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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Sep 19. 2016

일상 속을 달리다.

여행 중 버스 이동에 관한 이야기

 

 스리랑카에서는 달리는 버스에 매달린 채 손을 흔드는 차장과의 짧은 눈인사 만으로도 어디서든 버스를 세워서 탈 수 있다. 아주 가끔 고급스러운 도시 간 직행 버스를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낡은 로컬버스로 전국의 도시와 작은 마을을 아주 촘촘하게 이어준다. 커다란 배낭을 들고 낡고 버스에 올라타서 좁은 좌석에 꼬깃꼬깃 자리를 잡고 버스가 출발하면 나는 여러 번 놀라게 되었다. 먼저 클래식한 외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속도감과 첩보 영화 추격신을 방불케 하는 운전 실력에 놀라고, 다음에는 귀가 먹먹하여질 정도로 틀어주는 신나는 노랫소리에 놀랐었다. 스리랑카에서는 언제 어떤 버스를 타더라도 온몸이 들썩거리는 음악과 뮤직비디오가 버스가 떠나가도록 울리고 처음 듣는 음악으로 처음 보는 승객들과 하나가 되는 흥겨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안전운전을 기원하기 위해 버스 운전석 옆에 모셔있는 부처와 가네샤 신상도 반짝반짝 LED 전구와 노래 리듬에 맞춰 신명 나게 춤을 춘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고 나면 마치 다른 세상에서 방금 떨어진 듯한 멍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신나는 로큰롤 로컬버스!


 스리랑카를 여행하면서 '여기가 꽤 매력적인 여행지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현지 사람들과 몸을 부딪히면서 타는 로컬버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돈을 쓰러 온 여행자님이시기에 당신들이 쉽게 타지 못하는 깨끗하고 편안한 버스로 이동하겠소.'라고 마음을 먹고 온 여행자라도 스리랑카에서는 예외 없이 낡은 로컬버스의 비좁은 자리에 껴서 소리 없이 펼쳐지는 엉덩이 싸움에 말려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덜컹거리는 버스로 수 시간을 달리는 동안 버스 안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고, 닫을 수 조차 없는 창문을 통해 바닷가의 짠내, 음식점의 고소한 기름 냄새, 나무 태우는 매퀘한 연기, 때로는 거리의 매연 등을 그대로 느끼면서 그들의 삶을 버스 안에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로컬 버스 그 자체가 꽤 괜찮은 여행수단라는 생각이 들었다.


낡아 보이는 외관과는 전혀 달리 터프하게 질주하는 스리랑카 버스
대부분의 스리랑카 버스는 온몸이 들썩이는 신나는 뮤직비디오를 틀어준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버스를 탔었다. 비행기로 이동할 법한 거리도 '시간으로 돈을 사겠다'는 핑계로 장거리 버스를 탔었고, 지하철이 굉장히 잘 발달된 유럽의 대도시에서도 굳이 인터넷 검색을 하고 길을 물어가면서 시내버스를 고집했었다. 아마도 여행 초반에 스리랑카에서 경험했던 신나는 버스 여행 때문이었을까? 왠지 버스를 타면 내가 진짜 현지의 그들 삶에 끼어든 듯한 느낌이 들었고, 창 너머가 전혀 새로운 것이 없는 지하철이나 비행기와 달리 버스의 창밖 풍경은 언제나 흥미진진했다. 물론 기차도 버스와 비슷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왠지 기찻길은 그들의 생활권과 분리된 채로 달리는 느낌이 들어서 정이 가지 않았다. 시티 투어 버스와 같은 친절한 안내가 없어도, 평범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평범한 일상 속을 달리는 버스에 앉아 사람들의 모습과 창 밖의 풍경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버스는 나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선 멋진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커다란 배낭을 들고 로컬버스를 타는 일은 늘 힘들지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행자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어서 항상 기대된다.


 버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 김에 세계 여행 중에 경험했던 멋진 버스 여행을 몇 가지 소개해보려 한다. 여행 중에 경험했던 최고의 버스는 터키의 시외버스였다. 사실 이스탄불에서 현지어로 오토가르(Otogar)라고 불리는 버스 터미널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엄청난 규모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많은 버스 회사로 충격을 받았었다. 우리나라처럼 터미널 종합 매표소에서 목적지와 시간을 말하면 되는 줄로 알았는데, 버스터미널에는 수백 개의 버스 회사가 있었고 버스회사마다 각각 전문으로 운영하는 노선이 있었다. 물론 Metro와 같은 터키 전역을 커버하는 대형 버스회사도 있지만, 한 두 개의 노선만을 운영하는 작은 버스회사도 셀 수 없이 많았다.(버스 회사 이름이 Metro라 많이 헷갈렸다. 메트로 타러 간다. 지하철 or 버스?)


