 알았어요.”라고 서래에게 말한다. 하지만 서래는 이에 대답하지 않는다. 우산을 쓰고 절을 걷는 장면에서 그들은 한쌍의 해파리를 닮았다. 2부에서 서래의 휴대폰을 위치추적하고 모니터에는 서래의 자동차 전경이 나온다. 서래의 위치가 빨간색 불빛으로 점멸하고 해준은 서래를 찾아 나선다. 서래를 찾은 해준은 서래의 차 뒤에 주차하고 해준은 차에서 내려 서래의 차로 달려간다. 그때 자동차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산봉우리 두 개를 보여주고 해준이 차에서 내리자 산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산과 같은 해준이 서래가 있는 바다로 달려간다.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는 과정은 반복되고 이러한 반복은 경계를 넘고 연결되는 8자를 오롯이 닮아있다. 그렇게 8자로 쓰인 메시지는 결말을 예고한다.



4. 어긋나는 5와 4


영화 오프닝에서 기도수가 살해된 산 아래는 폴리스 라인이 오각형으로 처져있고 이는 어장을 의미한다. 홍산오가 죽는 옥상도 닫힌 공간이며 임호신이 죽는 곳도 피로 물든 수영장이다. 영화 첫 장면에서 해준이 사격하는 공간도 오각형 프레임이다. 어장에서 사람에 관한 어질(인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말과 행동으로 어질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해준은 “아니 왜 그런 남자랑 결혼을 했습니까?”라고 서래에게 묻는다.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당신을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데 어떡해요.”라고 서래는 대답한다. 애정을 주고받는 대사 같지만 서래의 입장에서는 운명을 담보한 선택이기에 누군가를 만나고 이후 떠날 결심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격 후 해준이 동료형사 수완의 옷을 직접 가져다주고 입혀주는 행동과 서래를 배려하며 더 쉽게 말해주라는 대사는 영화에서 서래가 언급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인자하고 곧은 사람이 해준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해준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바른 사람이고 기도수, 홍산오, 임호신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다. 기도수는 처음에는 서래에게 믿음을 줬지만 결국 서래에게 폭력을 가했다. 값비싼 시계나 고가의 오디오 장비를 통해 기도수가 뇌물을 받는 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짐작케한다. 임호신은 담배를 피우는 서래에게 담배를 밖에서 피우라고 말하며 자신이 비친 거울을 쳐다보며 건성으로 서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임호신은 증권 ‘애널’리스트이고 해파리는 입이 유일한 출입구로 임호신과 서래는 처음부터 반대되는 사람들이다. 홍산오는 오가인을 사랑하지만 그녀가 만난 남성을 질투하고 살해한다. 결국 3명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게 된다. 하지만 홍산오는 옥상에서 스스로 떨어져 죽는다. 해준은 홍산오와 비슷한 감정적 교류를 한다. 서로 같은 사람처럼 보이고 서로 마음을 나누 듯 대화한다. 하지만 홍산오가 빈틈을 보이자 해준은 홍산오 다리에 총을 쏘고 그를 제압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홍산오는 질투로 살인을 하고 해준은 일로 폭력을 행사한다. 홍산오와 해준은 닮았지만 다른 이유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 된다.



자라 양식장(어장)에서 자라가 도난을 당하고 해준은 자라를 찾는 과정에서 자라에게 손가락이 물린다. 해준이 해파리이기 때문에 자라는 해준을 공격한다. 정안은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의심하고 정안은 클리어하게 자라와 함께 이주임과 함께 떠난다. 정안은 해준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지만 이중적인 사람이다. 해준과 sex를 하고 해준의 건강을 위해 자라를 먹어야겠다고 말하지만 정안은 이주임을 매 장면마다 언급하고 그와의 썸싱을 암시한다. 정안은 해준과 같이 여성에게 좋다는 석류(빨간색 머리 즉 해파리)를 까면서(죽이면서) 해준에게 자라즙 이야기를 하며 걱정한다. 해준과 서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중적이기 때문에 서로 투명한 관계를 확인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해준과 서래가 산에서 포옹하고 키스를 한다. 해파리는 입이 모든 기관이기 때문에 키스만 하게 되고 <헤어질 결심>에는 해준과 서래가 키스하는 장면만 나온다. 일시적으로 해준과 서래는 서로 하나가 되지만 이내 둘은 서로 헤어지고, 영화 마지막에서 서래는 바다 아래로 침잠하고 해준은 바다를 헤매며 영화는 끝이 난다.



