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유럽과 중남미를 거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대륙은 아프리카였다. 그동안 대륙과 해양을 넘나들며 이동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사실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겪었고, 풍문으로 듣고 품었던 기대감 또는 거부감이 막상 현지에서 직접 경험해보니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 말로만 전해 들은 코끼리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에서 상상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나왔다고 하듯이, 나 역시 이런저런 정보들을 기반으로 현실과는 조금 다른 코끼리들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나를 놀라게 했던 코끼리는 바로 아프리카였다.
사실 우리에게 아프리카만큼 오해와 편견이 많은 곳이 있을까?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우리나라와 꽤 많이 떨어져 있는 만큼 아프리카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미지의 땅이다. 나 역시 여행 전에 떠올렸던 아프리카의 모습은 야생동물이 뛰어다니는 대초원, 기근과 내전으로 인해 굶주리는 사람들, 찌는 듯한 더위의 검은 대륙 등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여행을 결정하고 좀 더 현실적인 정보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과 책을 뒤져봐도 아직은 아프리카 대륙이 대중적인 여행지가 아니어서 인지 구체적인 도움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딜 찾아봐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리아의 공포뿐이었다.
별다른 정보 없이 막연한 상상만을 가지고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나오면서부터 나의 상상 속의 아프리카는 현실의 아프리카를 통해 하나하나 다시 쓰기가 시작되었다. 1년을 넘게 여행을 하면서 매번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갈 때는 가장 저렴한 로컬 버스를 탔었는데, 케이프타운에서 처음으로 미국에서도 안 썼던 우버를 이용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여러 가지 O2O 서비스가 많이 나와서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아프리카에서 처음 사용해 본 우버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터치 몇 번으로 만난 앳된 우버 기사는 낯선 땅이 신기하기만 한 우리 부부를 태우고 케이프타운 시내로 향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창 밖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 숲과 깨끗하게 정돈된 주택가보다 더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은 교통정체였다.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신용카드로 결제한 우버택시를 타고 빌딩 숲을 가로질러 가면서 교통정체를 겪으면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리셋해야 했다.
물론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와 도시들이 이처럼 화려하진 않겠지만 케이프타운만큼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진 도시였다. 특히 워터프런트라고 불리는 항구 부근의 쇼핑 지역과 도심의 중심 업무 지구, Hout bay의 고급 주택가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 어디라도 지역과 문화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조금 시간이 지나 케이프타운의 첫인상에서 느꼈던 화려한 도시의 이면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든 일들을 전담하고 있는 흑인과 도시 외곽에 끝없이 펼쳐져있는 빈민가를 보면서, 비단 상상이 아니라 직접 보더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알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구석구석을 보고 싶었다.
일단 차를 렌트했다. 광대한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렌터카를 이용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 대중교통은 쉽게 찾기 힘들었고, 정해진 루트를 이동하며 여럿이 함께 여행하는 트럭킹과 같은 투어 상품은 비싸면서도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관광지 만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일상 속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현지에 사는 그들이 자주 방문하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관광객이 전혀 없는 마을에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걷기도 하고, 낯선 여행자를 반겨주는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노련한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잘 짜인 경로로 여행하면 한정된 시간 안에 알차게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겠지만, 우연한 사건이 주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우리만의 이동수단이 생기자 유럽 자동차 여행 때에 그랬듯이 트렁크에 빈틈없이 캠핑 용품을 채우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캠핑 여행을 떠올리면 잘 정리된 캠핑장의 모습보다는 동물의 세계에서 봤던 야생의 초원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사실 아프리카는 캠핑 여행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어딜 가도 쉽게 캠핑장을 만날 수 있었고 유럽의 캠핑장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도 많았다. 어쩌면 아프리카는 열강들이 침략했던 제국주의 시대 때부터 캠핑이 더 보편적인 여행 방식이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아프리카 여행의 관점이 산업화된 화려한 도시 문명이나 역사적인 문화 유산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보니 캠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여행을 계획하면서부터 아프리카에서는 아마도 캠핑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내가 쉽게 따라줄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내는 이미 여행 중에 유럽에서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캠핑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아프리카에서 캠핑 여행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몹시도 더웠던 사막의 태양 아래에서도, 추위에 떨면서 차에서 자야 했던 밤에도 아내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대부분의 여자는 캠핑을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잘못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알고 지낸 시간이 10년이 훌쩍 넘도록 여전히 아내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던 점이 많았다. 영화나 책, 주변의 이야기 등을 통해 알게 모르게 정형화시켰던 이성의 모습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깨진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을 수 있는 유부남들의 레퍼토리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나아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럴 것이다라고 단정 지어 상상했던 면들이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깨지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함께 세상을 탐험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탐험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유럽에서 장기간의 캠핑 여행을 했었기에 이번에는 시행착오 없이 수월하게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월하게 캠핑 준비를 했다고 해서 편안하게 캠핑을 즐겼다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캠핑은 유럽에서와는 다른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프리카 답게 야생 동물의 습격이 캠핑 중에 큰 골칫거리였다. 