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 Jun 27. 2016

길 위에서의 삼시세끼

여행 중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


 여행 이야기에서 먹는 이야기를 뺄 수 있을까? 시각과 청각에 집중되어 있는 볼거리에 비해 먹거리는 오감을 통한 경험이기에 오랫동안 강렬하게 기억에 남기 때문인지, 인터넷 상에서 여행지에 대한 조사를 하다 보면 '어디 가서 뭐 봤어요' 만큼이나 많은 '저 이거 먹었어요'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국적인 먹거리는 내가 그곳에 있음을 더 실감 나게 해주는 조미료이고,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맛의 경험은 내 감각의 확장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이번 글은 그 먹거리에 관해 이야기이다. 그러나 세계 일주 중에 만난 맛있는 음식과 맛집에 대한 소개가 아닌 먹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공항 검색대에서 엑스레이를 통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한국 사람들의 배낭을 볼 수 있다면, 아마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작은 물건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바로 튜브 고추장. 특히나 장기간의 일정으로 배낭여행을 가는 사람이라면 고추장, 라면스프는 반드시 챙겨가지 않을까? 나 역시 여행을 준비하면서 심각하게 고려했었다.


 : 생각보다 짐이 많네. 식재료는 무거우니까 가져가지 말까?

아내 : 고추장, 라면스프 등은 쉽게 못 구하니까. 조금이라도 들고 가자.

 : 힘들게 가져가 봐야 몇 번이나 먹겠어. 가서 현지 음식을 더 즐기자.

아내 :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정말 먹고 싶은 순간이 오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작은 튜브 고추장 하나 챙기지 않은 채로 여행을 출발했고 아내가 옳았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그동안 세계 여기저기를 여행했었지만 음식 때문에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그 특별한 맛을 더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았었기에 한 일 년 정도는 한식을 먹지 못하더라도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입맛은 생각보다 인터내셔널 하지 못했다. 낯선 향신료와 느끼한 조리법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그 맛'이 그리워져 갔다. 서로 대화 중에도 가급적이면 한식에 관한 이야기는 자제하고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했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모르게 이어지는 음식 생각에 몹시도 괴로웠다. 어차피 '먹어봐야 내가 알고 있는 그 맛'일 텐데, 잠깐 못 먹었다고 그렇게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꼭 한식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충분히 맛있는 음식이 많다. 하지만 입맛이 길들여진다는 것은 아마 맵고, 짜고, 달콤한 그 맛이 그립다는 것보다는 그 맛을 느낄 때의 따뜻했던 분위기와 추억들 때문에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한국에 돌아와서도 잊지 못하는 여행지의 음식이 있듯이 말이다.


난 항상 네 생각 뿐이야~~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 지역 여행이 길어지자 한식에 대한 그리움에 또 다른 갈증이 더해졌으니... 그건 바로 돼지고기였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이나 바싹하게 튀긴 돈가스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아쉬운 대로 스팸 한 조각이라도 먹고 싶었으나, 당최 돼지고기를 접할 수가 없었다.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화교들 덕분에 그런대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는데, 요르단, 이집트, 터키를 지나면서는 통조림이나 소시지 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차이나타운을 잘 뒤지면 발견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터키 여행 중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어느 날 충동적으로 야간 버스를 타고 계획에도 없던 불가리아로 떠났다. 한 달반을 계획했던 터키 일정이 한 달로 짧아졌지만, 오직 돼지고기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갔었던 불가리아는 심지어 물가도 엄청 저렴했다. 500년 동안이나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고 버텨준 불가리아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서 매 끼니마다 돼지고기 파티가 이어졌다. (돼지고기와 별개로 불가리아는 정말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비단 돼지고기뿐 아니라 라마단 기간을 봐도 종교가 식문화 미치는 영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이슬람 문화권이 아닐까 싶다.