5. 중심을 안내하는 산해경



해준과 정안은 정사를 하고 TV에서는 사극이 방영된다. 서래가 있는 공간에서 서래도 혼자 드라마를 보는데 해준이 있는 공간에서 나오는 드라마 <흰꽃>이다. <흰꽃> 여주인공은 무당갓을 쓰고 있고 이는 그녀가 무녀 즉 무당임을 추측케한다. 무녀가 나오고부터 서래는 해준과 소통하듯 혼잣말을 읊조리고 이때 독백을 가장한 해준과 서래의 소통이 이루어진다. 서래는 산해경을 필사하고 산해경을 읽고 산해경을 가지고 다닌다. 표면적으로 산해경은 산과 바다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풍물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산해경은 산 같은 바다와 바다 같은 산을 글과 그림으로 보여준다. 위치를 지정할 때 산과 물을 빼고 위치를 지정할 뚜렷한 이정표가 없다. 그래서 산해경은 산과 바다의 풍경을 말하지만 동시에 길을 말해주는 책이다. 정재서는 산해경에 대해 샤머니즘에 관한 책이라고 말한다. 샤머니즘은 무속신앙에서 말하는 이상의 상징성을 가지는데 이는 '속'에서 '성'으로 문턱을 넘는 신성을 의미한다. 신화학자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에 관해 '무당은 세상의 중심에서 기둥을 타고 신과 소통하는 사람'이라 설명한다. 중심이란 가운데 기둥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인간이 신성시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헤어질 결심에서는 구소산, 호미산 그리고 서래가 생각하는 해준이 중심이 된다. 서래는 해준의 집에 있는 사건 사진들을 죽은 자들에게 제의를 지내듯 불태운다. 이는 해준을 둘러싼 사건이기 때문에 해준을 중심에 놓고 제의를 지내는 행위라 할수 있다. 서래의 어머니는 호미산을 말하고 서래는 호미산을 찾아가 어머니의 유골을 산에 뿌린다. 기도수가 죽는 구소산에는 신단수를 연상시키는 나무 한그루가 있다. 성스러운 산에서 서래는 계획적으로 기도수를 정상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게 한다. 홍산오 또한 옥상이라는 중심에서 떨어져 죽고, 서래는 멀리서 홍산오가 죽는 모습을 지켜본다.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은 두 번 나오는데 모두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서래 할아버지가 독립 운동가라는 이유로 밀입국한 사람들 38명 중 서래만 한국에 남고 상을 받는다. 병원에 누워있는 어머니는 서래에게 산같이 곧은 남자를 만나라고 말하며 서래가 떠나길 바라고 이후 서래는 어머니의 유골을 들고 다닌다.



6. 반복의 순간과 영원의 순간



서양에서 영원은 개인의 특별한 능력으로 담보되고, 동양에서 영원성은 평범한 인간이 무한회귀 속에서 스스로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서양이 직선으로 달리는 축적된 시간이라면 동양은 돌고 돌아 회귀하는 시간 속에서 인간의 품위로 운명은 변화한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에서 말하는 산 같이 곧은 사람이 중요하다. 헤어질 결심은 서로 다르지만 곧은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고 다시 영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에서 해준은 서래를 찾아 바다에서 헤매고, 서래는 땅을 파서 모래를 산처럼 쌓아 모래 아래 바다로 들어간다. 해파리는 바다를 유영하거나 바다 아래서 생식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해파리가 있다. 헤어질 결심은 가련한 피조물인 인간이 운명 속에서 살다 죽지만 영원을 살고자 하는 몸부림을 보여준다. 만약, 해준과 서래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면 이 영화는 로맨스 영화가 된다. 만약 서래가 두 번째 남편을 살해하고 해준을 끝까지 속였다면 이 영화는 반전 스릴러물이 된다. 하지만 서래는 떠나고(leave) 해준이 남는(leave)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하고 <헤어질 결심>은 갑자기 영화는 산으로 가는 경험을 준다. 해준은 도덕과 법에 따라 곧은 사람이고, 서래는 자기 결심으로 곧은 사람이다. 해준과 서래는 곧지만 서로 다른 차이를 확인하고 이내 각자의 길을 걷는다.



