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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Jun 11. 2019

7. 나미비아에서 만난 독일

스바코프문트, 나미비아


 세스리엠의 첫날밤에 만난 모래 폭풍 때문이었을까? 나미브 사막에 머무는 내내 입안에 까슬까슬한 모래가 느껴졌다. 황량한 사막의 풍경과 뜨겁고 건조한 날씨는 입은 물론 마음속까지도 바삭바삭하게 만들어갔다. 일주일 가까이 이런 환경 속에 있다 보니 문득 케이프타운의 시원한 바다가 그리워졌다. 사실 나미브 사막에서 바다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저 뜨겁고 황량한 모래 언덕 저편에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을 것이라고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지만, 나미브 사막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해안 사막이기에 곧장 서쪽으로 가로지르면 사막의 끝에서 바다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사막을 가로지르는 무모함과 용기가 없는 나는 나미브 사막의 둘레를 따라 이동하기로 했다.


 요 며칠간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고 쉬고 있었던 우리의 차는 다시 비포장 도로 위에서 흙먼지를 날리게 되었다. 아무리 달려도 변하지 않던 황색과 청색의 2 분할 바탕화면이 출발한 지 2시간쯤 지나자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돌무더기 보이는가 싶더니, 길은 어느새 겹겹이 쌓인 암석층 숲으로 둘러싸였다. 나미브 사막에서 서부 해안으로 넘어가는 쿠이셉 패스(Kuiseb pass)는 45도로 누운 퇴적층 위를 쿠이셉 강이 흐르면서 깎아내린 쿠이셉 캐년을 가로지르는 길목이다. 여행 중에 이런 암석 지대를 만나면 클리셰 같이 하는 말이 있다. '지구 같지 않은 곳, 마치 화성 위를 거니는 듯한 풍경' 그 누구라도 쿠이셉을 지난다면 똑같은 표현을 하게 될 것 같았다. 주변의 암석들이 이리저리 비틀려 있는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마치 영화 '인셉션'의 휘어지는 도로를 달리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낯설고 기이한 풍경이었다.


길도 산도 꼬불꼬불했던 쿠이셉 패스


 쿠이셉 패스를 넘어 구릉지대에서 빠져나가자 나미비아 서쪽 평원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곳에서부터 대서양에 접한 항구 도시인 왈비스 베이(Walvis bay)까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도로가 펼쳐졌다. 20~30분 동안 핸들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도 달릴 수 있는 구간도 있을 정도로 단조로운 도로를 누런 땅과 푸른 하늘로 양분된 풍경만 계속 보면서 달리고 있으려니 정신이 몽롱해져 갔다. 지평선 끝의 점을 향해 빨려가는 착시가 느껴지더니 급기야는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지 정지하고 있는지 모호해지는 순간마저 왔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잠시 쉴 수 있는 그늘조차 없는 사막 위를 마치 꿈속을 헤매는 듯이 두어 시간을 더 달리는데 갑자기 멀리 갈매기 한 마리가 보였다. 사막에 갈매기라...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면서 내가 지금 제정신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갈매기는 허상이 아니었다. 조금씩 새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멀리 도시의 모습과 반짝이는 수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바다에 도착한 것이다. 차 안에 갑자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사막의 풍경에 지쳐가던 아내도 수평선을 보면서부터 말수가 갑자기 늘기 시작했다. 오른쪽에는 사막을 왼쪽에는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오랜만에 바다 공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게 30여분을 더 달리자 오늘의 목적지인 스바코프문트(Swakopmund)가 나타났다.


이 사진만 보고 나미비아의 거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새로 도착한 도시를 감상할 틈도 없이 해지기 전에 얼른 텐트를 칠 캠핑장을 찾아야 했다. 대서양에서 끊임없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아침까지 사막의 더위에 시달렸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세찬 바닷바람에 추위 걱정을 해야 했다. 바다를 바라보고 펼쳐진 멋진 캠핑장이 있었지만 내가 가진 텐트로는 거친 바람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어느 게스트하우스의 아늑한 정원 가운데 자리를 잡고 캠핑 준비를 했다. 높은 담장이 바람을 막아주고 게스트하우스의 주방과 화장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어 무척 쾌적한 캠핑을 할 수 있었다. 휴게실에서 만난 여행 친구들이 각자 방으로 돌아갈 때에 우리는 정원에 있는 텐트로 들어가는 차이가 있을 뿐 평범한 배낭여행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사막에서 오는 길이었기에 당장 저녁으로 먹을 식재료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텐트를 치자마자 곧바로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시내로 나섰다. 나미브 사막에 머무는 동안 시원한 바다만큼이나 대형 마트가 그리웠었다. 마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 공기와 함께 온갖 물건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이성을 잠시 잃었던 것 같다. 달리는 쇼핑카트 안으로는 고기와 빵, 과자, 맥주들이 차곡차곡 쌓였고, 계산을 마치자마자 동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곧장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게스트하우스 주방은 몹시 분주했고, 우린 마치 라마단 기간이 방금 끝난 무슬림인 것처럼 게스트하우스 정원에서 맘껏 만찬을 즐겼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만족스러웠던 그 밤의 짭짤한 바닷가 공기와 청명한 달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잘 꾸며진 정원이 순식간에 내 집 마당이 되었다.


