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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Sep 07. 2016

여행이 생존 훈련은 아니잖아?

여행 중 안전에 관한 이야기


 길 위를 떠도는 긴 세계 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에 달라진 중 하나는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세계 뉴스를 마치 내 나라 소식인 것처럼 집중해서 보게 된 점이다. 지구촌 뉴스를 보며, '어, 저기 나도 갔었던 곳인데 사고가 발생했네!', '맞아. 저 나라가 저런 문제점이 있었지.' 하면서 어느새 지구 시민이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한다. 하지만 지구촌 뉴스에서 다루어지는 소식의 대다수는 자연재해, 테러, 범죄 등의 어두운 뉴스가 많았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큰 사고 없이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에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니스에서 발생한 차량 테러, 태국의 동시다발적 폭탄 테러, 터키 공항 테러 등 세계 곳곳에는 지금 이 순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무서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고, 이런 테러 뉴스는 여행자의 용기를 움추러들게 만든다.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지, 세상과 이별하러 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충격과 공포였던 니스 테러 사건     [출처 : 연합뉴스]


 천만다행으로 여행 중에 끔찍한 테러나 강력 범죄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떠난 직후에 큰 사건 사고가 발생해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네팔 대지진'이었다. 세계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네팔에서 보름 동안 머물다가 스리랑카로 떠난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우연히 게스트하우스에 있는 TV를 통해서 네팔에서 일어난 대지진 뉴스를 볼 수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에 걷던 거리와 광장이 무너져있는 장면을 보고는 정신이 멍해짐을 느꼈고, 네팔로 떠난다고 나선 나를 기억하는 가족과 지인들은 생사 확인을 위한 연락을 해왔었다. 그 이후로도 이집트를 떠난 직후에 카이로에서 테러가, 터키를 떠난 직후에는 폭동이, 프랑스를 떠난 직후에 파리 테러가 이어지니 왠지 내가 불운을 몰고 다니는 사신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도 사고를 겪지 않았기에 행운의 상징이라 봐야 하나?


 사실 여행자를 위협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이따금씩 발생하는 대형 테러 사건이나 자연재해보다는 언제 어디서 일어나도 놀랍지 않은 교통사고나 강도, 절도, 강간, 폭행과 같은 범죄 사건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만큼이나 치안이 훌륭한 나라가 없기에 여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소매치기 수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멀쩡히 눈뜨고도 순식간에 소지품을 뺏기기 십상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런저런 사례들을 인지하고 있어도 실제 상황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사건'을 맞이하게 되고 얼마 후 상황을 인식할 때쯤이면 이미 지난 일이 되어버리고는 한다.


 그분들의 놀라운 기술 앞에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항상 사고는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에 발생하기 마련이다. 여행이 6개월이 지난 시점에 팍팍했던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나타난 아름다운 도시와 친절한 사람들, 입맛을 자극하는 맛거리에 푹 빠져 거리를 걷는 순간순간이 행복했던 시기였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러다가 스페인 남부 해안선을 일컫는 태양의 해변(Costa del sol)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네르하에서 가장 기억하기 싫은 소매치기를 당했다. 네르하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서 이동할 준비를 했다먼저 지갑과 귀중품이 들어있는 작은 크로스백을 매고메인 배낭은 뒤로 보조 배낭은 앞으로 메고 숙소를 찾아 출발했다앞 뒤로 배낭을 멘 상태이다 보니 크로스백은 자연히 내 시선이 닿지 않는 옆구리 쪽으로 밀려있었다그렇게 길을 가다가 갑자기 길이 좁아지는 곳을 만났는데 우리 앞쪽에서 걷고 있던 젊은 흑인 3~4명이 그 좁아지는 곳에서 멈추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2~3미터 뒤에서 걷고 있던 우리 부부는 ‘아왜 하필이면 길이 좁은 이런 곳에 멈춰서 얘기하는 거야!’라고 투덜 되면서 그들을 피해가던 순간. '사건'을 맞이하였고, 숙소 리셉션에 도착해서야 활짝 열린 크로스백을 발견할 때에는 이미 지난 일이 되어버렸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네르하 소매치기 사건의 현장.


