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메멘토> 마음이 기억하는 색깔들

10가지 기록으로 살펴보기 [REVIEW] 4.5/5점

by JMJ

<100% 스포일로 시작하는 평론>




존G는 레너드의 아내 캐서린을 비닐로 덮고 강간한다. 그 사건 중 레너드는 머리를 다쳐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이후 레너드는 캐서린에게 반복적으로 당뇨 주사를 놓아 결국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캐서린의 죽음 후, 레너드는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이 존G라고 믿고, 사진, 문신, 메모를 기록하며 그를 추적한다. 하지만 존G는 강간 사건과 레너드의 머리 부상만 저지른 범인일 뿐, 정작 아내를 죽인 범인은 레너드 자신이다. 그래서 레너드는 결코 존G를 잡을 수 없다.


영화 <메멘토>는 '컬러 시퀸스'(이하 '컬러')와 '흑백 시퀀스'(이하 '흑백')가 번갈아 진행되고, 마지막 22번째 시퀀스에서 '흑백'이 '컬러'로 전환되며 영화는 '컬러'로 끝이 난다. 시간 흐름으로 보면, '컬러'는 역순으로 진행되어 기억의 흔적을 따라가고, '흑백'은 정방향 시간 흐름을 따라가며 시간상 '컬러' 이전의 대과거를 보여준다. 캐서린의 죽음 이후, 레너드는 테디를 만나 존G에게 복수하지만 테디에게 이용당하는 장면들은 '흑백'으로 묘사된다. 반면, 지미를 살해한 후 존G를 쫓고 나탈리에게 이용당하며 테디를 살해하는 장면들은 '컬러'로 진행된다. '흑백'과 '컬러'는 레너드 마음이 기억하는 색깔로, 이 색깔들 아래에는 레너드가 결코 볼 수 없는 캐서린의 죽음이 자리 잡고 있다. 레너드는 캐서린을 떠올리며 그녀의 빈자리를 언급하며 그녀를 추억하지만, 그에게 캐서린은 도달할 수 할 수 없는 빈자리로 남는다.


마지막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시퀀스에서 레너드는 사진을 불태우고 테디에 대한 정보를 기록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된 기억 속에 갇힌다. '흑백'에서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는 레너드는 '컬러'에서 캐서린의 진실을 마주하지만, 이를 부정하며 사건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존G가 등장하고, 레너드는 점점 더 왜곡된 기억에 사로잡혀 캐서린의 진실에서 멀어진다.


<메멘토>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기호들로 영화는 진행되며, 레너드가 사실이라고 믿는 기호들은 그의 기억의 왜곡과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흑백''컬러' 시퀀스가 교차하는 복잡한 화면 구성은 영화 독해를 어렵게 한다. 이 리뷰는 <메멘토>의 10가지 주요 기호를 중심으로 '흑백'과 '컬러'의 관계를 분석하며, 레너드 기억의 색깔들에서 레너드의 심리적 흐름으로 '기억하라'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Leonard Shelby와 Catherine Shelby 그녀를 위해, [ㅣ], 그녀에 의해



레너드의 풀네임은 Leonard Shelby이다. Leonard는 'Lion(사자)'과 'Hard(강인함)'의 결합으로, '용감한 사자'를 의미한다. 'Shelby'는 '그녀에 의해(she+[I]+by)'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Leonard shelby는 '용감한 사자가 그녀에 의해'로 읽히며, 'she'와 'by' 사이의 'I'는 '그녀'와 '그녀에 의해'로 구분된다. 이 경계는 레너드가 '그녀를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과 '그녀에 의해' 수동적으로 명령을 받는 위치를 대비시킨다. 영화 속에서 레너드는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는 주체로 보이지만, 결말에서 그는 테디와 나탈리에 의해 조정당하고 있다 사실이 드러난다. 캐서린의 죽음을 회피하며 스스로를 부정하며 존G를 쫓는 레너드는 '흑백'에서는 테디에 의해, '컬러'에서는 나탈리에 의해 조종된다.