7. 타이틀 텍스트, 포스터 그리고 알레고리


<영화 처음 나오는 헤어질 결심 text>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헤어질 결심 text>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헤어질 결심> text는 영화 시작, 마지막 그리고 포스터에는 서로 다른 모양의 text를 사용하고 있다. 시작에서 보여주는 <헤어질 결심> text에는 ‘ㅇ’만 속이 비어있고 ‘헤어’를 제외한 글자들이 희미하거나 줄무늬가 있다. 그리고 ‘어질’ 위에 빨간색 불이 반짝이다 어두운 화면에 물방울 같은 파란색 화면들이 물결치듯 교차하고 빨간색 재킷을 입고 죽은 기도수가 나온다. 영화 시작 text에 ‘ㅇ’만 투명한 이유는 해준과 서래가 아직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했고 해준이 해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각자의 길을 걷는 엔딩에서 text는 모든 텍스트가 하얗게 지워져 있고 점 8개가 표기된다. 그리고 포스터에 쓰인 text에는 글자마다 전부 속이 지워져 있고 투명하게 보인다.


포스터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text와 이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중세 알레고리 회화기법은 시간, 공간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아 교훈적인 메시지 전달한다. <헤어질 결심> 포스터는 영화 속 상징들을 넣어 알레고리 서사를 만든다. 해준은 갈색 재킷을 입고 서래는 청록색 코트를 입고 있다. 도식적이지만 해준은 산이고 서래는 바다를 상징한다. 영화에서 서래는 포스터와는 달리 해준과 비슷한 밝은 갈색을 입고 있다. 이것은 서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포스터는 해준과 서래의 상징적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서래는 바다 색깔 코트를 입고 있다. 수갑은 운명을 담지하고 영화에서는 서로 손을 포개고 있지만 포스터에서는 손이 닿을 듯 말 듯 간격을 유지한다. 포스터에서 보이는 빛과 text는 앞을 알 수 없는 관계와 해파리가 되는 결말을 보여준다. 즉, 바다 깊은 곳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해파리처럼 해준과 서래가 하나가 되는 순간을 포스터에서 보여준다. 해준의 갈색 재킷과 서래의 청록색 코트는 그들의 첫 시작을, 수갑과 함께 닿을 듯 말 듯 잇는 손은 서로의 감정선을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 포스터에서 속이 빈 text는 산해경에서 말하는 길과 투명한 해파리를 보여준다. text와 빛은 그들이 하나가 되고 각자 자기 길을 걸어가는 결말을 암시한다. <헤어질 결심> 포스터 한 장에는 시간과 공간을 압축하는 알레고리한 회화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八. 5와 4를 잇는 메시지들



<헤어질 결심>은 5와 4의 가운데 사이를 연결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메시지는 전달이 될 때도 있고 전달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전달된 메시지는 오역이 되고 사이는 경계되지만 경계는 5와 4를 잇는 안개와도 같다. 만약 영원이 세계에 주어진다면 메시지는 명확하게 해석될 것이다. 순간은 5와 4를 한정시키고 모호한 메시지를 드러내지만 8이라는 영원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만든다.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창녀는 찰리에게 거짓된 진실을 크리스마스 카드로 보내고, 서래는 모호한 진실이 담긴 녹음파일을 보내고, 정안은 해준에게 일방적으로 말하고, 기도수는 자기 말을 고집하고, 임호신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해준은 서래를 심문할 때 심문보다 관심을 말하고 이후 의심하고 사랑을 말한다. 5와 4의 차이처럼 메시지는 제각각 전달되고 각자 삶에서 서로의 의미로 남는다. 그렇지만 <헤어질 결심>은 서래를 통해 영원에 도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해준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해파리인지 모르지만 서래를 사랑하고 닿을 듯 말 듯한 마음으로 영화 내내 서래를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해준은 영원에 닿지 못한다. 하지만 서래는 자신이 해파리라는 걸 알고 해준을 찾는다. 해준은 모르고 서래는 알고 있는 것이다. 해준에게 서래는 필요한 사랑이지만 서래에게 해준은 필연적인 사람이다. <헤어질 결심>은 프레임 5와 4로 시작해서 ‘말러의 아다지에토(조금 느리게) 5번 4악장 현과 하프를 위한 무언가’로 마무리된다. 현과 하프는 같은 듯 다른 악기이다. 5번 4악장은 누군가에게는 연가로 또는 장송곡으로 또는 평화로 읽히는 모호한 곡이다. 결국 서래와 해준의 관계를 사랑으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그들의 다른 길을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다. 헤어질 결심을 보는 관객은 해준과 서래를 보고, 해준은 서래를 보고, 서래는 앞을 보고 달린다. 이들 사이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존재하고 메시지는 안개와 같이 모호함을 남기지만 동시에 그들을 잇는다. 8자는 너와 나, 즉 5와 4를 잇고 그 사이에는 무수한 메시지가 남고(leave) 떠나게(leave) 된다. <헤어질 결심>은 숫자로 쓰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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