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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ul 05. 2016

함께, 가끔은 따로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


 게스트하우스에서 여행자들을 만나면 서로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묻곤 한다.


여행자 : 여행한 지 얼마나 됐니?

 : 음... 일 년이 조금 넘은 것 같네. 일을 그만두고 세계일주 하고 있어.

여행자 : 멋진데!

 : 아내와 함께.

여행자 : What?!  Crazy!!


 아내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다는 말을 했을 때, 한국 여행자들은 대체로 '낭만적이다', '부럽다' 류의 반응인 반면에 서양 여행자들은 '그게 무슨 미친 짓이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왜 그럴까? 처음에는 서양인 특유의 개인주의로 인해 성격과 취향의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이해했다. 하지만 여행을 마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꼭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짧은 일정에 계획적인 여행을 주로 하는 한국 여행자들에게 커플 여행은 낭만적인 휴양지와 화려한 쇼핑센터, 맛집 탐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마냥 즐겁고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되기 쉽다. 하지만 휴가가 길고, 장기 여행에 익숙한 젊은 서양인 여행자들에게 커플 여행은 불편한 교통수단, 지저분한 숙소, 실망스러운 유적지를 티격태격하면서 다녔던 기억이 함께 떠오르기에 부부가 하는 세계일주는 말 그대로 Crazy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미친 짓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만큼 낭만적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친 짓은 절대 아니다.


 회사에 매여있는 생활을 할 때, 우리 부부는 아침에 잠깐 그리고 퇴근 후에 몇 시간 얼굴 보는 게 전부였기에 가족이라는 느낌보다는 룸메이트 관계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아내와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장기 여행이 기대되었고, 꿈에 그리던 여행지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는 꼭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늘 힘들고 괴로운 것도 아니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순간 앞에서 선택을 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반복되는 여행길에서 함께하는 여행은 낭만적인 관계보다는 일상보다 더 현실적인 관계를 요구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선택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서 드러나는 생각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를 좁이기 위한 설득과 타협.


가끔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더 벌어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좁혀지지도 않는...


 볼리비아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볼리비아는 버스회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원치 않게 발이 묶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내가 머물고 있을 때도 파업으로 버스 운행이 썩 원활하지 않았다. 볼리비아의 수크레에서 머물며 소금사막(정확히는 소금평원)이 있는 우유니로 향했다. 이동하기로 계획한 날, 나는 아무래도 찝찝한 마음에 버스표를 예매하자고 얘기했었지만, 아내는 그냥 출발 직전에 남는 자리를 사면 더 싸다고 한사코 예매를 반대했었다. 결국 출발 시간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터미널로 갔더니 이미 표는 매진이었다. 해는 지고 있고, 버스표는 없고, 숙소는 나온 상태... 아내를 타박할 시간에 얼른 다음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했다. 일단 다시 시내로 돌아가서 아무 숙소라도 잡을까? 아님 아무 버스라도 올라타고 우유니 근처 도시로 가서 갈아탈까? 하루를 허비하더라도 안전한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님 혹시 모를 가능성에 모험을 할 것인가? 여기서 또다시 의견이 갈렸다. 하지만 오래 시간을 끌 수 없는 상태라서 일단 우유니까지 가는 길에 있는 도시인 포토시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사실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한 포토시 버스 터미널은 문을 닫은지는 이미 수시간이 지난 후였으며, 터미널 근처의 낡디 낡은 숙소는 저렴하지도 않은 주제에 너무 더러워서 잠시도 머물고 싶지 않았었다.(길에서 자는 일이 있더라도 빈대가 들끓는 침대에 누울 수는 없었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위험천만한 남미의 밤거리를 헤매게 된 난감한 상황을 먼저 수습해야 했다. 결국 아내가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고 사정을 설명한 끝에 어느 건물의 로비에서 노숙을 할 수 있었고, 다음날 새벽에 꾀죄죄한 꼴로 우유니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했으니 가히 낭만적인 커플 여행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우리는 서로가 위기의 순간에 어떤 성향의 선택을 하는 사람인가? 어려운 상황에서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인지, 아님 빨리 받아들이고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인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이 경험은 훗날 우리 부부가 같이 살면서 마주하게 될 다양한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서로 의견이 충돌하는 경우는 대게 대화를 통해서 조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취향이 다른 경우는 설득으로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를 수가 없었다. 얼마나 어렵게 떠나온 여행인지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각자의 취향을 포기하라고 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좋다고 억지로 상대방을 끌고 가지 않았고, 그저 기분을 맞춰주려고 하기 싫은 일을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물과 친하지 않은 아내는 내가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떠나면 혼자 해변가 카페에서 책을 읽었고, 아내가 민속 공예품을 구경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뒤적거릴 때마다 나는 벤치에 늘어져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전망대가 보일 때마다 무조건 올라갔고, 높이 올라가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며 아내는 골목을 헤매기를 좋아했다. 그 결과,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 덕분인지 모든 연인들이 꼭 함께 가보고 싶은 장소로 꼽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에서는 혼자 올라가 다정한 커플들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했다. 커플 여행의 성지라는 피렌체에서 우리 부부는 주차 문제로 인해 아침부터 따로 출발하여 광장에서 잠시 만나 서로의 일정을 확인한 후, 나는 두오모 전망대와 종탑을 올랐고 아내는 미술관과 도서관을 순례하고 다시 만나 점심을 먹고는 또다시 헤어졌다. 비록 피렌체에서 함께 찍은 사진은 없었지만, 저녁 식사를 하며 냉정한 피렌체를 느낀 나와 열정적인 피렌체를 느꼈던 아내가 각자의 하루를 서로에게 자랑하는 재미가 있었다. 함께 하는 여행이었지만 때로는 따로 다니면서 느낀 감정을 나누는 일은 신선했고 피렌체 이후로도 종종 함께 가서 따로 하는 여행을 즐겼다.