캐서린 셀비의 이름인 'Catherine'은 순수함과 깨끗함을 의미하며, 지혜와 순교를 상징한다. '캐서린 셸비(Catherine Shelby)'는 '캐서린(Catherine)이라는 그녀 She'와 '캐서린(Catherine)에 의해(Shelby)' 레너드가 움직인다는 점을 암시한다. 드와 나탈리가 레너드의 결핍을 조종한다면, 캐서린의 존재는 레너드가 기억해야 할 진실이지만 레너드는 진실을 부정한다.




2. MEMENTO는 2인칭, 명령, 완료형



영화 <메멘토>의 제목은 라틴어 'memento'에서 비롯되며, 이는 2인칭, 명령, 완료형으로 ''가 아닌 '너는 기억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단기기억상실에 걸린 레너드 셸비는 스스로 사실을 기록하고 사건을 추적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너는 기억하라'는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Leonard Shelby에서 Shelby는 'She'와 'She+by'로 구분되며, 이는 'memento'가 2인칭 명령 완료라는 점에서 레너드는 '그녀에 의해(She By)' '기억하라'는 명령에 따라 사건을 쫓지만, 기억과 기록이 명령임을 깨닫지 못한다. '기억하라'는 캐서린의 죽음을 기억하라를 의미하지만, 레너드는 캐서린의 죽음을 부정하며 왜곡된 기억에 따라 행동한다. 결국 캐서린을 기억할수록 레너드는 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레너드는 마음이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회피하며, 진실은 그의 마음 속에 빈자리로 남는다.



첫 장면에서 레너드가 테디를 살해하고 폴라로이드 사진을 흔드는 장면은 '컬러'에서 '흑백' 그리고 '검정'으로 진행된다. 이를 시간 역순으로 풀어보면, 캐서린의 죽음을 부정하는 세계는 폴라로이드의 '검정'으로, 그 사실을 외면하며 존G를 쫓는 세계는 폴라로이드의 '흑백'으로, 그리고 존G를 부정하고 기억을 왜곡하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시퀀스는 폴라로이드 '컬러'로 표현된다.


폴라로이드 사진의 색깔은 레너드의 부정, 외면 그리고 왜곡을 상징한다. 폴라로이드 사진의 '흰색' 테두리는 왜곡된 기억을 감싸는 진실의 경계처럼 보인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레너드의 마음이자 기억의 형상이다. 진실(흰색)은 레너드의 부정(검정)에 묻히고, 캐서린이 지워진 세계는 '흑백'으로 남는다. 그리고 레너드에 의해 왜곡된 세계는 결국 '컬러' 사진으로 완성된다. 흰색, 검정, 흑백 그리고 컬러의 세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레너드의 마음이 만든 기억의 색깔들이다.


'흑백'에서 레너드는 캐서린의 죽음을 추적하며 테디의 정보로 사건을 처리하지만, 이미 존G를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잊는다. 영화 마지막에서 지미와 격투를 벌이고 화면은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고, 레너드의 얼굴에는 두 개의 상처가 생긴다. 그는 캐서린을 강간한 존G를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이를 부정하며 기억을 왜곡한다. 레너드는 캐서린이라는 진실에 결코 다가갈 수 없기에, 기억을 왜곡하고 수많은 존G를 가해자로 지목하고 스스로 왜곡된 기억 속에 갇힌다. 그의 기억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검정', '흑백', '컬러'로 나뉜다. 폴라로이드 사진의 '흰색' 프레임은 레너드 바깥의 진실을 상징하지만, 그는 부정과 왜곡을 반복하며 폴라로이드 프레임 안에 갇힌다.



