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모습으로 감동을 준 피쉬리버 캐년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나미브 사막으로 출발했다. 차를 돌려 떠나면서도 등 뒤로 거대한 존재가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피쉬리버 캐년이 준 위압감은 대단했다.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 사막의 비포장길을 흙먼지를 폭풍처럼 날리며 외롭게 달려야 했다. 나미브 사막의 초입인 세스리엠(Sesriem)까지는 600km가 넘는 거리로 내가 빌린 소형차로 비포장길을 달리는 속도로는 도저히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위험했기에 중간쯤의 작은 마을인 아우스(Aus)에서 하루 밤을 보내기로 했다.
아우스는 나미비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척추 같은 B1 도로에서 대서양을 향해 가로로 뻗은 B4 도로 위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지도에서 볼 때는 나미브 사막으로 가는 기점에 위치하는 교통의 요지처럼 보이길래 나름 중간 보급 기점으로 삼고 충분히 식량과 연료를 채워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숙박지로 정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아우스는 온 마을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서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대형 마트가 없는 것은 당연했고 하룻밤 텐트를 칠 캠핑장도 주유소 겸 마트 건너편의 공터 같은 곳이었다. 마트에서 살 만한 것이라고는 냉동고에 언제부터 얼려져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는 소세지들 뿐이었고 흔하디 흔한 식빵마저도 없었다. 바베큐용 고기를 잔뜩 준비해서 나미브 사막의 밤하늘 아래에서 맥주 파티를 할 계획은 깨끗이 지워졌다. 무슨 고기로 만들어진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냉동 소세지를 대충 데워먹고 있자니 아침에 원숭이들에게 뺏겼던 식빵이 아른거렸다. 이런 식빵!
여행 중에 만남 캠핑장 중에 가장 작았던 Aus 캠핑장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텐트를 걷고 출발 준비를 했다. 나미브 사막으로 향하는 중간 기점 같은 곳이라서 인지, 우리가 도착한 이후에 자동차 여행자와 오토바이 여행자들이 허름한 캠핑장 귀퉁이마다 하나 둘 자리를 잡았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미브 사막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았다. 출발 전에 충분히 주유를 하고 다시 포장도로를 벗어나 나미브 사막으로 향하는 지방 도로로 올라섰다. 역시나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향해 황무지를 가르는 비포장 도로였다. 마치 다카르 랠리에 참가한 드라이버가 된 기분으로 차선도 표지판도 없는 허허벌판을 내달렸다. 다행히 커다란 돌은 치워진 도로였지만 요철이 심했기에 주행하는 중에 온몸이 덜덜 떨려고, 바로 옆에 앉은 아내와도 대화가 힘들 정도로 소음도 심했다. 운전 중에 불편함은 감내할 수 있었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타이어 상태였다. 매끈한 포장도로만을 달려야 할 것처럼 생긴 작은 해치백 차량으로 이런 험한 길을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다가 혹시라도 펑크라도 난다면... 그 뒷일은 생각하기조차 싫었다. 운전 중에 간혹 보이는 커다란 돌이나 이물질은 피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달리면서, 길가에 이따금씩 보이는 버려진 펑크 난 타이어들을 볼 때마다 제발 나에게는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며 운전했다. 그렇게 6~7시간을 조마조마하면서 달린 끝에 드디어 나미브 사막의 초입인 세스리엠(Sesriem)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이지만 노루 대신에 얼룩말이나 오릭스가 그려져 있다.
끝없는 황무지 끝에 마치 신기루처럼 나타난 세스리엠 캠핑장은 기대 이상으로 시설이 좋았다. 나미비아의 대표 관광지인 만큼 나미비아 관광청이 운영하는 리조트인 NWR (Namibia Wildlife Resorts) 소속의 캠핑장이었다. 직원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쾌활해서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기분 좋게 해 주었고, 합리적인 가격의 식당과 매점 덕분에 종일 모래 언덕을 걷고 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도 있었다. 캠프 사이트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둥글게 돌담이 쳐져 있는 독립 공간이라서 다른 여행자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고, 화장실, 샤워실 같은 공용 공간도 기대보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우리는 집채만 한 나무 아래에 텐트를 치고 해가 지기 전에 나미브 사막의 석양을 볼 수 있다는 엘림 듄으로 향했다.
내가 찜한 나무 그늘. 나무 기둥 옆에 수도가 있어서 물을 쓸 때마다 자동적으로 나무에 물을 주게 되어 있다.