 터키는 우리나라의 8배 정도의 면적을 가진 꽤 넓은 나라이다 보니 장거리 버스가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다. 특히 버스의 상태나 차내 서비스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대부분이 벤츠나 볼보사의 최신식 버스라서 좌석 간격도 꽤 넓고 승차감도 굉장히 좋다. 버스마다 미소년의 승무원들이 동승해서 음료와 식사, 간식을 제공하고, 미리 손님 별 목적지를 인지하고 있다가 적절한 시점에 깨워 주기까지 한다. 차량 내에서 와이파이 사용은 당연히 가능하고, 좌석마다 있는 모니터에서 VOD 서비스와 인터넷 검색까지 할 수 있는 버스도 많다. 게다가 도시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 세르비스 버스라고 부르는 작은 미니버스를 이용하여 도시 주요 지점까지 무료 셔틀 서비스를 해주기까지 하니, 버스 서비스가 우수하다는 스페인과 남미에서도 버스를 많이 탔었지만 터키의 버스는 단언컨대 최고였다.


공항처럼 출발과 도착층이 다른 엄청난 규모의 터키 앙카라 버스터미널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버스회사 사무실이 있다.
터키의 고속버스에는 좌석마다 개인모니터가 있어서 TV, VOD,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다.
터키와 불가리아를 연결하는 버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국제버스


 터키의 버스가 기대 이상의 서비스로 기억에 남았다면, 중미의 과테말라에서 경험한 버스는 놀라울 정도로 위험하고 불편했던 버스로 기억에 남았다. 과테말라의 로컬버스는 치킨버스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미국에서 1980년대에 스쿨버스로 사용하던 버스가 안전상의 문제로 교체되는 과정에서 과테말라로 넘어와 지금의 치킨버스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일단 그 태생에서부터 위험성을 안고 있는 치킨버스는 마치 닭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하게 끼어서 달린다. 이쯤이면 다 탔겠지 싶었지만 치킨버스에는 그 한계가 없는 것처럼 계속해서 사람들이 밀려들어왔다. 서로 어깨를 포개어서 앉아서 진한 몸 내음을 느끼면서 꾸벅꾸벅 졸며 치킨버스 안에서 치킨이 되어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를 달리고 또 달렸다. 버스가 잠시 정차할 때면 차창 밖에서는 몇몇 아주머니들이 온갖 간식거리를 들고 창가에 앉은 사람들과 흥정을 했고, 그 비좁은 공간을 비집고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양손 가득히 든 아저씨가 버스를 휘젓고 지나갔다. 작은 마을에 버스가 서는 곳은 어김없이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창을 통해서 장을 보고 끼니도 해결하고는 했다.


 치킨버스를 타면서 가장 불안했던 점은 바로 수화물이었다. 사람이 다 앉기에도 부족한 자리였기에 여행자의 큰 배낭은 차내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렇다고 따로 수화물 보관용 트렁크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큰 짐들은 자연스럽게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에 올려진 화물들은 끈으로 엮어있긴 하지만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버스가 크게 덜컹거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버스 뒤를 쳐다보며 행여나 내 배낭이 떨어지진 않았을까 마음 졸여야 했다.(실제로 지붕에 올린 배낭이 어디에선가 혼자 떨어져서 잃어버린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다.) 지붕의 화물은 버스의 차장이 담당한다. 버스마다 있는 차장은 기가 막힌 눈썰미로 새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버스 요금을 걷기도 하지만, 놀라운 기억력으로 손님의 짐을 정확하게 찾아서 내려준다. 더 놀라운 점은 버스가 달리는 중에도 차장은 앞문이나 뒷문으로 나가서 버스 위로 올라가서 짐을 확인하거나 내릴 준비를 하는데, 마치 성룡 영화의 한 장면처럼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을 달리는 버스에서 차에 붙어 있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가 성큼성큼 걸어 다니면서 화물을 정리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미국의 스쿨버스를 개조해서 사용하는 과테말라의 치킨버스
치킨버스에 진짜 치킨이 타는 경우도 있다. 박스 밑이 점점 젖어가는 모습을 아래에서 지켜보며 조마조마 했었다.
과테말라 케트살테낭고의 버스 정류장. 아수라장 같은 저 곳을 해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버스 여행하면 남미를 빼놓고는 넘어갈 수 없다. 워낙 거대한 대륙이기에 도시 간 이동은 보통 10시간 이상이 걸리는 장거리 버스가 대부분이다.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잇는 버스는 자그마치 6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 정도 거리라면 웬만하면 비행기를 선택하겠지만, 칠레의 아타카마에서 산티아고를 이동하는 24시간의 버스나 브라질의 이과수에서 리우 데 자네이루를 연결하는 26시간이 걸리는 버스의 경우는 시간을 절약할 것인가 경비를 아낄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나의 경우 일정에 제약이 없는 장기 여행이었기에 매번 시간을 팔아서 돈을 절약했고, 하루가 꼬박 넘게 버스 안에서 자다 깨기를 반복하는 장거리 버스를 여러 번 탔었다.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버스를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우리나라에서 어지간한 버스는 '잠깐 거리'에 불과하게 되었으니, 인내심의 한계치가 꽤 올라간 듯하다.