 어제 스바코프문트에 도착했지만 사실 시내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늦게 도착한 탓도 있었지만 장거리 이동을 한 이후라 잘 챙겨 먹고 푹 쉬는 것이 중요했기에 무리해서 돌아다니지 않았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를 나서자 발길은 자연스럽게 바다로 향했다. 그토록 갈증을 불러일으켰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휴양지답게 스바코프문트의 바다는 눈부시게 청명했다. 해변 가운데에는 짙푸른 대서양을 향해서 길게 선착장이 뻗어 있었다. 1905년에 만들어졌다는 낡은 선착장은 지금은 정박을 위한 용도보다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선착장을 지나 해변을 따라 걸었다. 팜 비치라고 불리는 긴 모래사장에는 거친 바람 때문인지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대신 바닷바람을 가르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축구를 하는 동네 꼬마들을 볼 수 있었다. 어딜 가든 저렇게 신나게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보면 문득 그 속에 뛰어 들어가 함께 뒹굴고 싶어 진다. 하지만 얌전한 여행자는 관찰자 역할을 할 뿐 선뜻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내지 않았다. 어쩌면 여행 소개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출연자를 보면서 여행지에 가면 으레 그래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어진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번 지나가는 여행지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기에 그들의 삶에 굳이 얼룩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대서양으로 뻗어나간 낡은 선착장의 끝에는 전망이 멋진 레스토랑이 있었다.
나도 좀 끼워줘...


 해변에서 벗어나 시내로 들어왔더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마치 영화 세트장이나 테마파크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봤던 풍경과 전혀 다른 모습의 거리가 펼쳐졌다. 제각기 건축 연도를 이마에 새겨놓은 독일풍의 건축물들은 백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깨끗하게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스바코프문트라는 도시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도시는 100여 년 전에 독일이 나미비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만든 항만 도시이다. 독일의 식민지배와 그 이후 70년간 이어졌던 남아공의 위임통치 기간을 거치는 동안에도 이 도시는 초기의 모습을 유지했었고 현재는 정부 방침에 의해 도시를 보존하고 있었다.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는 모습을 지켜봤던 나로서는 잔혹했던 식민 통치 기간의 유산을 보존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현재의 그들에게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그렇게나마 보상을 받으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스바코프문트 시내는 마치 테마파크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든다.


 대서양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어제 못다 이룬 육식의 한을 풀기 위해 숙소 주방에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그러던 중에 주방에서 만난 여행자들에게 흥미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스바코프문트에서 해변을 따라 130여 킬로미터를 올라가면 케이프 크로스 (Cape cross)라는 장소가 있는데 바다사자가 집단으로 서식하는 곳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에서 야생 바다사자가 엄청 많은 곳이라니,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다음날 일찍 전날 주방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함께 바다사자를 만나러 떠났다. 스바코프문트를 벗어나자마자 풍경은 또다시 극단적으로 단조로워졌다. 오른쪽에 누런 사막, 왼쪽에는 푸른 바다. 그런데 흐리고 안개가 자욱한 바다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바다 쪽을 바라보면 약간 흐린 날씨 인가 싶었는데 오른쪽의 사막을 보면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는 이상한 날씨였다. 나미비아 앞바다로 Benguela 한류가 흐르고 사막의 뜨거운 공기와 만나 항상 안개가 자욱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거친 해류와 얕은 수심에 안개가 더해져 수많은 배들이 좌초되는 것으로 유명하여 이곳을 스켈레톤 해안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지금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어버린 난파선


 드문드문 해안에 걸쳐져 있는 난파선을 보며 한참을 달려서 케이프 크로스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을 코를 찌르는 냄새였다. 그 냄새 너머에는 수백수천 마리의 바다사자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누워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아주 멀리서 본다면 바위가 아주 많은 해변으로 보였겠지만, 실상은 셀 수 없이 많은 바다사자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그 바다사자들의 틈바구니를 가로지르는 나무데크길을 따라 살금살금 그들 무리 안으로 들어갔다. 늘어져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수컷과 갓 태어난 듯한 새끼를 품고 있는 암컷 무리들, 쉴 새 없이 장난을 치는 아이들까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간혹 동물원에서 한 두 마리 바다사자를 볼 때면 내가 관람자가 되어 그들의 재롱을 구경했지만, 이 곳에서는 전세가 역전되었다. 수천 마리의 바다사자들은 편하게 누워서 오늘 온 새로운 인간 무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기분이 들었다. 강렬한 야생의 기운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 그리고 강렬한 야생의 냄새도 나를 녹다운시키기 충분했다.


아... 사진에서 소리와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시작하여 나미브 사막에 이르는 여정 중에는 계속해서 광활하고 웅장한 아프리카의 자연을 보다가 케이프 크로스에 와서야 역시 아프리카는 야생의 땅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미브 사막에서 나미비아의 풍경을, 스바코프문트에서 나미비아의 역사를 봤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나미비아의 야생을 보기 위해 에토샤 국립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스바코프문트의 선착장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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