요르단 전통음식 만샤프. 요거트로 끓인 양고기 육수에 밥을 비벼먹는 맛은? 상상에 맞기겠다.
국경을 넘어서 극적으로 상봉한 삼겹살. 가격까지 저렴하다. (100g에 약 500원, 2015년)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삼시 세끼'는 어느새 조금씩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짧은 시간에 알차게 먹고 즐기고 돌아오는 여행이었다면 어떻게든 새로운 맛을 찾아다니느라 바빴을 텐데, 천천히 방랑하는 여행길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낯선 음식은 '오늘은 뭘 먹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불러왔다. 게다가 많은 장기 여행자들 그렇듯이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마냥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면 미식을 탐할 수만은 없었다. 현지의 식문화를 느낄 수 있되 너무 낯설지는 않고, 가격은 저렴하되 가게는 깨끗하고, 외지인보다는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로컬 식당을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까다롭기는...) 그리고 같은 문화권을 장기간 여행하다 보면 아무리 이국적인 음식이라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레스토랑 메뉴판의 복불복 게임에 싫증이 나기 시작했던 우리 부부는 그들의 식재료 문화에 집중하기로 하고 가능하면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숙소를 고를 때면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주방이 있는 현지인의 집을 빌리거나, 공동 주방이 있는 백패커스를 우선으로 찾게 되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 좋으면 아내가 화장실 상태를 점검하는 동안 나는 주방에서 조리기구와 공용 조미료, 스토브 화력을 점검했다. (주방 상태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기준은 식칼과 프라이팬의 상태!) 그리고는 재래시장과 슈퍼마켓을 돌면서 내게 익숙한 식재료와 그들만의 식재료를 사 와서 국적 불명의 퓨전요리를 만들어 먹고는 했다. 주방에서 뭔가 분주하게 만들고 있으면 숙소 주인이나 여행자들이 그들만의 레시피를 알려주고는 해서 우리의 식단은 나날이 다양해져 갔고, 때로는 같이 음식을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기도 했다.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동양에서 온 부부가 직접 만든 음식은 호기심 대상이었고, 불고기와 파전을 미끼로 그들의 여러 가지 생각을 낚을 수 있었기에 주방은 항상 새로운 만남의 공간이었다. 전 세계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주제는 단언컨대 먹는 이야기가 최고인듯하다.


깔끔한 주방이 있던 숙소에 머물었던 도시에서는 밥 해먹었던 기억뿐이구나.
설거지 내기 병뚜껑 날리기 복불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만점


 요리 기행의 절정은 유럽을 여행하던 시기였다. 리스한 자동차에 캠핑장비를 싣고 여행하고 있던 터라 대형마트에서 식재료를 맘껏 사서 트렁크에 채워다닐 수도 있었고, 탁 트인 캠핑장에서 요리를 할 수 있으니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을 만들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서 공원에서 먹으면 늘 집에서 먹던 식단일지라도 기분도 좋고 맛도 좋았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여행 중에 머물렀던 캠핑장은 대부분 교외에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었기에 대자연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새소리와 함께하는 식사는 전망 좋은 고급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았었다. 게다가 대체로 물가가 비싼 편인 유럽이기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날이면 식비 지출에 켰지만, 마트에서의 식재료 물가를 비교하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해서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와인, 치즈, 맥주, 고기는 한국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임에도 품질이 훌륭했었다.)


 유럽 자동차 여행을 시작했던 파리에서 고추장, 된장, 라면, 고춧가루 등 한식 재료를 잔뜩 사서 출발했기에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한식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욕심을 내서 산 대용량 고추장 덕분에 파스타에도 고추장을 퍼넣는 만용을 부릴 수 있었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김치의 부재였다. 그러던 중에 알프스 산맥의 일부인 이탈리아 북부의 돌로미티 지역에서 우연히 '배추'님을 만나게 되었다. 벅찬 가슴으로 배추를 껴안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곧바로 김치 담그기에 돌입했고, 그날 내내 우리 부부는 캠핑장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겉절이를 담그기 위해 배추 잎을 다 뜯어서 잘라놓으니 산더미 같은 양이었다.

