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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Aug 19. 2016

별을 덮고 자는 밤

여행 중 캠핑에 관한 이야기


 최근 들어 캠핑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익숙한 집을 잠시 떠나서 잠시나마 자연의 일부가 되어 신선한 기운을 느껴보는 일, 조금은 불편하지만 좁은 텐트에서 가족들이 부대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사람들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자유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리 캠핑이 좋다고 한들 텐트에서 수개월간 생활한다면 어떨까? 난민이 아니고서야 그럴 일이 있겠냐 하겠지만, 세계여행 중,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에 두 달과 남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의 한 달 합쳐서 3개월이 넘는 기간을 텐트에서 숙식을 하며 캠핑 여행을 했다.


이따금씩 사과가 떨어져서 놀라게 했던 프라하의 캠핑장


 도시를 이동하며 캠핑장을 찾아 텐트를 치고 잠시 머물다 다시 다른 캠핑장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 같은 여행을 하게 된 대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숙박비의 부담이었다. 장기 여행의 경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숙박비이다. 숙박비를 어떻게 아끼느냐에 따라 여행 일정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액티비티나 투어에 경비를 할당할 수 있기에 가능하면 저렴한 숙소를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하지만 유럽과 아프리카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숙박비가 비싸서 저렴한 곳을 찾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캠핑장은 두 사람이 하룻밤을 머무는데 우리 돈으로 평균 2~3만 원이면 충분했고, 취사를 할 수 있어서 식비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여행자 물가가 비싼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도 경비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고, 숙박비 절감액은 자연스럽게 식사의 질의 향상과 투어 및 입장료의 지름으로 이어져서 여행의 질도 높아졌다.


 사실 캠핑 여행을 선택할 때에 숙박비 절약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일정의 자유로움 때문이었다. 유럽에 머물렀던 7~9월은 연중 최고의 성수기 이기에 괜찮은 가성비의 숙소를 구하려면 미리미리 일정을 확정하고 숙소 예약을 해야 한다. 결국 숙소에 의해 여행의 일정이 결정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서, 더 머물고 싶은 도시임에도 떠나야 하거나 계획에 없는 새로운 여행지를 충동적으로 찾아가는 일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캠핑 여행을 하다 보니 캠핑장이 맘에 안 들어서 옮기는 경우는 있어도 자리가 없어서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예약할 필요도 없고, 머무는 중에도 자유롭게 연장이 가능했기에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여행지를 즐길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처음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스위스에서 트래킹을 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여행 중에 다른 여행자들로부터 이탈리아 북부의 알프스 지역인 돌로미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과감히 스위스 일정을 덜어내고 돌로미티를 선택했다.(4개월 정도 유럽을 여행하면서 스위스를 가지 않은 사람도 드물듯.) 막상 돌로미티 지역에 도착해서 하루 이틀 알프스 트래킹을 즐기던 중에 갑자기 날씨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또다시 일정을 수정해서 이탈리아 북부의 베로나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일기예보를 확인하고는 다시 돌로미티를 찾아가서 쾌청한 날씨에 트래킹을 즐길 수 있었다. 숙박 예약에서 자유로운 캠핑 여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로미티 지역의 seiser alm 캠핑장. 모든 편의 시설은 지하에 있는데 고급 호텔을 연상시킬 만큼 훌륭했다.


 세계여행 중에 캠핑 여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 무거운 캠핑 장비들을 준비해서 갔던 거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 출발 전부터 유럽에서 사용할 자동차를 리스 계약했었고 아프리카에서도 자동차를 렌트할 계획이 있었기에 캠핑 여행을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피와 무게가 만만치 않은 캠핑 용품들은 미리 준비해서 계속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현지에서 저렴한 제품들로 구입해서 여행을 했다. 유럽이나 남아프리카의 경우 캠핑 문화가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기에 어디서나 쉽게 캠핑 용품을 구할 수 있었다. 특히 유럽은 데카트론(Decathlon)이라는 창고형 아웃도어 매장이 도시마다 있고, 품질에 비해 가격도 굉장히 저렴해서 큰 부담 없이 4인용 텐트와 타프, 에어매트, 테이블, 의자, 전원 케이블, 핫플레이트, 주방 용품 등 캠핑용품 풀세트를 완비할 수 있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호텔 대신에 캠핑장에서 3~4박만 보내도 캠핑용품 구입비가 빠질 정도였는데, 60유로에 구입한 텐트에서 무려 60일을 잤으니 대성공인 셈이다. (우리나라 캠핑장이 비싼 장비 자랑의 장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60유로짜리 텐트의 경험은 합리적인 소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캠핑이 끝날 무렵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캠핑 장비를 캠핑장에서 되팔기까지 했으니 이보다 더 경제적인 여행이 있을까?


유럽 캠핑 여행 마지막 캠핑장에서 판매 포스터를 붙이고 30분만에 캠핑 용품를 모두 팔았다.


 숙박비를 아끼고 일정에서 자유롭고 싶어서 시작한 캠핑 여행이었지만, 여행을 마친 지금 떠올려보면 화려한 문화유산으로 가득했던 여행지보다 캠핑장에서 보냈던 시간이 더 많이 그리울 정도로 우리 부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새소리에 일어나 안개가 내려앉은 호수변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해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서 잠드는 하루하루가 꿈같은 일상이었다.


