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숙소에 관한 이야기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여행지에 도착했다. 버스나 기차에서 내려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아마도 꼭 가보고 싶었던 명소가 아니라 숙소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숙소의 첫인상이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고, 숙소의 상태가 도시에 머무는 동안 여행의 만족도를 크게 좌우하였다. 아무리 모든 사람이 극찬을 하는 아름다운 여행지라도 숙소 체크인 과정부터 삐걱거리고 잠자리 환경이 열악하면 괜히 마음 한구석의 불편함이 느껴졌고,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른 소박한 마을이라도 아늑한 숙소에 묵게 될 때면 평범한 골목길마저도 한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경험을 자주 했었다. 숙소는 단순히 잠을 자기 위해 머무는 공간을 넘어서 그 자체가 여행지의 한 부분이었다.
비록 방 한 칸에 불과할지라도 생활 여행자에게는 삶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주거 공간이기에 숙소 선정은 항상 신중했고 여행 내내 최고의 고민거리였다. 숙소를 고를 때면 크게 가격, 위치, 청결도, 친절도, 시설 등을 고려하는데, 사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숙박비가 비싼 숙소가 대체로 좋다. 당연하지 않은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고 싼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세계일주 경비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숙박비이기에 가능하면 저렴한 숙소를 찾기 위한 고민이 많았었다. 저렴하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숙박 선정 요인의 일부(또는 전부)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테면 위치가 좋으면 시설이 열악하거나, 깨끗하고 친절하면 도시 외곽에 있다거나 대충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에 그것을 지키면서 다른 요소는 저렴한 가격이라는 미명 하에 받아들이는 것이 이 숙소 선정의 핵심이었다.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그것. 나에게는 접근성이었고, 아내에게는 청결도였다. 고로 우리 부부는 가격이 저렴하면서 위치가 좋고 깨끗한 곳이어야 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저렴하면서 완벽한 곳은 없다. 그랬기에 숙소 선정을 할 때면 항상 위치는 좋지만 허름한 숙소와 깨끗하지만 외곽에 있는 숙소 간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숙소 선정의 더 중요한 문제는 사실 따로 있었다. 바로 정보의 비대칭성. 아무리 숙소 사진과 평점, 이용 후기를 꼼꼼히 확인하고 고른 숙소라 하더라도 막상 도착해보면 실망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숙소 사진의 경우는 애당초 크게 신뢰를 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여행자들이 직접 남긴 후기를 통해 맹인모상 하듯이 숙소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봤지만 이 또한 실패 확률이 높았다. 청결도, 친절도의 기준은 너무도 주관적이었고, 그나마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위치에 대한 평가 역시 체력이 좋은 서양 여행자의 '걸어서 10분 거리'가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언덕길 30분 헤매기'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작성자 정보를 보고 동양인 30대 이상 커플 여행자의 후기를 참고하려고 노력했고, 20대 남성 서양 여행자의 코멘트는 믿고 거르는 후기였다. (그들은 어찌나 긍정적인지 여자 여행자들과 펍만 있다면 어떤 숙소라도 대체로 만족했다.) 사실 여행 후기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숙소를 찾아다니면서 고르면 가장 좋겠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숙소를 찾아 헤매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성수기를 맞이한 여행지에 예약 없이 숙소를 찾아다니다가는 길에서 자거나 다시 버스를 타고 인근 도시로 떠나야 하는 일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성수기라면 당연히 미리 예약을 하고 가야 하지만, 숙소마다 잔여 객실이 어느 정도 있는 상황이라면 미리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숙소 후보를 3~4곳 선정해 놓고 직접 방문해보고 결정했다. 무료 예약 취소가 가능한 숙소는 미리 예약해 두고 직접 방문 후 결정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1년 2개월의 세계 여행 중에 다양한 숙소에 머물렀었다. 