안전을 위한 전기 담장이 있었기에 하이에나, 하마, 악어와 같은 위험 동물로부터는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영악하기 그지없는 원숭이나 자칼, 멧돼지들의 약탈을 막을 수는 없었다. 특히 바분이라고 불리는 개코원숭이는 무리로 지어 다니면서 텐트와 자동차 트렁크를 뒤지고 다녔지만, 공격적인 성향이 있어서 쉽게 쫓아내지도 못한 채 식재료를 뺏앗기기 일수였다. 그리고 극단적인 날씨 또한 캠핑 여행을 하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불편함을 주었다. 나미비아의 나미브 사막에서는 살이 익는 듯한 열기에, 보츠와나의 열대우림에서는 끈적끈적한 습기로 고생했고 늦가을에 접어든 남아공에 이르러서는 밤마다 오들오들 떨면서 잘만큼 추위와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캠핑 여행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경험을 안겨주었다. 남아프리카가 아니라면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엄한 풍경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진짜 야생의 동물들로 가는 곳마다 놀라움이 가득했고, 다음 여정을 쉽게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하여 북서쪽 국경을 넘어 나미비아에 이르렀다. 수도인 빈트후크로 향하는 2차선 포장도로를 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끝이 보이지 않는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서쪽 해안의 도시 스바코프문트에 도착할 때까지 1000km도 훨씬 넘는 거리를 흙먼지가 길게 뿜으면서 달려야 했다. 황갈색의 황량한 사막의 땅을 달리다가 처음 만난 경이로운 장관은 피쉬리버 캐년이었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 다음으로 크다는 피쉬리버 캐년은 길이가 160km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협곡이다. 수억 년의 시간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이 거대한 대자연의 작품 앞에서 섰을 때는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에 소름이 돋고 털이 서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영속 불멸한 신을 마주한 작은 미물의 존재감이 이런 것일까?
자연의 놀라운 광경은 나미브 사막으로 이어졌다. 늦은 오후에 캠핑장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캠핑장 뒤편의 사구에 올랐다. 한없이 길어지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해질녘의 붉은 대지 너머로 달이 떠오르는 신비로운 풍경은 이 세상의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달빛마저 희미해진 이른 새벽에 텐트를 열고 사막의 한가운데에 서서 검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빈틈없이 촘촘히 박힌 별들을 보던 순간에는 이유 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면 다시는 이보다 더 황홀한 순간을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뜨기 전에 캠핑장을 떠나 나미브 사막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황량한 지평선을 가르는 도로의 좌우에 솟아 있는 사구가 아침 햇빛에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배경 삼아 달려 도착한 곳은 데드 블라이라는 곳이었다. 모래산으로 둘러싸인 물 웅덩이가 말라버려 단단하게 굳은 진흙이 만든 공간. 그곳에 수백 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던 나무들이 이제는 검게 화석이 되어버린 기묘한 풍경.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들은 죽음을 통해 영원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공허하고 적막한 풍경을 보면 누구라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된다.
아프리카 여행을 말하면서 사파리를 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나미비아 북부에 있는 에토샤 국립공원은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합친 면적과 비슷할 정도로 거대한 야생 보호구역이다. 엄청난 규모인 만큼 직접 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공원의 곳곳을 누비면서 야생 동물을 관찰하는 사파리 투어가 일반적인 여행 방식이다. 국립공원 안에는 6군데의 캠프가 있고 그중의 3군데에서는 야생 동물들의 소리가 들리는 지척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다. 광대한 규모의 공원에서 동물들을 만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동물들은 목을 축이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물웅덩이를 찾기 때문에 공원 입구에서 나눠준 지도를 보고 물 웅덩이만 잘 찾아다니면 야생 상태의 동물들은 직접 볼 수 있었다. 눈 앞에서 자연 상태의 야생 동물을 보고 그들의 공간에 함께 머무는 놀라운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하기 힘든 경험이었다.
나미비아와 보츠와나를 거쳐 짐바브웨와 잠비아의 국경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에 이르렀다. 이미 남미에서 이과수 폭포를 경험하고 온 터라 감흥이 덜했지만, 빅토리아 폭포는 세계 3대 폭포라는 칭호답게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이과수 폭포와 달리 좁은 협곡으로 쏟아지는 엄청난 수량이 다시 튀어 오르면서 폭포 근처에는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온몸을 폭포수로 흠뻑 적시며 우레 같은 소리를 듣고 있다 보니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씻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아프리카 캠핑여행 일정의 딱 중간 지점이었던 빅토리아 폭포에서 완벽하게 씻어내고 산뜻한 마음을 다시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작하는 기분으로 출발하면서 문득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떠났던 세계일주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시작하는 일상의 모험에서 우리는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 모험은 항상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떠오르게 했다.
아프리카 캠핑 여행은 이전까지의 여행과는 달리 정말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모험과도 같았다. 전혀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경험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어드벤처 게임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모험에는 짜릿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짜증 나고 두려웠던 순간들도 있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었고, 이미 지나간 결정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눈 앞에 놓인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모험. 먼 훗날 우리가 함께 했던 삶을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모험이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묵묵히 텐트를 정리하고 꼼꼼하게 다음 계획을 세우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