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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Aug 04. 2016

오늘부터 같이 살자.

여행 중 에어비앤비에 관한 이야기


 "내일은 토요일이라 출근하지 않아. 아침 일찍 나랑 Lion head에 가볍게 등산하러 가지 않을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머문 지 이틀째 날 저녁, 옆방에 사는 크리스틴이 물어왔다. 우리 부부는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바다가 보이는 창이 있는 작은 방을 빌렸고, 크리스틴은 그 집의 주인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모자만 눌러쓰고 크리스틴을 따라나섰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아침 공기를 거친 날숨으로 데워가며 올라간 Lion head는 케이프타운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바위 언덕이었다. Mother city라는 별명답게 거대한 테이블마운틴이 도시를 품어 안고 있는 듯한 케이프타운의 전경을 바라보며 크리스틴은 도시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었다.


 "저기 보이는 곳이 도심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지는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간 외곽에 살고 있는데, 저기 테이블 마운틴 건너편에 바다가 보이는 Camp bay, Hout bay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 그리고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평지에는 타운쉽이라는 흑인 집단 거주지역이 있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전혀 다른 세상이지. 아파르트헤이트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어도 흑인과 백인 사이는 여전히 큰 벽이 있는 것 같아."


 독일에서 이민 오신 부모님의 외동딸로 자란 크리스틴은 집값이 비싼 편인 케이프타운 시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에 살며 좋은 직업도 가지고 있기에 삶에 대한 큰 불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케이프타운을 내려다보며 담담한 어조로 인종에 따른 극심한 양극화 문제와 범죄, 최근 대통령의 실정으로 인한 경제문제에 대해 불만을 토하며 영국으로 이민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크리스틴뿐 아니라 남아공의 많은 젊은이들이 유럽에 취직하는 것을 꿈꾼다고 말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환경에 사는 그들은 항상 밝고 걱정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크리스틴을 통해 일부만 보고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단순한 생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을 한번에 깨준 케이프타운. 멀리 보이는 산이 테이블마운틴이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던 크리스틴의 게스트룸


 여행을 통해 현지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 언어와 문화 차이의 장벽을 넘어 그들을 만나기까지 여행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 장벽 사이로 잠시 비친 모습을 보고는 '그들은 이럴 것이다.'라는 추측을 하며 그들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세계일주를 하며 다양한 문화권을 지나면서 나와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 몹시 궁금했다. 어설픈 관찰로 그들의 삶을 내 방식대로 추측하고 싶지 않았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장벽을 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누군가 열어주는 문으로 장벽의 건너편을 볼 수 있다면...


 여행지에서 현지인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은 어떤 여행자라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현지의 그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막상 여행자에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현지인은 왠지 거부감이 든다.(어쩌면 거부하는 것이 옳을 지도) 누구든 덜컥 믿고 따르기에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다. 특히 현지의 물정을 모르는 여행자는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쉽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고민이 생긴다. 그들과 친해져서 좀 더 그네들을 이해하고 싶은데, 내 머릿속의 안전 요원은 계속 위험 경고를 준다. 어느 선까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기에 그들이 내미는 손을 늘 내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항상 아쉬웠다. 혹시 방금 내쳤던 손이 멋진 인연을 만드는 시작은 아니었을까?


 여행이 길어지면서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의 삶에 대한 궁금증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들은 어떤 곳에서 살고, 무엇을 먹고, 무슨 일을 하며, 어떤 놀이를 즐기고,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는가? 와 같은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인터넷 검색, 책, 다큐멘터리 등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방법을 고민하다가 '에어비앤비'를 생각해냈다. 에어비앤비는 일종의 공유 경제 모델로 남는 방 혹은 집전체를 여행자에게 빌려주는 숙박 형태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의 대안으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고 있고, 나 역시 세계일주 여행 중에 꽤 많이 이용했기에 웬만한 호스트보다 많은 후기를 가지고 있다.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에 숙소를 빌려주는 호스트와 그곳을 이용하려는 게스트는 다양한 방법으로 본인을 인증해야 하고, 서로 간섭받지 않으며 상호 후기를 남길 수 있기에 믿을만했다. 그렇다. 에어비앤비를 통하면 숙소뿐만 아니라 여행자에게 열린 마음을 가진 인증된 현지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집에서 머물면서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볼 수 있고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다. (집 전체를 빌리게 되면 열쇠만 전달받고 호스트 얼굴도 못 보는 경우도 있다.)


과테말라 케살테낭고에서 머물렀던 오래된 목조 주택
호스트가 다리를 다쳐 입원하는 바람에 얼굴도 못 본채 내 집처럼 지냈던 자그레브에서의 에어비앤비


 앞서 말했듯이 에어비앤비는 숙박을 위해 준비된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일반 가정집의 남는 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보니 가끔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갑자기 집주인이 여행을 떠나서 집전체를 사용하게 되는 운 좋은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예약한 집에 갑자기 가족이나 친척이 오게 되어서 불편하게 지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었다.