캠핑장의 텐트, 허름한 여행자 숙소, 중저가 호텔, 에어비엔비를 통한 현지 가정집, 럭셔리했던 크루즈 객실 등등.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자 숙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다른 형태의 숙소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어느 여행지를 가더라도 저렴한 숙소에서는 여행 경비 절감을 위해 모여든 장기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특히 여행자들 간의 정보 공유가 활발한 일본, 이스라엘 여행자들이 많은 숙소는 그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런 숙소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는 공동 주방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숙소들을 보통 게스트하우스, 백패커스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설령 호텔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더라도 배낭 여행자 숙소로 통칭된다. 깔끔한 로비와 화장실이 딸린 방에 새하얀 시트의 더블 침대가 떠오르는 호텔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여행자 숙소는 입구에서부터 시끌벅적하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항상 정신없이 분주한 리셉션 데스크, 온갖 정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지저분한 게시판, 로비에 있는 푹 꺼진 소파 위에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누워 책을 보는 여행자가 있고 최신 팝이 들린다면 여행자 숙소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직원의 안내로 방으로 들어가면 이층 침대와 짐 보관을 위한 캐비닛이 빼곡히 자리 잡은 사이로 배낭과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며, 공동욕실에는 얼룩덜룩하게 때가 묻은 샤워 커튼 너머로 누군가 버리고 간 샴푸가 보인다. 공동 주방에는 코팅이 다 벗겨진 프라이팬과 찌그러진 알루미늄 냄비로 열심히 파스타를 만들고 있는 여행자 보이고, 그의 옆에 있는 냉장고를 열면 이름이 적혀있는 비닐봉지에 담긴 식재료가 빈틈없이 들어차 있다. 이런 여행자 숙소에서는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불문하고 누구나 여행이라는 공감대로 친구가 될 수 있다. 여럿이서 같이 사용하는 다인실의 침대맡에서, 공용 주방의 싱크대에서, 로비의 소파에서 낯선이와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배우는 재미야말로 배낭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여행자들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여행자 숙소를 떠올리면 페루의 쿠스코에서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가 떠오른다. 안데스 산맥에 위치하고 있는 쿠스코는 해발 고도가 3,400m 가 넘는다. 그래서 쿠스코에 막 도착한 여행자들은 고산 증세를 겪기도 하고 조금만 걸어도 호흡이 거칠어진다. 아레키파에서 12시간이 걸리는 야간 버스를 타고 쿠스코에 도착한 나도 두통과 메스꺼움을 느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쿠스코에서 머물기로 했던 숙소는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일만큼 높은 곳에 있었는데, 한참의 흥정 끝에 탄 택시는 언덕은 못 올라간다고 버티는 바람에 배낭을 메고 숨을 헐떡이며 쿠스코의 달동네를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온몸이 땀에 젖었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상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소파에 널브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숙소 주인인 나탈리가 건네주는 꼬카차를 마시고 하나 둘 모여든 게스트들이 인사를 건네는 것을 들으면서 점점 정신이 들었고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20대 대학생인 나탈리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쿠스코 구시가지가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언덕 위에 있는 3층 집이었다. 살던 집을 증축하면서 오랫동안 가족이 살던 공간을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서면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 떠오르는 거실과 주방을 중심으로 4개의 작은방이 있는 아담한 숙소였다. 