엘림 듄은 캠핑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차로 5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모래 산의 입구에 주차를 하고 해가 지기 전에 허겁지겁 산을 올라갔다. 듄(dune)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엘림 듄은 나미브 사막의 바람이 모래를 쌓아 올려서 만든 모래 언덕이다. 고작 100m 남짓의 높이의 모래산이지만 꽤나 넓게 펼쳐져 있었고 듬성듬성 가시 잡목들이 있어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모래를 조심조심 밟으며 30~40분을 올라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기에 만만하게 볼 곳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정도 올라갔을 때에 아내는 더 이상 못 가겠다고 그냥 이 자리에서 석양을 보겠다고 했고, 나는 이왕 올라왔으니 정상까지 올라가서 풍경을 감상하겠다고 했다. 결국 아내는 내가 다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혼자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해가 지평선 끝에 사라지기 전에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오직 앞만 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갔지만 정상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건너편 사구로 넘어가서 그다지 볼 만한 풍경이 아니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아내가 있던 곳으로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에 멀리서부터 아무리 둘러봐도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나를 다시 따라 올라오다가 길이 엇갈린 모양이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넓게 펼쳐진 모래산 어디에도 사람의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모래산이다 보니 딱히 길이 만들어져 있지도 않고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게 사방으로 언덕이 흩어져 있어서 섣불리 아내를 찾아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손을 한참을 흔들던 중에 저 멀리서 울먹이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로가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자리를 지키기로 하고는 따라 올라온 아내나 끝내 혼자 정상을 향한 나 역시 서로 잘한 게 없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설마 위험한 일이 있었겠냐 생각되겠지만, 당시에는 깜깜한 사막에서 길을 잃는 상황에 발을 동동 굴리며 절박한 심정이었다.
엘림 듄의 모래 언덕 넘어 해가 진다.
한바탕 소동을 겪고 캠핑장으로 돌아와 캠핑장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분명 밤인데 밤과 같지 않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날씨가 무척 맑고 건조한 공기 덕분에 하늘에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쏟아질 듯한 별들(식상한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을 것 같다.)을 가운데로 은빛 은하수가 검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렇게 환상적인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은하수가 펼쳐진 사막의 지평선 끝이 밝아지더니 커다란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살면서 일출을 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 지평선에 떠오르는 월출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판타지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생경한 풍경이었다.
판타지 세상은 내가 잠든 사이에도 이어졌다. 몹시 바람이 부는 외계 행성에서 하염없이 길을 걸으며 무엇인가를 계속 씹는 꿈을 꾸었다. 왱왱 소리를 내며 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살짝 잠이 깼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와중에 나는 무엇인가를 계속 씹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밖은 모래 폭풍이 불고 있었고 텐트의 환기 구멍으로 모래가 계속 들어와 침낭 위에 사구를 만들고 있었다. 입안 가득한 모래를 뱉어내고 얼른 텐트 밖으로 나가 바람이 들어오는 구멍을 막으려 노력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 막막했지만 일단을 잠이 우선이었다.
하아... 잠자는 사이에 모래 폭풍이 텐트를 덮쳤었다. 침낭을 버릴 때까지 모래가 끊임없이 나왔었다.
해가 뜨고 나서 보니 텐트 안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당장이라도 침구들을 들고나가서 털어내고 싶었지만 일단은 오늘의 일정이 우선이었다. 해가 떠올라 더워지기 시작하면 사막을 걷기 힘들기에 서둘러 출발해야만 했다. 듄 위에서 일출을 보기에는 조금 늦은 시간이라 곧바로 나미브 사막의 깊숙한 곳의 소수스플라이(Sossusvlei)로 향했다. 한 시간 가량을 달려 도착한 소수스플라이 입구에는 이미 부지런한 여행자들이 잔뜩 설레는 얼굴을 하고는 모여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포장도로가 아닌 진짜 모래 위를 달려야 하기에 더 이상 우리의 차로 갈 수가 없다. 다행히도 NWR에서 사륜 트럭을 개조한 버스로 소수스플라이까지 셔틀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깨 높이만큼 떠오른 태양의 탓인지 설렘에 달아오른 탓인지 모르겠지만 저마다 붉은 얼굴을 하고 셔틀 트럭에 올라탔다. 모래 위에 깊게 길을 만들며 10여분을 달려서 드디어 소수스플라이에 도착했다.