3. 'John G Raped and Murdered My Wife'는 'My Wife Murdered and Raped John G'로 의미상 전환



영화 <메멘토>의 초반, 레너드는 낯선 모텔에서 깨어나 자신의 몸에 새겨진 문신, 'John G Rape and Murdered My Wife(존G가 나의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했다)'를 발견하고 거울을 통해 이를 바라본다. 그러나 이 문장은 거울이 아닌 정면에서 보면 'My Wife Murdered and Raped John G'로 의미가 뒤바뀐다. 보통 'Rape'는 강제로 성적인 관계를 맺는 행위를 의미하지만, '성적인'을 제거하면 '강제로 관계를 맺다'가 된다. 여기서 'Rape'는 '강탈하다' 또는 '약탈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므로 'My Wife Murdered and Raped John G'는 '나의 아내는 존G를 살해하고 강탈했다'로 읽힐 수 있다.



레너드는 캐서린을 살해한 범인을 존G라고 믿지만, 레너드 자신이 캐서린을 살해했기 때문에 레너드는 존G가 된다. 그래서 'My Wife Murdered and Raped John G'는 캐서린이 존G 즉 레너드를 살해하고 그의 기억을 강탈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이는 레너드를 움직이는 명령자가 My Wife 캐서린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레너드는 자신이 존G임에도 불구하고 존G를 쫓으며, 결코 그를 붙잡을 수 없다. 이는 라캉의 기표연쇄 체계에서 문자의 위치가 바뀌며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과 유사하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분석한 라캉의 이론과 맞닿아 있다.


레너드가 거울을 통해 문신을 보며 자신을 인식하는 장면은 그가 캐서린의 상상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나탈리가 레너드와 함께 거울로 문신을 같이 보는 장면은 나탈리가 레너드의 상상계 즉 캐서린의 영역에 침투하려 함을 드러낸다. 캐서린이라는 진실의 빈자리는 나탈리가 차지할 수 없지만, 레너드는 나탈리에게 조정 당한다. 이는 라캉의 테제처럼, 자신의 욕망을 알지 못한 채 끝없이 새로운 욕망을 쫓으며 진실에 미끄러지는 레너드의 모습과 닮아 있다. 기의가 사라진 어두운 세상에서 기표의 그물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레너드의 기록은 진실에 닿지 못한다.




4. TEDDY CAR LICENSE : SG137IU



영화 초반 레너드가 테디를 존G로 오인하는 장면에서 테디의 자동차 번호판 'SG137IU'가 등장한다. 이 번호판의 'SG' = Suject G(주체 G) , '13' = is(이다), 7 = G(알파벳 7번째 철자 순서), 'IU' = I U (나, 너)로 해석된다. 즉 'Suject G is G I U'는 '주체 G는 G, 나, 너이다'를 의미하며, 주체 G가 레너드와 테디, 즉 너와 나를 모두 포함하는 G로 동격임을 나타낸다. 영화 마지막 테디는 존G가 이미 죽었다고 밝히지만, 레너드는 이를 부정하고 존G를 기억하지 못한 채 존G를 계속 쫓는다. 테디는 레너드를 조종하며 이용하고, 레너드는 테디를 새로운 존G로 지목하며 영화는 끝난다. 아이러니하게도 존G는 레너드 자신임에도, 캐서린 사건의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 존G라는 가상의 존재가 필요하다. '흑백'에서 등장하는 존G는 레너드가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 외부(테디)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라면, '컬러'에서 등장하는 존G는 레너드 스스로 기억을 조작한 존G이다. '컬러'의 존G는 더 이상 타인에 의해 형성되지 않고, 레너드는 조작한 왜곡된 기억 속에 갇히게 된다.