그런 구조 덕분인지 숙소에 머무는 게스트들은 방에 머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거실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주방에서 같이 요리를 하고, 함께 테라스에 앉아서 경치를 즐겼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도 금세 오랜 친구인 것처럼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호스티스 나탈리의 역할이 컸었다. 대게의 숙소 주인들은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해서인지 게스트와 약간의 거리감을 두고 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탈리는 마치 자신도 게스트인 것처럼 여행자들 사이에 어울리며 마음을 열었고 여행자들은 그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다. 아침식사 후에 각자 외출 준비를 할 동안 나탈리는 집안 청소를 하고, 정리가 마무리되면 다 같이 쿠스코 시내로 나섰다. 쿠스코에 오랜 기간 살았던 나탈리의 안내로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시골 장터와 로컬 식당을 다니기도 하고 함께 피어싱이나 타투를 하러 가는 여행자도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같이 장을 봐서 저녁 식사 시간에는 여행자마다 각자의 나라 음식을 만들어 나누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우리 부부가 만든 불고기와 파전은 항상 인기 만점이었고 우리가 소개한 병뚜껑 멀리 보내기 게임은 모두를 긴장시키는 설거지 내기가 되었다. 이렇게 작지만 따뜻한 분위기의 숙소에 머물 때면 낯선 여행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랫동안 살던 동네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페루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인 쿠스코에는 큰 규모의 시설 좋은 숙소도 있고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한인 숙소도 있다. 그러나 비록 언덕 위에 있어서 숨을 헐떡이며 가야 하는 위치이고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던 낡은 건물이었지만 마치 오랜 친구 집에 놀러 갔었던 듯한 기분이 드는 그곳을 잊을 수 없다. 9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아닌 친구로서 마음 열어준 나탈리와 헤어지던 날, 주적주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택시를 사라질 때까지 우리를 향해 눈시울을 붉히며 손을 흔들어 주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련하다.
여행 중에 머물렀던 숙소 중에 가장 특이했던 곳을 고르라면 터키의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는 괴레메 마을에서 지냈던 숙소가 생각난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터키 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에 있는 대규모 기암 지대이다. 수 억 년 전의 화산 활동으로 인해 생성된 응회암 층이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이곳은 지구가 아닌 듯한 신기한 풍경으로 많은 예술 작품에 영감을 준 곳이기도 하다. 카파도키아는 가로 길이만 400km에 달하는 거대한 지역이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관광 명소들이 모여있는 괴레메 마을에 머문다. 여기 괴레메 마을에는 요즘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형태의 집들이 많다. 바로 동굴집이다. 카파도키아는 뾰족한 도구로 쉽게 부스러지는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오래전부터 바위산을 깎아서 만든 동굴 형태의 집이 많았다. 심지어는 종교 박해를 피해 지하 수십 미터까지 파고 내려가서 만든 거대한 지하 도시가 있을 정도로 카파도키아의 주거 문화는 독특하다. 지금은 동굴집에 살고 있는 현지인은 많지 않지만 오래된 동굴집을 보수하여 호텔로 운영하는 곳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동굴집에서 살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찾지만 사실 시설에 비해 저렴한 편은 아니다.