황량함이란 소수스플라이를 두고 하는 말인 듯
플라이(Vlei)는 아프리칸스어로 습지라는 뜻으로, 소수스플라이는 삭막하고 건조한 나미브 사막에 간혹 비가 내리거나 물이 차오르면 습지가 되는 곳이었다. 지금은 당연히 바짝 말라서 물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단단하게 다져진 진흙판과 식물의 흔적으로 한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겠구나 유추할 수 있었다. 한때는 물이 있었고 푸르름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살 수 없는 공간을 보면서 누구에게나 빛나는 순간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잠시 소수스블라이가 빛나던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에 영롱한 푸른 점이었을 순간. 이런 영원과 순간에 대한 감상은 잠시 뒤에 만난 데드플라이에서 정점을 찍게 되었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신비로운 자연 풍경에 빠져서 홀린 듯이 계속 모래 위를 걷다가 야트막한 모래 언덕을 넘자 눈앞에 황량하면서도 기괴한 풍경이 펼쳐졌다. 나미브 사막의 하이라이트 데드플라이를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모래 사구라는 빅대디를 뒤로 하고 커다란 운동장처럼 펼쳐진 진흙판 위에 이미 죽어서 검게 화석이 되어버린 나무가 드문드문 박혀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처음 데드플라이를 본 느낌은 죽음을 시각화 해 놓은 것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한없이 외롭고 적막하고 황폐한 기분. 몇 백 년 전에 시간이 멈춰버린 죽음의 공간을 거닐다가 검게 말라버린 나무에 손을 가만히 대어 보았다. 온기라고는 없이 차가울 것만 같았던 죽은 나무는 사막의 태양의 기운을 받아 뜨거워져 있었다. 황량한 공간에서 죽은 나무는 끊임없이 태양에 의해 깨어나며, 죽음을 통해 영원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절대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죽음과 영원이라는 두 단어가 데드플라이에서는 공존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쓸쓸하고 적막했던 데드플라이
태양이 머리 위에 올라서기 전에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데드플라이를 나선 이후로 왠지 기운이 쭉 빠진 기분이었다. 더위 때문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젯밤 모래 폭풍의 흔적들을 열심히 지우고 나니 어느새 느지막한 오후가 되었다. 잠시 그늘에서 더위를 식힐 겸, 머지않은 곳에 있다는 세서림 캐년에 갔다. 소수스플라이에서는 잔잔한 물의 흔적조차도 떠올리기 쉽지 않았는데, 세서림 캐년의 협곡 안에 들어서니 세차게 흐르는 물이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거친 물살이 부드러운 모래 돌의 벽을 긁고 지나가면서 만든 깊은 상처 같은 협곡을 걷고 있으니 몸도 마음도 시원해지는 듯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어울리지 않는 비경. 세스리엠 캐년
다시 기분이 좋아진 김에 어제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엘림 듄의 석양을 보기 위해 모래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제 아내를 놓고 올라갔던 낮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준비해온 맥주도 꺼내 들었다. 비록 더 높은 곳에서 더 멀리 경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와 함께 맥주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석양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붉은 사막을 더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저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을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더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불과 어제도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전혀 다른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누구와 함께 경험하는 것의 차이였다. 행복은 함께 나눠야 늘어나는 것이었다.
사막에서 만난 나미비아의 대표 맥주. 빈트후크
엘림 듄에서 바라본 세스리엠 평원
다행히도 세스리엠에서의 마지막 밤은 고요했다. 나미브 사막을 떠나기 전에 그 유명한 듄 45에서의 일출을 보고 싶었다. 듄 45는 나미브 사막 입구에서 45km 떨어진 곳에 있는 사구이다. 그래서 일출 한두 시간 전에는 출발해야 해돋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새벽부터 캠핑장 곳곳에서 부산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다들 듄 45를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둠을 뚫고 사막을 가로질러 달렸다. 날이 조금씩 밝아져 올 때쯤에 멀리 거대한 사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를 세우로 푹푹 빠지는 모래언덕을 쉴 새 없이 올라갔다. 거친 숨을 몰아가며 모래 언덕 위에 도착하여 자리를 막 잡았을 무렵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지평선 끝에서 해가 솟아 올라왔다. 한없이 텅 빈 사막의 공간이 온기로 채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내와 손을 잡고 사막의 일출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에도 온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이라는 나미브 사막의 영원 속의 순간 같은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