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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ul 24. 2018

조금 더 나은 우리가 되다.

마치는 글


 아내와 함께 426일간의 긴 여행을 다녀왔다. 가끔씩 TV에 나오는 여행지 소개 프로그램을 볼 때면 아내와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그때 저기 기억나?'로 시작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꽤 많아졌다. 어떤 곳은 꿈속 같은 아련한 추억으로 마음이 포근해지는 장소로 기억되는 곳도 있지만 영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힘든 기억의 장소도 있다. 긴 여행 기간 동안 세계 이곳저곳을 함께 다니면서 우리는 희로애락을 함께 겪었기에 언제든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함께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 속의 장면에는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나와 아내가 함께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함께 한다는 것은 함께 기억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여행의 실체는 생각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평범한 일상 중에도 사소한 의견 차이로 언쟁을 하는데 하루 24시간 붙어 다니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여행 중에는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내와의 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출발 전부터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었다. 길어야 1 ~ 2주의 여행에서는 어떻게든 불만을 참고 다스리며 여행을 마칠 수 있지만, 1년이 넘는 긴 여행 중에서는 참고 쌓아두다가는 큰 폭발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효과적인 싸움의 규칙을 정하기도 했다. '불만이 생기면 즉시 상대방에게 말해서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하기', '아무리 감정이 상해도 혼자 떨어져서 개인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 ' 가능하면 싸운 당일에 갈등을 모두 해소하고 다음날 일정에 영향을 주지 않기'와 같은 몇 가지 약속을 했지만, 일단 감정이 흥분의 물살을 타게 되면 규칙 따위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낯선 곳을 여행 중이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인지 다툼은 항상 오래가지 않았고,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고 재발 방지 협약을 맺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며 여행을 이어나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행 중에 겪었던 의견 충돌에 의한 감정싸움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여러 해를 같이 살면서도 평범한 일상 중에는 드러날 일이 없었던 가치 판단의 충돌이 여행 중에는 다양한 상황에 의해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예상외로 나와 잘 맞는 점을 발견해서 놀라기도 하고 서로의 다른 점을 만나면 각자 고집을 부리며 상대를 설득하기도 했다. 어쩌면 한 번도 만날 수 없었을 아내의 모습을 만나기도 하고 나의 가장 유치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들키기도 했다. 여행 초반에는 몸과 마음이 지치면서 서로가 숨기고 있던 모습들이 드러나서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그나마도 여행이 길어지면서 충분한 시간과 사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서 다툼의 횟수는 점차 줄어갔다. 미세한 억양의 변화나 말투 만으로도 상대의 기분을 알 수 있고 서로 말을 안 해도 뭘 해야 할지 통하는 이심전심의 경지(?)에 가까워져 갔다. 각자였던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우리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쩌면 함께하는 삶을 압축해서 맛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인생을 길게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극기훈련 같았던 그 시간을 겪으면서 함께 하는 것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때는 부부의 연을 맺어서 평생을 같이 사는 일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가치관이나 취향이 변하듯이 이성관도 변할 수도 있는데 젊은 시기에 불같은 열정에 사로잡혀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결정하는 것이 섣부른 선택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우리는 20대 청춘에 머물러 있는게 아니라 항상 성장하고 있으며 그것은 나, 아내의 객체의 성장뿐 아니라 우리라는 관계 또한 계속해서 발전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함께 많은 일을 겪고 고민하고 같이 해결해가면서 우리는 각자 조금씩 더 괜찮은 사람으로, 더 나은 우리를 완성해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술 마시기, 혼자 놀기, 혼자 여행 가기 등. 늘 팍팍하기만 경제 상황과 자기애를 바탕으로 하는 개인주의 성향 때문인지 혼자 하기가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혼자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기에 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나의 욕심을 조금 누르고 양보를 해야 할 때도 지만, 그 순간의 정서적인 교류와 나 자신에 대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비친 나를 보는 일. 나에게 너를 비치어 보이는 일. 함께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인격을 알아가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더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우리 부부는 좀 더 빛나는 현재를 만들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길에서 출발 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너와 나를 만났고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만났다. 무엇이 우리를 이끌었는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함께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안녕하세요. 이 글을 마지막으로 '함께 떠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좋게 읽어주시고 구독해주신 분들과 응원과 공감의 댓글을 남겨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하늘을 가득 메운 뭉게구름처럼 흩어져 있는데, 이를 잘 모아서 멋진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저의 부족한 글솜씨로 인해 이번 매거진에 더 담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브런치를 통해서 다른 주제로 계속 글을 이어나갈 계획이니 저의 글이 조금이나마 흥미로우셨던 분들은 계속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함께 떠나야 알 수 있는 것들'을 함께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 공감 가는 주제와 잘 다듬어진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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