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선, 파이, 목마름, 침춤 [REVIEW] 4.3/5점
기린, 원숭이, 홍학, 코끼리, 얼룩말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며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시작한다. 흔히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사람은 겉모습이 비슷해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다양한 동물들만큼 인간도 개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 간의 차이는 크게 다가온다. 파이는 동물원에서 태어나고, 그 순간 도마뱀이 죽는다. 파이는 현재의 행동이 다음 생에 영향을 미치는 죽음과 탄생의 연결성을 카르마라고 말한다. 카르마가 삶의 순환을 나타낸다면, 삶은 둥근 '원'과 같고, 지금 이 순간 행위는 '직선'과 같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각 개인의 다양성과 '원'과 '직선'으로 비유되는 삶의 본질을 첫 장면에서 보여준다
파리의 고급 수영장인 Piscine Molitor은 마마지가 사랑했던 곳이다. 사람들은 Piscine Molitor 수영장 물로 커피를 끓여 마실 만큼 깨끗하다고 농담한다. 파이의 본명인 Piscine Molitor Patel은 Pissing(오줌)이라는 놀림을 받는다. Pi는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자기소개 시간에 π(3.14…) 값을 쓰고 쓰면서 자신이 'pissing'이 아니라 'Pi'임을 당당히 증명한다. 자신을 증명한 파이는 단단히 서고 타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찾는다. '원'둘레를 '지름'(직선)으로 나누면 3.14...로 시작되는 무한소수 파이값이 나온다. 이 무한소수 즉 π 값은 인간의 선택을 통해 삶의 지름이 늘어나듯 π값을 확인한다.
파이가 바라보는 세상에는 이미 다양한 믿음이 존재했다.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이성이 그것이다.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믿음체계라면, 이성은 합리성을 담보한다. 세 가지 종교를 믿는 파이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믿는 것보다 이성을 믿는 건 어때?"라고 묻는다. 종교는 믿음과 사랑으로 세상을 감싸 안고, 이성은 세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변화를 추구한다. 종교는 원과 같고 이성은 직선과 같은 상징을 지닌다. 세상을 유지하는 질서가 원이라면, 그 질서를 깨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 직선의 역할이다. 세상의 믿음과 나의 믿음은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 π 값은 고정된 듯 보이지만 개인의 깨달음에 따라 '파이'는 무한히 확장된다. 파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믿음 체계와 이성 속에서 믿음을 찾지 못하고 '목마름 Thirsty'을 느낀다.
파이는 캐나다 소설가에게 "종교는 방이 많은 집과 같아요"라고 말한다. 소설가가 "의심의 방은 없어요?"라고 묻자, 파이는 "층마다 아주 많죠. 의심은 좋은 거고 믿음을 유지시켜 주죠"라고 답한다. 믿음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의 과정이다. 의심과 실망을 겪는 인간에게 믿음은 100%와 0%의 가능성 사이에서 놓인다. 지식은 머리로 이해하지만, 믿음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 의심이 없다면 과연 믿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목마름을 느끼는 인간은 어떻게 믿음을 얻을 수 있을까?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의심과 믿음 속에서 목마름을 느끼는 인간을 보여준다.
사냥꾼 '리처드 파커 Richard Parker'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던 호랑이를 잡고, 그 호랑의 이름을 '목마름 Thirsty'라고 붙여준다. 하지만 사냥꾼이 호랑이를 팔면서 자신의 이름 '리처드 파커 Richard Parker'와 호랑이의 이름 '목마름 Thirsty'을 반대로 써서 '사냥꾼'은 '목마름 Thirsty'이 되고 '호랑이'는 '리처드 파커 Richard Parker' 된다. 믿음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며 지식을 탐구하는 '파이'와 목마름을 느꼈던 '호랑이'는 동일시되고 결국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는 같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Richard'는 '강력한 지도자'를, 'Parker'는 '공원을 지키는 자'를 의미한다. 파이가 여행하는 동안 '리처드 파커'는 그에게 고통과 고민을 안기지만, 동시에 그를 지켜주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만약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동일한 존재라면, 파이의 자아 속에서 '리처드'는 강력한 존재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는 욕망을, '파커'는 리처드를 억누르는 초자아를 상징한다. 파이라는 자아 속에 리처드 파커는 욕망과 초자아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파이'가 식충섬을 떠나려 할 때 '리처드 파커'는 섬에 남아있다. 파이가 '리처드 파커'를 부르자 리처드 파커는 배에 올라 다시 함께 항해를 시작한다. 파이의 자아는 식충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섬을 떠나려 한다. '리처드 파커라는 욕망과 초자아'는 섬에 남길 바라지만, 욕망(리처드)은 파이의 부름에 응하며 초자아(파커)에 굴복하고 다시 배를 타고 표류를 재개한다. 이 장면은 자아가 욕망과 초자아 사이를 조율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보여준다.