시설이 좀 열악하더라도 저렴한 숙박비로 동굴 호텔에 묵어보고 싶은 생각에 예약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욕실이 없는 작은 트윈룸 하나를 예약할 수 있었다. 새벽녘에 어슴푸레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고깔 모양의 돌무더기가 가득한 외계 행성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잔뜩 흐린 하늘 탓에 기괴하기까지 느껴지는 신비로운 마을 괴레메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이라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우리를 반겨준 것은 내 가방 안의 빵을 노리는 거리의 개들 뿐이었다. 터키의 대표 관광지인 이곳에서 저렴한 축에 속하는 숙소를 예약하면서 훌륭한 위치까지 바랄 수는 없었기에 언덕길을 한참을 헤매고서야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체크인을 하기까지 한참을 기다리고서야 비로소 내가 머물 방을 안내받았다. 툭 치면 부스러지는 돌산을 파내서 만든 방에는 간신히 싱글 침대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방보다도 훨씬 넓은 테라스와 탁 트인 전망 덕분에 마치 옥탑방에서 자취하는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느꼈던 시원시원함이 느껴졌다. 분지 형태에 가까운 괴레메 마을의 테두리 언덕에 자리잡은 숙소라서 테라스에 앉으면 뾰족뾰족한 기암괴석 사이로 자리 잡은 스머프 마을같은 괴레메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림같은 풍경에 사로잡혀 도착한 날 하루 종일 테라스 의자를 떠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버섯처럼 생긴 스머프집들의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고 노란 백열등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저녁의 풍경을 바라보던 그 평온했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다음날 새벽에 일어났다. 비록 외부와는 문 하나 차이밖에 없는 동굴 방이지만 그 내부는 눅눅하고 으슬으슬한 추위가 있었다. 낯선 기운에 둘러싸여 선잠을 자다가 해가 뜰 무렵에 '슈우욱 슈우욱'하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자 눈 앞에는 동화 속 같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아직 잠이 깨지 않은 마을 위로 동틀 무렵의 붉은빛을 배경으로 수없이 많은 열기구들이 떠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풍경에 뭐라 말도 못 한 채 멍하게 서있는 우리 부부의 머리 위로 거대한 열기구가 이따금씩 '슈우욱' 소리와 함께 불을 내뿜으면서 유유히 지나갔다. 얼른 옷을 걸치고 숙소 뒤편 언덕으로 올라가니 고요한 아침 평원에 마치 합성이라도 한 듯이 열기구들이 빼곡하게 둥둥 떠있는 모습은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한 몽롱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풍선의 습격 이후로도 동굴의 방에서 나와 테라스로 앉을 때마다 매번 다른 신비로운 풍경들이 펼쳐졌다. 아침의 기운을 받아 점점 분주해지는 마을은 마치 마을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왔고, 대낮의 작렬하는 태양 아래 이글거리는 마을은 아지랑이 뒤편의 요정 마을 같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세상 어디와도 닮지 않은 카파도키아의 신비로운 풍경과 묘한 기운으로 나를 감싸는 동굴의 방에서의 기억이 카파도키아에 있던 그 순간을 꿈처럼 느껴지게 한다.
여행이 끝난 후로 계속 기억에 남는 숙소는 어떤 숙소일까? 괴레메에서 머물렀던 동굴의 방처럼 특이한 숙소도 있을 테고 쿠스코의 게스트하우스처럼 친구의 집처럼 분위기가 좋았던 곳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기억에 남았던 곳은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 같은 느낌의 숙소였다. 돈 내고 자는 곳을 어찌 감히 부모님 댁에 비유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스리랑카 엘라에서 머물렀던 숙소는 정말 'Home away from home'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스리랑카는 오랜 내전으로 인해 여행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대형 호텔 체인이나 고급 숙박업소보다 홈스테이 형태의 작은 숙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런 홈스테이 숙소는 과거 우리나라의 민박 같은 분위기로 대가족이 살던 집에서 출가한 자식들의 방을 여행자를 위해 내어주고 경우가 많다. 집의 규모에 따라 방이 여러 개인 경우도 있지만, 스리랑카 엘라에서 머물렀던 집은 사랑채 한 칸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빨랫줄이 늘어져 있는 넓은 마당을 둔 노란색 단층 주택에는 은행에서 35년 동안 근무하시고 정년 퇴임하신 할아버지와 경찰 행정 업무를 하시다가 지금은 쉬고 계신 할머니가 살고 계셨다. 큰 아들 역시 마을 근처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고, 수도인 콜롬보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막내 아들이 숙박 예약 사이트를 관리해주고 있었다. 노부부를 닮은 단정한 노란색 집의 입구에는 두 분이 앉아서 차를 즐겨마시는 테라스와 대표적인 불교 국가답게 불상을 모신 기도실이 있다.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면 널찍한 거실과 식탁이 있어서 숙소라는 느낌보다는 평범한 가정집의 모습에 더 가까워 보였다.