 현지의 범죄자들은 여행 중인 외국인들이 강도나 절도를 당해도 쉽게 신고를 못하고, 신고하더라도 범인을 잡아서 사후처리까지는 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서 여행자 대상의 범죄가 많다. 낯선 여행지에서 여행자를 노린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여행자 스스로 나름의 안전 수칙을 만들고 잘 지키는 방법밖에는 없다. 해가 진 후에는 숙소를 나서지 않는다거나, 현금을 최소화하고 신용카드는 여러 장으로 분산하는 방법, 복잡한 거리에서는 백팩을 앞으로 메고 다닐 것, 낯선 사람이 말을 걸 떼는 소지품을 잘 움켜쥐고 있기 등의 나름의 안전 수칙을 세웠고 가능하면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스페인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덕분에(?) 보안 의식을 늦추지 않게 되어서 소매치기와 강도로 악명 높은 중남미에서는 단 한건의 사고 없이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다. 당시에 잃어버린 지갑은 몹시 마음 아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더 큰 사고를 예방해준 액땜이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소매치기와 강도는 약간만이라도 긴장하고 다닌다면 당할 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표적을 노리는 범죄자들은 광장 같은 곳에서 뭔가 털게 있을 법한 여행자를 점찍고 오랫동안 주시하면서 행동을 관찰한다고 하니 그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차림새로 다니거나 습관적으로 경계의 제스처를 취한다면 섣불리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으리라. 여행에 남는 것은 사진이라며 꽃단장하고 셀카봉을 들고 광장을 활보하거나,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자주 노출시키는 행동이나 흥겨운 주변 상황에 흠뻑 빠져 넋을 놓고 있다가는 내 물건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여행지에서의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여행 중에 가장 절도 사건에 취약한 순간은 도시 간 이동할 때이다. 특히 웬만한 버스는 기본이 10시간일 정도로 장거리 이동이 많은 중남미에서는 버스 타고 이동하는 순간은 항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치렁치렁 짐을 들쳐 메고 복잡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항상 사주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했고, 버스에 자리를 잡으면 잠든 사이에 가방을 도난당하지 않기 위해 다리사이에 가방끈을 동여매야 했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긴장하면서 버스를 타지만 그래도 꼭 가방을 통째로 도난당하거나 잠든 사이에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을 뺏긴 사람들이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고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항상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대비하는 수 밖에는 없으니, 가끔은 지금 내가 여행을 하는 건지 생존 훈련을 하는 건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앞좌석에 붙어 있는 발판을 내리면 다리를 편하게 올릴 수 있지만, 나는 항상 내 다리보다는 가방을 올려놓고 자물쇠를 걸어야 했었다.


 우리나라의 치안이 훌륭하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더욱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보다 한참은 떨어지는 치안 수준에 대한 대비가 철저히 필요하다. 커피점에서 가방이나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둔 채로 주문을 하러 갈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잠시라도 내 몸을 떠난 물건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곳이 많다. 심지어 남미에서는 그리 고급식당이 아니었음에도 의자마다 가방을 걸 수 있는 자물쇠가 있는 곳도 있었고, 장사 좀 된다는 곳은 으레 사설 경호원이 총을 들고 입구를 지키는 곳이 많았다.


 특히 가장 심했던 곳이 최근에 올림픽이 열렸던 브라질과 범죄율로 유명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도대체 그 나라들은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곳에 도착해서 잠시만 둘러보더라도 그 원인은 빈부격차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도심에는 호화스러운 쇼핑몰과 레스토랑, 호텔이 즐비하지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외곽으로 벗어나면 과연 이런 환경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빈민가가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다.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과 맨발로 구걸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거리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이곳에서 벌어지는 범죄들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최소한의 행복을 위해서 아니 그냥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력이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빈부의 격차 앞에서 좌절한 나머지 벌어지는 슬픈 현실이 매일 눈앞에 펼쳐졌다. 복잡한 거리 한가운데에서 지나가는 행인의 목걸이를 잡아 뜯고 달아나는 앳된 청년을 보면서 점차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문제가 심해지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다.


의자마다 가방을 묶을 수 있는 찍찍이 고리가 달려있던 리우 데 자네이루의 스타벅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사건 사고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아니 이렇게 위험한 곳에 목숨 걸고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목숨이 두어 개쯤 되는 사람들일까? 사실 안전하게 끝난 여행은 알려지지 않지만, 문제가 있었던 여행은 널리 알려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범죄로 소문이 흉흉한 곳이라도 그곳 또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어디에나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는 법이니. 하지만 여행자는 항상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다는 점은 잊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곳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괜한 객기를 부리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행은 생존 훈련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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