 스페인을 여행하던 때였다. 마드리드에서 밤 11시에 바르셀로나로 떠나는 야간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갑작스러운 메일을 받게 되었다. 호스트의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인해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의 에어비앤비에서 온 일방적인 통보였다. 한 시간 뒤면 야간 버스를 타고 내일 새벽에 바르셀로나에 도착인데, 갑자기 숙소 예약이 취소되었다고 하면 어찌하란 말인가! 게다가 바르셀로나는 숙박비가 비싼 편이라 2주 전부터 심사숙고해서 고른 숙소였는데,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아다녀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심란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에 대한 변명이라도 들어 보자는 생각에 기존의 호스트였던 게르손에게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버스터미널로 나오기를 요청했다. 나의 불안한 마음만큼이나 흔들리는 버스에서 선잠을 자는 동안 버스는 오전 6시쯤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다행히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게르손은 터미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핼쑥한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첫인사를 건네 왔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게르손은 미국으로 이민 가서 번 돈으로 바르셀로나에 자리를 잡아 집을 여러 채 구입하여 에어비앤비를 통한 숙박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예약했던 숙소가 이웃주민과 불화로 인해 잠시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이미 열흘 치 숙박비까지 지불한 상황인 데다가 체크인하는 당일에 이런 문제가 발생해서 난감했지만, 일단은 에어비앤비 측에 지금의 상황을 전달하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게르손의 집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짐을 내려놓고 야간 버스에 지친 몸을 씻고 쉬면서 게르손의 인생 굴곡사를 듣던 중에 에어비앤비에서 연락이 왔다. 이렇게 예약 완료 후에 갑자기 취소된 경우에는 에어비앤비에서 직접 다른 숙소를 섭외해준다. 기존에 예약한 숙소와 비슷한 수준의 숙소 리스트를 보내주는데, 약간 더 비싼 곳을 선택하더라도 숙박비 차액은 물론이고 에어비앤비 담당자와 통화하며 발생한 국제 전화비까지 에어비앤비 측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사실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처럼 인기 있는 여행지에서 당일날 구할 수 있는 숙소는 2주 전에 내가 심사숙고해서 찾은 곳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워낙 저렴한 곳을 예약했던 터라 에어비앤비 측에서 보내준 리스트 속의 숙소들은 내가 지불한 금액보다 비싼 곳이라는 점을 빼고는 썩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중에서 바르셀로나의 명소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르뚜르의 포스팅을 발견했다. 이용 후기가 한 건도 없는 신규 호스트였기에 훌륭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방이 비어있었던 것이었다. 에어비앤비의 특성상 이용 후기가 굉장히 중요하기에 아무도 가지 않았던 곳을 선택하는 것은 그만큼 리스크를 감수해야 했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게르손의 차를 타고 도착한 아르투르의 집은 정말 사그라다 파밀리아 바로 앞에 있었다. 주말 늦잠의 여유를 즐기다가 얼떨결에 우리를 맞이한 호스트는 아르뚜르와 알렉산드라라는 젊은 커플이었다. (사실 커플은 아닌데 같이 살고 있는... 아, 좀 복잡하다. 알렉산드라는 퇴근하면 아르뚜르의 팔 배게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길래 당연히 커플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은 알렉산드라의 남자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그들의 연애관은 우리랑 좀 다른 듯하다.) 건축학과 석사과정 중이라는 아르뚜르의 집은 전 세계의 건축학도가 우러러보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바로 앞에 있었다. 그 덕분에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일출부터 야경까지, 맑은 날과 비 오는 풍경까지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인테리어 사업을 창업 중이라는 그들은 가우디 시절부터 있었다는 100살도 넘는 낡은 아파트를 굉장히 세련되게 꾸며놓았고, 항상 게스트를 존중해 주어서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게르손의 숙소가 예약 취소되었다고 메일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풀려 대성당이 보이는 아르뚜르 집에서 스페인식 오믈렛을 배우며 깔깔거리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었다. 새옹지마. 세계일주 여행 중에 참 여러 번 떠올랐던 사자성어.


깨끗한 흰색 소파 커버 때문에 항상 조심스러웠던 아르뚜르의 거실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빠에야 팬을 써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정말 완벽한 도시처럼 보였다. 굳이 가우디의 위대한 건축물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격자로 짜여있는 깔끔한 시내와 편리한 교통 시스템, 도시와 맞닿아 있는 눈부신 바르셀로네타 해변과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공원이 있는 몬주익 언덕까지, 여기서 평생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바르셀로나는 매력적이었다. 나는 또다시 부러움병이 도져서 이런 멋진 도시에 살고 있는 네가 부럽다고 아르뚜르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아르뚜르의 대답은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 나도 바르셀로나가 정말 멋진 도시라는 말에 동의해. 하지만 여느 도시가 그렇듯이 이 멋진 도시에도 여행자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 많아. 스페인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나은 편이지만 여기도 실업문제가 심각해. 나도 창업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많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고, ZARA에서 일하고 있는 알렉산드라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야. 도시가 관광지가 되면서 물가와 부동산은 너무 많이 올라서 생활하기 힘들 지경이고, 도심은 관광객과 부유층을 노린 범죄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야. 카탈루냐 지역은 오래전부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려고 노력 중인데 경제, 정치, 문화 등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쉬운 문제가 아니야. 난 조부모님이 계시는 발렌시아로 돌아가고 싶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감동.
몬주익 언덕에서 본 바르셀로나 전경


 역시 여행자의 시선과 생활자의 시선은 달랐다. 그냥 호텔에 머물면서 바르셀로나를 둘러봤더라면 이 매력적인 도시에 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채워서 떠났을 텐데, 아르뚜르를 통해서 잠시 생활자의 시선으로 도시를 돌아볼 수 있었다. 최근 에어비앤비의 방송 광고를 보면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광고 문구를 볼 수 있다. 그 문구처럼 여행의 묘미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느껴보는 일에 있었다. 우리와 다른 삶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그들과 같이 살아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




   미국의 마이애미에서 해안경비대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토퍼의 집에서 열흘간 같이 살았었다. 나는 이런 기회를 통해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도 정확하게 똑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런 면에서, 네가 여행 중이듯이 나 역시 여행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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