독일 아주머니 : 저기 동양인 아이들이 엄청난 양의 이상한 양배추를 씻고 있어! 오늘 저걸 다 먹으려나 봐!

 소금에 잠시 절여놓은 사이에 배추가 숨이 죽었다.

이탈리아 할머니 : 어라, 배추 양이 확 줄어들었네? 무슨 짓을 한 거지? 금세 저만큼 먹어 치운겨?

 미리 준비해둔 김치 양념에 배추를 버무렸다. 새빨간 김치를 구경하던,

캠핑장 주민들 : 맙소사!! 샐러드에 무슨 짓을...

 난생처음 본 새빨간 샐러드에 동그래진 눈을 보며 차마 한 입 먹어보라는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부족한 재료로 어설프게 만든 김치였지만, 역시 김치였다.


 유럽 캠핑 여행 중에 잠시 만난 김치와 작별한 이후로는 한동안 매운맛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살사의 나라 멕시코에 입성하는 날부터 다시 매운맛의 향연이 이어졌다. 아마 이어지는 다른 글에서도 말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것은 차치하고 음식만 보더라도 멕시코는 내가 여행했던 국가 중에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였다. 살사의 나라답게 맥도널드 조차도 5~6가지 소스와 할라피뇨를 기본으로 제공하고, 어떤 식당을 가더라도 매운 고추와 토마토로 만들어진 피칸테 소스가 항상 식탁에 있기에 뭘 먹더라도 입에 착착 붙었다. 게다가 길거리 어디서나 바싹하게 구운 고기와 부드러운 식감의 토르티야가 만난 타코를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었기에 멕시코 여행 중에는 '뭘 먹을까'하는 고민은 없었다. 다만 위의 크기가 나의 식욕을 못 따라간다는 것이 아쉬울 뿐, 항상 주변에는 맛있고 저렴한 음식과 대낮부터 음주가무를 유혹하는 메스깔이 널려있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있어서 멕시코는 오감을 통해 기억되는 여행지이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치와 끝없는 상상력을 불러오는 고대 문명 유적뿐 아니라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만드는 분위기도 잊을 수 없었지만 손 끝에서 코를 거쳐 혀로 이어지는 맛의 기억이 멕시코에 대한 추억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중미를 떠나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시작하여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로 이어지는 남미 일정 중에는 '뭘 먹을 수 있을까?'가 아닌 '언제 먹을 수 있을까?'의 문제가 많았었다.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땅덩이를 여행하려니 이동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시간으로 돈을 사자는 생각으로 비행기보다는 늘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웬만한 도시 간 이동은 10시간이 넘게 소요되었고, 24시간이 넘게 버스를 탄 경우도 더러 있었다. 다행히 남미의 버스는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견주어도 될 만큼 편안하고 간혹 식사를 제공하는 버스도 있었지만, 흔들리는 버스에 십 수 시간을 갇혀 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버스에 타기 전에 간식거리를 잔뜩 들고 타긴 했지만 버스 안에서는 별로 식욕이 생기지도 않았고, 불편한 버스 화장실 사용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물 마시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전날부터 식사량을 줄이다가 버스 타는 날은 거의 굶다시피 보내고, 도착하면 미친 듯이 먹어대는 패턴이 이어졌다. 단식과 폭식이 이어지다 보니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1일 1폭식의 생활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살 때는 한 끼만 굶어도 온몸이 밥을 달라고 부르짖었지만, 여행 중이라는 상황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지 내 몸은 한 두 끼 거르는 일에 놀래서 경보를 주는 일은 드물었다.