사실은 그냥 저렴한 숙소를 찾던 중에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용자 후기 조차 없는 홈스테이를 발견했고, 아직 손님이 많이 다녀가지 않은 숙소라면 친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택했었던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에서 내려 커다란 배낭을 앞 뒤로 메고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 노부부는 정원 테라스에서 일어나 마당으로 나오시며 마치 오랫동안 객지에 나가 있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이전에 어떤 숙소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한 환영을 받고 차 대접을 받으면서 즉흥적으로 예약한 기간보다 더 머물고 싶다고 말을 했고,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마을에서 일주일간 가족으로 지내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탁에 나란히 앉아 같이 식사를 하고, 해가 높아지면 함께 빨래를 널며 수다를 떨고, 비가 내리는 나른한 오후에는 테라스에서 차를 나누면서 잠시나마 집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동네의 유명하다는 사원을 방문하기도 하고, 할머니께서 소개해주신 동네 꼬마의 길안내로 가벼운 등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여행 중에 잠시 시골집에 온 듯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타지에 있는 아들과 시집 간 딸과 손자들이 모두 모여 집이 북적이게 되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큰 명절이라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것이었고 손님이었던 우리 부부도 덩달아 명절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스리랑카 사람들의 명절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인 우리와 늘 웃으면서 일상을 함께 나누려고 하시는 모습에서 우리를 잠시나마 가족으로 받아주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머무는 내내 마치 고향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 떠나는 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러 나서는 우리 손을 꼭 잡고 불상 앞에서 기도를 해주시며 혹시나 가는 길에 배가 고플까 봐 도시락까지 싸서 쥐어주시는 모습에 하마터면 메고 있던 배낭을 다시 내려놓을 뻔했다. 비록 깨끗한 욕실, 포근한 침구가 아니더라도, 널찍한 방과 전망 좋은 테라스가 없더라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곳이야 말로 여행자가 꿈꾸는 숙소가 아닐까 싶다.
여행자들이 꿈꾸는 숙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그런 여행자 숙소를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상 속의 게스트하우스에는 자신이 여행 중에 바라왔던 숙소의 모든 모습들이 투영되리라. 친절한 리셉션, 깨끗한 공용 공간, 모든 게스트들이 친구가 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자유로운 영혼 들의 틈에서 늘 여행하고 있는 듯 설레는 일상.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숙소는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존재할 수도 없다. 늦은 시간에도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떠드는 일행들, 궁색한 배낭 여행자들의 소지품을 훔치는 절도범, 돈을 지불한 손님이라는 이름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지저분하게 사용하는 사람들... 세상 어느 곳이나 몇몇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로 인해 호스트는 여행자의 친구라는 역할보다는 인색한 숙박업소 주인이 되고, 밝고 자유분방한 여행자 숙소는 엄격한 규칙으로 운영되는 인간미 없는 숙박업소로 전락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한국과 중국 여행자들이 그런 민폐의 주인공이 되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 성숙한 배낭여행 문화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것일까? 흥이 많은 민족이라며 밤이 늦도록 시끄럽게 떠드는 모습, 주방 사용 후 뒷정리 없이 떠나거나 난잡하게 방을 사용하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나 또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여행자 숙소는 단순히 잠을 자고 쉬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여행자들이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우는 공간이라는 인식과 여행지 조사에 앞서 여행자가 지켜야 할 매너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일상생활을 하면서 주거 공간에 대한 중요성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 자체가 일상처럼 느껴지다 보니 숙소의 만족도가 삶의 질을 좌우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와서 여행했던 때를 멍하니 떠올리면 아름다운 경치와 놀라운 문화유산보다 만족스러웠던 숙소가 먼저 생각나는 곳이 있다. 그럴 때면 '음. 그때 거기서 좀 잘 살았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 여행을 풍족하게 해주었던 그 숙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언젠가는 나도 여행자들에게 풍족함을 안겨주는 여행자 숙소 주인이 되고 싶다.
페루 쿠스코에서 머물렀던 숙소 주인 나탈리에게 종종 연락이 온다. 한국 드라마 팬인 나탈리는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었다. 며칠 전에 드디어 내년 초에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표를 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내가 쿠스코에서 얻었던 즐거운 기억을 나탈리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게스트로 충분히 많은 경험을 했으니 호스트 역할도 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