5. DON'T / BELIEVE HIS / LIES와 HE IS THE ONE KILL HIM



테디가 찍힌 폴라로이드 사진에는 'Don't Believe His Lies'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Don't'와 'Believe' 사이, 그리고 '... His'와 'Lies' 사이에는 '/' 모양의 자국이 있다. 'Don't [/] Believe His [/] Lies'로 나뉜다. 이는 세 가지로 해석된다: '그를 믿어라(Believe His)', '그의 거짓말을 믿어라(Believe His Lies)' 그리고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마라(Don't Believe His Lies)'. 테디는 레너드에게 존G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말한다. 이는 '그를 믿어라(Believe His)를 상징한다. 하지만 캐서린의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레너드는 테디의 이익을 위한 거짓말을 믿는다, 이는 '그의 거짓말을 믿어라(Believe His Lies)'로 나타난다. 영화 마지막에서 테디가 다시금 캐서린의 진실을 말하자 레너드는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마라(Don't Believe His Lies)'고 적는다. 이는 테디가 말하는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고, 거짓말로 자신을 이용한 테디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흑백'에서 테디의 '거짓말을 믿는(Believe His Lies)' 레너드는 그에게 이용당하며 진실을 외면한 채 존G를 계속 추적한다. 반면, '컬러'에서 '거짓말을 믿지 말아라(Don't Believe His Lies)'에서는 레너드가 테디를 존G로 지목하며 또다시 진실을 회피한다. 이 두 장면은 '흑백'과 '컬러'로 대비되며, 진실을 부정하는 레너드의 마음에서 모든 것은 비롯된다. 레너드는 폴라로이드 사진 뒷면 검정 아래에 기록한다. 이는 진실이 부정되는 기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폴라로이드 사진에 쓰인 'He is the one kill him'는 '그가 범인이다, 그를 죽여라'로 번역되지만, 원문에는 쉼표가 없어 '그는 그를 죽이는 사람이다'로 해석해야 한다. 즉, 레너드는 존G를 쫓지만, 자신이 존G 이기에 결국 '그는 그를 죽이는 사람'이 된다. '흑백'에서 테디가 설정한 가짜 존G를 '그가 범인이다, 그를 죽여라'로 해석이 될수 있지만, '컬러'에서는 '그는 그를 죽이는 사람이다'로 읽힌다. '컬러'에서 존G가 누구든 레너드는 그를 쫓지만, 스스로 범인이기 때문에 존G를 죽일(Kill Him) 수 없다. 존G를 죽이더라도 실제 존G가 아니기 때문에 다시 존G를 추적해야 한다. 이는 진실을 부정하면서도 진실을 쫓는 레너드에게 진실은 빈자리로 남는다.




6. JAGUAR XK8와 NEVADA 번호판



재규어(Jaguar)는 미국산 표범으로, 레너드(Leonard) 즉 '용감한 사자'와 닮아있다. 재규어 XK8은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그랜드 투어러 차량이다. 재규어 XK8의 번호판은 'NEVADA, 208 D5A, SILVER STATE'로, 네바다주는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가 있는 미국 서부의 사막 기후 지역이다. 이 건조하고 황폐한 환경은 레너드의 정서적인 결핍과 유사하다.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격투 장면 이후, 레너드는 지미의 옷과 차를 자신의 것처럼 걸치고 탄다. 가짜 존G인 지미의 자리를 차지한 레너드는 거짓된 기억에 갇히는 '컬러' 장면으로 이어진다. 레너드는 존G였던 지미를 살해하고 테디를 존G라고 조작한다. 그리고 레너드는 지미의 애인인 나탈리를 만난다. '흑백'에서 테디에 의해 조정되는 레너드는 '컬러'에서 나탈리에 의해 조정된다. '흑백'에서는 캐서린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레너드의 마음이 드러났다면, '컬러'에서는 레너드가 기억을 왜곡하며 그곳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기억을 채우려는 레너드 마음에서 비롯된다.


번호판에 쓰인 '208'은 레너드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숫자 '2'는 강간과 아내의 죽음이라는 두 가지 비극적 사건을 나타내며, '0'은 이로 인한 레너드의 결핍과 부정을, '8'은 존G를 끝없이 추적하는 반복과 기억을, 그래서 208이라는 숫자는 압축적으로 레너드를 설명하고 있다. 컬러에서 레너드 얼굴에(표면에) 생긴 두 개(2)의 상처는 캐서린과 존G에 대한 부정, 혹은 테디와 나탈리가 남긴 조종의 흔적일 수 있다. 자신이 존G를 죽인 사진을 재규어 차 안에서 불태우는 장면에서 레너드의 결핍은 영원히(8) 기억 속에 갇히고 레너드의 상처는 부정되고 빈자리(0)이 된다.