 캠핑의 일상은 캠핑장에 도착해서 좋은 자리를 찾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편의 시설과는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고 나무 그늘 아래 잔디가 폭신하게 자란 자리, 전망이 트여있으며 아침햇살에 텐트 위의 이슬을 말릴 수 있는 곳이 캠핑장의 명당이었다. 자리를 잡으면 내가 주거 공간을 만드는 동안 아내는 조리 공간을 만들고 식사를 준비했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는 차는 캠핑장에 둔 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내 관광을 다녀왔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서 캠핑장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게 일상이었다. 가끔은 비가 와서 좁은 텐트에 갇혀있던 적도 있고, 너무너무 더운 밤이면 텐트 앞에 매트를 깔고 별을 덮고 자기도 했다. 처음에는 텐트에서 생활하는 자체가 많이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불편한 점들에 적응을 하게 되어서 언제든 펼치기만 하면 생기는 우리만의 독립된 공간에 익숙해졌다. 해가 지면 TV도 인터넷도 없는 우리의 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끝없는 대화뿐이었다. 그동안 같이 살면서도 서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어린 시절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먼 미래의 계획까지, 불 꺼진 작은 텐트 안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각의 자극이 적어진 그 공간에서는 얇은 천 너머로 들리는 자연의 소리에 예민해진 청각은 급기야 내 마음속에서 속삭이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한 여름밤의 조용한 텐트 안은 매일 밤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났었다.


나미비아 나미브 사막 초입에 있는 세서림 캠핑장


 유럽에서 캠핑을 하던 시기는 한 달에서 두 달까지 주어지는 길기로 유명한 유럽 사람들의 여름휴가 기간과 겹쳤었다. 그래서 캠핑장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캠핑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차에 붙어있는 번호판의 국가 표기만 보면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 쉽게 알 수 있었기에 캠핑장에서 동향 사람을 만나면 금세 친구가 되고는 했다. 프랑스 번호판을 달고 있기는 했지만 어느 캠핑장에서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 부부는 젊은 동양인 캠핑 여행자라는 이유 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우리가 캠핑장에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신기한 눈으로 우리를 좇던 시선들은 작은 기회만 생기면 질문을 쏟아냈고, 우리 역시 그들의 휴가 문화가 궁금했었기에 이것저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캠핑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는 어릴 때부터 한 두 달씩 캠핑여행을 하는 일이 예사라고 했다. 부모를 따라 캠핑을 하면서 여행이 주는 가치를 배우고 공용 공간에서 기본적인 예의를 배운다고 한다. 그래서 캠핑장에서는 대여섯 살 된 꼬마들이 키도 닿지 않는 공동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야무지게 주변 정리를 하는 모습이나 양손에 주렁주렁 쓰레기를 들고 꼼꼼하게 분리수거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 문화 덕분인지 유럽의 어느 캠핑장을 가도 항상 깨끗한 주방과 화장실을 만날 수 있었고, 해가 지면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소음을 줄여주었기에 항상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고기를 굽고 술잔을 부딪히며 웃고 떠드는 캠핑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유럽에서 즐겼던 캠핑이 깔끔하게 정돈된 분위기의 자연 속에서 머무는 것이었다면 아프리카에서의 캠핑은 최대한 야생에 가까운 모습의 분위기였다. 캠핑 첫날부터 폭풍우가 함께 시작했었고 나미브 사막에서는 모래 폭풍 때문에 텐트 안이 흙먼지로 가득 차서 모래를 씹으면서 잠을 잤던 적도 있었다. 야생 원숭이와 멧돼지의 습격으로 아침 식사를 뺏긴 적도 한두 번이 아니고 밤새 울리는 야생동물 소리에 마음을 졸이며 잠든 날도 많았다. 동굴 대신 텐트, 돌도끼와 부싯돌 대신에 전기 버너를 사용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문명의 이기만을 가지고 인간이라는 종으로 대자연의 일부에 자리 잡는 경험은 수천 년 전의 그들을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게 해주었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감히 바라보기도 힘들 정도로 숭고한 기운에 눌려 한없이 작아지는 순간을 만날수록 자연의 정복자라고 자칭하는 인간의 오만함이 얼마나 비루한지 느낄 수 있었다. 수억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끝없는 사막과 웅장한 협곡, 그 안에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 야생동물들과 숨이 막힐 정도로 하늘을 빽빽하게 덮인 별들에 둘러싸인 채 보내는 일상은 거대한 우주 앞에 티끌보다도 작은 나의 존재에 대한 겸허함과 그동안 얼마나 부질없는 고민을 하며 살았던가 돌아보게 해주었다. 치열한 경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 이해관계에서 생겼던 분노들... 먼지보다 작은 존재의 찰나와 같은 순간.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주위의 복잡했던 모든 일들이 조금 떨어져서, 아니 대자연의 시선만큼 떨어져서 바라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캠핑의 경험은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주었다.


보츠와나에서는 언제 어디서 야생동물이 나와도 놀랍지 않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로얄나탈 국립공원 캠핑장




 수개월간의 캠핑 여행은 주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매트 한 장을 깔면 꽉 차는 비좁은 공간에서도 우리 부부는 행복했었다. 안정적인 주거 공간은 삶의 질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고 대한민국의 주거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빚을 안고 집을 마련하고 평생을 일하며 빚을 갚으며 내 집 마련이 일생의 목표가 되는 현실의 삶은 왠지 서글프다. 빛나는 일상은 현실을 희생하면서 훌륭한 공간을 만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서 현실을 즐기는 하루하루임을 잊지 않고 싶다. 별을 덮고 자던 '그 밤'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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