2박 3일에 걸쳐 볼리비아 우유니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길, 아무도 없는 황량한 풍경에서의 식사


 불규칙했던 식사 습관은 아프리카에서 다시 캠핑 여행을 시작하면서 바로 잡아졌다. 다시 차가 생기자마자 유럽에서 그랬듯이 대형마트만 보이면 식재료를 사재기했고, 그 결과로 늘 손이 닿는 곳에 음식이 있었고 하루 세끼 고칼로리 식사가 이어졌다. 그 고칼로리의 주범은 바로 브라이(Braai) 였으니. 남아프리카 지역은 우리의 숯불 바베큐와 같은 브라이 문화가 있어서 공원이나 캠핑장은 물론이고 웬만한 가정집에도 브라이 스탠드라 불리는 바베큐 그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브라이 마스터를 뽑는 대회가 TV를 통해 생중계될 정도로 이들의 고기 사랑은 유별나다. 대형 마트에는 브라이 관련 도구들이 한 블록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다양했고 어디서나 쉽게 장작과 숯을 살 수 있었으며,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해서 쇠고기 등심 100g에 우리 돈 천 원 정도에 살 수 있었으니 숯불에 고기를 굽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편리한 식사인 셈이다.


 내가 남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던 시기가 남반구의 늦가을쯤이라서 나미비아의 사막지역을 제외하면 낮에는 따뜻하고 밤에는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래서 해질녘이면 캠핑장에 있는 브라이 스탠드에 장작을 쌓아 올려서 불을 지피고, 해가 지고 장작이 빨간 숯으로 변하면 두툼한 고기를 숯불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대형 마트마다 있는 와인 샾에서는 5천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남아공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와인을 구할 수 있었기에, 매일 밤 쏟아지는 별 아래에서 야생동물의 소리를 들으며 와인과 함께 브라이를 즐겼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트렁크에 장작을 항상 싣고 다니면서 매일 밤 고기를 구운 결과는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그렇게 매일 밤 술과 고기로 배를 채우지만 정작 잠은 숙박비를 절약하자고 추위에 떨면서 텐트에 자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 여행하기기 위해 먹는 다기보다는 먹기 위해 여행하는 상황이 아니었는지.


매일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브라이로 찌운 뱃살과 함께 여행에서 돌아와 그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그들은 '너 OO 가서 XX 먹어봤어?'라는 질문을 하곤 했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니 필수 코스로 맛집을 찾아다니는 관광객처럼 '잘 먹으면서'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가이드북에 나오거나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유명 맛집을 찾아간 적은 거의 없었다. 남은 여행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적절하게 쪼개 놓은 예산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기분에 따라 과하게 지르는 일은 드물었고, 오히려 일상생활하듯이 평범한 한 끼 한 끼가 이어졌었다. 가끔은 '여기까지 와서 이곳에 유명하다는 비싼 그 요리 한 번은 먹어봐야지'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사실 '그 유명한 요리'는 현지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도 평범한 식사는 아니었다. 광장 한편에 있는 노점상에서 동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먹던 길거리 음식과 이가 나간 그릇에 한 손가락을 담근 채 수프를 건네주는 허름한 노천 식당이 더 정겨웠고, 그들이 가는 시장에서 그들과 같은 식재료를 사서 그들처럼 해 먹는 요리가 오히려 여행자로서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고 느끼는데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우리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이태원의 맛집이 아니듯이, 그들의 식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꼭 유명한 맛집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굳이 얼마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길 위에서 그 당연했던 삼시 세끼를 챙기다 보니,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았음을 새삼 느꼈었다. 아끼면서 여행했다고는 하지만 늘 이동하는 방랑자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끼니는 꼭 챙겨 먹었던 나에게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얼마나 풍족한지를 알려 주었다. 나에게 선택의 문제였던 삼시 세 끼가 숨쉬기도 힘든 고산지대에서 물통을 이고 하루에 3~4시간을 걸어 물을 길어야만 하는 아주머니와 쓰레기나 다름없는 장식품을 내밀며 먹다 남은 빵이라도 달라고 하던 할아버지, 차마 말도 못 붙이고 멀리서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던 아이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던 것이었다. 아직도 어딘가에서는 삼시 세끼가 중요한 과업이고 끝없는 도전인 곳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배고픔의 고통을 느껴 본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지금은 삼시 세끼가 감사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