나는 두오모 위에서 광장을 내려다 보았고 아내는 광장에서 두오모를 올려다 보았다. 취향의 차이는 관점의 차이를 만들었고,  우리는 같은날 서로 다른 피렌체를 여행했다.


 함께하는 여행이지만 그 속에 잠시 따로 보내는 시간은 굉장히 소중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떨어져 지내는 생활을 하다가 매일 24시간을 같이 보내는 생활을 하다 보니 서로의 의견 차이로 티격태격하는 일도 잦아졌다. 아무리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몸과 마음이 지치다 보면 상대방에게 원치 않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원망을 하는 일도 생긴다. 부부 세계일주의 성패는 이 '싸움의 기술'에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갈등의 조절이 원만한 여행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 갈등 조절에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따로 보내는 시간'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취향의 차이로 인해 따로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도 뭔가 허전하고 적적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서로 감정이 상해 있더라도 혼자서 좋은 것들은 만나면 '같이 있었으면 좋았겠다'가 입에서 절로 나왔고, 낯선 곳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에 난데없이 애틋한 감정이 솟아나기도 했었다. 그러다 다시 만나면 어느새 화는 누그러지고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연인처럼 반가워하면 서로가 느꼈던 감정을 얘기하면서 꽁냥 거리기 바빴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고 다시 같이 깔깔거리는 일이 반복하면서, 우리 부부는 싸우는 와중에도 '이 타툼이 오래가진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마음속의 불만을 쌓아두기보다는 그때그때 쏟아내고 풀어가면서 여행을 이어갔다.


나는 결국 너의 손바닥 안에 있는 건가.


 세계일주를 하면서 무엇을 얻었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참 많지만 그중에 하나로 '진짜 아내를 만났다'를 꼽을 수 있다. 수년 동안 연애를 하고 또다시 그만큼의 기간을 같이 살아왔지만, 서로에 대해 몰랐던 것이 너무 많았다. 여행 중에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은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가감 없이 드러나게 했고,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100일이 넘는 캠핑 생활을 하면서 해가 지면 텐트에 누워 긴긴밤 동안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었고, 한 달간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면서 망망대해를 보며 서로가 꿈꾸는 미래를 얘기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는 세계일주라는 멋진 경험을 함께 했기에 앞으로 남은 생을 살면서 언제든 '우리 그때, 거기 기억나?'로 시작할 수 있는 잊지 못할 공동의 경험이 우리 부부의 큰 재산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 여기저기의 그곳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 한 사람은 여행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 중에 하나이다.


 : 아내와 함께.

여행자 : What?!  Crazy!!

 : 맞아. 미친 짓이지.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




 오래전에 인도를 혼자서 여행한 적이 있었다. 인도라는 나라를 도저히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와 함께 여행할 자신이 없었었다. 여행하는 내내 불편하고 더러운 환경과 여행자를 괴롭히는 수많은 사기꾼에 당하면서 '잘했네. 잘했어. 혼자 왔길 천만다행이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행도 같이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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