'Silver State'는 네바다주의 별칭으로, 거울 제작에 사용되는 고급 재료인 은(Silver)을 떠오르게 한다. 이는 거울을 통해 문신으로 자신을 인지하는 레너드가 실은 '네바다(Silver State) = 거울' 속 갇혀 있음을 암시한다. 프란시스코에서 LA로 온 레너드는 네바다 자동차 번호판 속에 갇히게 된다. 그는 자동차를 타고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존G를 쫓는다. 영화 마지막 '흑백'에서 레너드는 캐서린의 죽음을 마주하며 진실을 받아들이고 여행을 멈출 수도 있었지만, '컬러' 장면에서 테디를 부정함으로써 그는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을 쫓는 상처받은 여행자가 된다.




7. D5A = DEA = Deux Ex Machina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x Ex Machina)'는 그리스 연극에서 기계 장치를 통해 갑작스운 신 등장으로 극의 갈등을 해결하는 플롯 장치를 뜻한다. 라틴어로 'deux'는 '남성신'을, 'dea'는 '여신'을 의미한다. 영화 <메멘토>에서 '208' 다음에 적힌 'D5A'는 'DEA'로 읽히며, 이는 'Deux Ex Machina'를 비틀어 'Dea EX Machina'로 해석할 수 있다.


'흑백'에서 테디는 레너드를 조정하며 캐서린의 진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레너드는 테디를 부정하고 마지막 장면(영화 첫 장면)에서 그를 살해한다. 이후 레너드는 나탈리의 애인인 지미의 차를 탄다. '컬러'에서 나탈리(Dea)는 레너드를 조정해 테디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는 '흑백'에서 극의 갈등을 해결하는 테디(Deux)가 레너드에 의해 부정되고, 나탈리(Dea)로 대체된다. '흑백'에서 테디는 지미를 죽게 하고, 지미의 애인 나탈리는 '컬러'에서 테디의 죽음을 촉발한다. 레너드에게 'Deux/Dea'는 필요하지만, 결말을 해결하는 '신'은 거부되는 역설이 드러난다. 테디는 죽기 전 '지하실로 가면 진실을 알 수 있어"라고 레너드에게 말하지만, 그는 테디의 말을 외면한다. 레너드는 '지하실 = 현실 부정 = 검정'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러한 마음이 기억하는 색깔들이 메멘토에 시퀀스로 타난다.




8. DRUGDEALER



'Drug'은 건조한 약초를 뜻하며, 네바다의 황량한 사막처럼 레너드의 메마르고 결핍된 정서적 상태를 보여준다. 또한, 미국 사회에서 'Drug'은 불운한 과거와 성공의 이중적 이미지를 가지며, 사회적으로 악으로 간주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는 양면성을 띤다. 영화 <메멘토>에서 레너드가 쫓는 존G는 드럭딜러로, 나탈리와 테디가 욕망하는 대상이다. 'Drug'은 욕망이며 결핍이기에 나탈리, 테디, 레너드는 Drug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딜러 Dealer'가 된다. 테디, 나탈리, 레너드는 각자의 결핍을 안고 욕망을 거래(Deal)하며 결핍을 메꾸려는 인물들이다. 'Drug'은 개인의 결핍을 상징하고, 이들은 서로를 이용하고 조종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 마음의 결핍을 부정하면 왜곡되고, 욕망을 쫓으면 욕심이 되고 타인을 조정하게 된다. 결국, 마음이 기억하는 색깔은 누군가에게는 흑백(욕망의 발현)이고 누군가에게는 컬러(왜곡)로 드러난다.