 직접 타보기 전까지는 수십 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버스가 상상이 되지 않았었다. 도대체 그 긴 시간을 좁은 의자에 앉아서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있을까? 막상 버스를 타보니 남미의 버스는 기대 이상으로 쾌적했다. 대부분의 버스는 좌석은 의자를 젖힐 수 있는 각도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뉜다. 140도 정도까지 젖힐 수 있는 일반 좌석, 160도까지 펼칠 수 있는 세미-카마(semi-cama), 완전히 누워서 갈 수 있는 카마(cama). 눈치챘겠지만 cama는 스페인어로 침대라는 뜻이다. 당연히 침대 좌석은 비싸기에 배낭여행자들은 세미-카마 수준의 좌석을 선호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버스에는 내부에 화장실이 있기에 아주 급한 볼 일은 해결할 수 있지만 비행기만큼은 깔끔하지 않기에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약간의 긴장감이 들었다. 남미에는 (아니, 대부분의 나라에는) 우리나라처럼 화장실, 식당, 편의점 등이 잘 갖추어져 있는 휴게소를 볼 수 없다. 버스에 따라 식사나 간식을 주는 경우가 있지만 일단 버스를 탈 때 버스에서 먹을거리를 단단히 챙겨서 타야 한다.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를 운행하는 국제버스. 남미의 장거리 버스는 대부분 2층 버스. 내부는 아래 사진과 같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푸콘으로 향하는 야간 버스가 도로 한가운데에서 고장났었다. 자다가 난데없이 길가에 내려와 다음 버스가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었다.


 열 시간이 넘는 장거리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남미의 버스는 여러 명의 기사가 교대로 운전을 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린다. 덜컹이는 버스에서 자다가 깨다가 반복하던 중에 더 이상 잠도 오지 않는 때가 되면, 스마트폰에 담아 간 음악파일과 동영상이 식상해질 때가 되면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온갖 상상을 펼친다. 창 밖에는 낯선 풍경이 펼쳐지고 낯선 일상들이 스쳐 지나간다. 저런 풍경을 매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언뜻 보기에도 빈궁해 보이는 저들의 일상은 어떨까?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짧은 순간에도 감탄을 멈추지 못하는 풍경을 지나칠 때면, 아름다운 풍경 속에 사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풍경이 익숙해져서 평범하게 느낄 그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사막이나 수천 미터 고원의 오지를 지나치며 가끔 점점이 보이는 마을을 볼 때면, 외지고 척박한 곳에서도 이어지는 삶이 경외스럽기도 하고 더 좋은 환경을 찾아 떠나지 않고 머무는 그들의 삶의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창 밖의 낯선 세상은 삶과 환경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긴 이동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가능하면 2층 제일 앞자리를 예약했다.




 버스에 앉아서 창밖을 보면 일상을 보내는 창밖의 사람들보다 약간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게 된다. 절대자만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딱 관찰자에 적절한 높이로 그들이 의식하지 않는 유리창 안의 공간에서 관찰한다. 달리는 버스 창을 통해서 흥정을 하는 시장의 상인의 모습, 소를 몰고 들판을 향하는 아이의 모습, 나무 그늘 밑에서 담소를 나누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여행자는 마치 바람이 된 듯 그들의 삶을 스쳐 지나간다. 


 길을 걷던 중에 내 옆으로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또 어떤 여행자가 바람처럼 내 일상을 스쳐 지나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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