파이와 그의 가족 그리고 동물들이 탄 배의 이름은 '침춤 Tsimtsum'이다. 침춤은 영화 마지막에 배가 난파한 원인을 조사하는 선박회사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 스치듯 파이가 언급하는 유대교 신비주의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대 신비주의인 '루리아닉 카발라 Lurianic Kabbalah'에서 이삭 루리아가 제시한 창조론의 핵심 개념이 '침춤', 즉 '수축'을 의미한다. '침춤'은 무한 존재인 신이 스스로 수축함으로써 유한한 세계와 피조물들을 창조했다는 개념이다. 신의 수축은 피조물들에게 자유의지와 창조의 가능성을 부여하며, 피조물의 행위는 신의 현전을 드러낸다(현대 신학에서 몰트만은 침춤을 기독교의 하나님의 자기 비움으로 연관해서 해석한다).
침춤호가 난파되자 파이는 넓은 바다 위에서 돛단배 한 척에 의지한 채 표류한다. 여기서 '침춤'이 시작되며, 파이는 생존을 위한 선택에 직면한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침춤호를 타고 있던 파이는 질서의 여신 비뉴스가 나타났다고 환호하지만, 곧바로 배는 침몰한다. 대부분의 동물과 사람들은 죽고, 파이는 잔인한 현실과 믿음 사이에 놓인다. 파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파이는 drinking water라고 인쇄된 통조림 통에 구조 편지를 넣고 바닷물(not driking water인)에 던진다. 리처드 파커는 파이를 위협하지만, 그를 길들이며 서로 공존하는 법을 배운다. 식충섬은 파이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인간을 위협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곳이다. 의심을 하고 식충섬을 떠날 것을 결심한 파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만약 의심은 했지만 의지가 꺾였다면 파이는 식충섬의 누군가처럼 죽게 될 것이다. 캐나다 소설가는 소설을 쓰다 계속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다 원고를 뒤엎는다. 그러다 다시 소설을 쓰기 위해 방황하던 중 파이를 만난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의심과 선택의 연속이다. 바닷물을 먹을지, 통조림 물을 먹을지처럼.
신을 원망하든 좌절하든 현실 속에서 의지를 다지며 살아남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한다. 227일간의 표류는 파이에게 현실적 또는 인간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227일은 무한수인 π의 근삿값인 22/7로 표현된다. 무한소수 π과 22/7 유리수는 무한한 신과 유한한 존재의 관계를 보여준다. 인간은 길게 늘어진 파이를 따라가지만 인간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리기에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의심과 실망에 직면한다. 이로 인해 믿음은 끊임없이 좌절된다.
멕시코 모래사장으로 표류해 온 파이는 리처드 파커와 이별한다. 이후 항만회사 조사관에게 꿈같은 이야기와 찬혹한 현실 이야기를 들려주며 영화는 끝이 난다. 227일간 바다를 표류하며 파이는 꿈인지 몽상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시간 속에서 이성과 믿음을 붙잡고 끝없는 사투를 벌였다. 선택을 거듭하며 파이는 현실 같은 꿈과 꿈같은 현실에서 의지를 다지며 믿음에 도달한다.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여준다. 하나는 파이, 호랑이, 얼룩말, 오랑우탄이 등장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파이, 요리사, 선원, 파이의 엄마로 구성된 이야기다. 침춤 보고서에는 ‘파텔 씨의 스토리는 난파선 역사상 가장 멋진 용기와 인내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존자들 중 누구도, 벵골 호랑이와 친구처럼 지내진 않았다’라고 기록된다.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동일하다면 침춤호 보고서 말미에 호랑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마지막은 두 가지 이야기가 모두 진실임을 말한다. 한 이야기를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 이야기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처음 이성을 믿는 파이 아버지는 "세 가지 종교를 믿는 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파이에게 말한다. 두 가지 중 하나를 믿든, 둘 다 믿든, 나머지가 믿음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파이의 두 가지 이야기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담고 있고, 우리는 그중 하나를 선택하며 믿고 살아간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신을 맹목적으로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냉정하고 차분하게 신을 배제한 채 이야기를 풀어간다. 극한 상황에서 의심과 믿음을 오가며 의지를 다져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를 통한 생존의 여정 속에서 어느 순간 자신이 믿는 선택을 발견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이러한 선택과 믿음의 과정을 섬세히 그리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어떤 갈증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목마름을 느끼는 분들에게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가 아닌 마음속에 깊은 가르침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