9. DISCOUNT INN 디스카운트 모텔



'Discount'는 일반적으로 '할인'으로 해석하지만, '전체에서 무언가를 빼다'라는 뉘앙스를 지닌다. 이는 온전한 것에서 일부가 빠져 '불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영화 <메멘토>에서 이는 캐서린의 죽음을 부정하는 레너드의 마음 상태와 닿아 있다. 레너드 삶 전체에서 캐서린에 대한 부정은 그의 결핍을 드러내며 영화의 핵심 주제를 형성한다. 지미의 재규어를 타고 존G를 추적하는 레너드에게 'Discount Inn'은 결핍과 추적의 공간으로 상징된다.


레너드는 캐서린에 대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 'Discount Inn'을 찾는다. 캐서린의 빈자리는 그의 마음에 깊은 결핍을 낳고, 이는 채울 수 없는 욕망으로 남는다.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레너드는 끊임없는 착각과 새로운 욕망을 통해 그 빈자리를 메우려 한다. '디스카운트 모텔( Discount Inn)'은 레너드의 비어있는 마음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그는 이곳에서 창녀를 불러 아내의 행동을 재현하도록 주문한다. 이처럼 인간은 잃어버린 대상에 대해 욕망을 품지만, 그 대상의 부정으로 인해 의도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착각으로 결핍을 채우 된다.




10. REMEMBER SAMMY JANKIS 새미를 기억해라 / 자신을 부정하라!



'Remember Sammy Jankis(새미를 기억하라)'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레너드가 새미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레너드에게 새미는 자신의 상태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영화 마지막에서 새미를 통해 캐서린이 죽게된 이유가 레너드 자신임을 암시하며, '새미를 기억하라'는 문신은 '레너드 자신을 부정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실제 새미는 아내가 없는 사기꾼이며, 레너드는 아내 캐서린을 죽게 한 죄책감을 새미에게 투사함으로써 고통을 회피한다. '새미를 기억하라' 문신은 캐서린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명령이지만 동시에 이 말을 부정해야 한다. 그래서 레너드에게는 새미를 기억하면 할수록 동시에 자신을 부정하라는 역설적 메시지로 전달된다.



레너드는 아내를 죽인 가해자로 존G라는 대상을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레너드는 살해된 지미와 자신이 찍폴라로이드 사진 두 장을 불태우고 새로운 존G를 찾아 떠난다. 이때 다시 손에 문신된 '새미를 기억하라'가 클로즈업되며, 레너드는 '자... 내가 어디까지 했지!? (now... where was i!?'라고 중얼거린다. '새미를 기억하라'는 레너드가 아내를 살해한 기억을 지우고, 존G라는 새로운 가해자를 만들어 끊임없는 추적을 이어가게 하는 역설적 명령이다.






영화 <메멘토>에서 '기억하라'는 명령은 새미와 캐서린에 대해 대조적인 의미를 지닌다. 캐서린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명령이지만, '새미를 기억하라'는 것은 기억과 동시에 부정을 내포한다. 그래서 <메멘토> 마음이 진실을 부정할 때 기억이 왜곡되고 욕망이 발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검정'에서 '흑백'으로 그리고 '컬러'로 저장되며,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과정을 마음의 기억 저장 방식에 비유하고 색깔로 드러낸다. 욕망이 발현될 때는 '흑백'으로, 왜곡된 기억에 갇힐 때는 '컬러'로 나타난다. 반면,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폴라로이드의 처음처럼 '검정'으로 처리되고 흰색 테두리는 '검정'에 묻힌 진실을 보여준다.


진실의 외면은 비단 레너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살아가며 싫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은 외면하는 측면이 있으며, 그로 인해 생긴 빈자리는 어떤 기억으로 채우려 한다. 인간의 마음은 복잡해서 검정, 흑백 그리고 컬러 3가지 색깔로 다 설명될 수 없지만, 구조적으로 검정은 빈자리를 상징하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기억은 채워진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결코 진실(흰색)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기만과 싸우며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다. 레너드는 용감한 사자처럼 사건을 추적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기에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다. 스스로 자기 마음을 외면할 때, '흑백'과 '컬러'로 나타나는 기억은 인간을 외롭고 힘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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