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편집자, 출판사에 가다

편집회의는 어떤 것일까?

by 금경희

출판사 편집회의를 위해, 유치원 점심식사 전 진혁이를 데리러 갔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는 진혁이는 신이 났다. 우리가 이동할 거리는 넉넉하게 1시간 30분.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차로 장거리 이동할 때 진혁이에게 오디오북을 들려주곤 한다. 자리를 잡고 앉은 뒤, 헤드셋을 씌워주고 오디오북을 듣도록 했다. 진혁이가 평소에 좋아하지만 침대에 누웠을 땐 한두 편으로 제한을 두고 있다. 연속적으로 틀어놓거나 하면 듣다가 잠드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지 않고 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지루한 시간을 동행해주는 오디오북이 오늘은 고마웠다.


일찍 서두른 탓에 1시간가량 일찍 도착하여, 진혁이를 데리고 편의점에 갔다. 점심을 간단하게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진혁이는 신났는지 사탕과 젤리를 골랐고 나는 계란, 음료, 소시지만 사주었다. 요깃거리를 먹고 있는 진혁이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진혁이랑 단 둘이 이렇게 다니니까 좋다. 데이트하는 것 같아.”

“나는 엄마랑 지하철 타니까, 엄마랑 소풍 나온 것 같아서 좋아. 유치원 빠지고 엄마랑 또 이렇게 다니고 싶어.”


만 2살 어린 동생이 있어 둘 데리고 지하철 타기란 쉽지 않다.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 먼 거리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진혁이는 그래서 오늘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항상 진혁이의 동생을 보살피느라, 진혁이가 뒷전이던 나도 진혁이랑 둘만 있으니 진혁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책 고르는 진혁이의 뒷모습

약속 시간 20분 남겨두고, 약속 장소인 출판사 카페로 이동했다. 출판사 북카페에 간 것은 처음이라 나는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진혁이는 자기가 원하는 책을 몇 권 꺼내 보며 담당자를 기다렸다. 어느새 어른(?) 편집자가 진혁이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어린이편집자님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건넸다. 어색했는지 진혁이는 쭈뼛거리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받았다.


담당 편집자가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커피, 음료, 빵을 사주었다. 다소 한적한 장소인 지하 1층으로 이동하여 회의를 시작했다. 부끄러워하던 진혁이는 오래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말이 많았다. 주제에 벗어나 상상력으로 꾸며낸 말도 하고,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편집자는 모두 들어주고 호응을 해주었다.


“지원서를 보니 진혁이가 책을 깊고 많이 읽은 느낌이 들었어요, 어머니께서 진혁이에게 어떻게 그리 다양한 책들을 많이 읽히셨는지 궁금해요.”


“저도 고심하여 책을 고르기 시작한 지 1년 되었어요. 작년 이맘때, ‘어린이도서연구회’란 곳에 가입을 하며 어린이가 읽는 책도 문학적이고 예술적 작품성이 높은 책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근대 동화와 그림책을 읽으며 토론도 하고, 그림책 연구가로 유명한 선생님의 강연을 찾아 들은 것이 아이 책 읽기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1년 전만 해도, 진혁이가 들고 오는 전집 책을 의무감에 읽어주었지요. 그런데, 책 공부를 하며 알게 된 단행본 책들을 읽어주자 내가 재미있고 내가 감동하게 되는 책들이 많았어요. 내가 먼저 애정을 담아 책을 읽어주니, 받아들이는 진혁이도 다름을 느꼈겠지요. 자연관찰 책 위주로 편향된 책 읽기를 하던 진혁이도 다양한 문학적 작품들을 접하며 내면에 변화가 있었으리라 저는 생각해요.”


“스즈키 노리타케 <케첩맨> 책을 재미있게 본 책 중 1권으로 진혁이가 말했던데,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예전 직장에서 직접 편집한 책인데, 출판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재미있어할까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거든요. 많은 아이들이 읽은 책은 아닌 것 같은데, 진혁이가 읽었다 하니 반갑기도 하고 한 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토마토 맨이 케첩을 빨아먹고 부풀어 올라 터져서 온 도시가 케첩으로 가득 찼는데, 모두 케첩을 손가락으로 찍어 먹는 장면이 재미났어요.”


어른들에겐 그 숨은 의미를 찾아 나름의 해석이 들어가는 책인데, 아이들에겐 단순히 재미 그 자체로 재미를 느끼게 한다. 아이가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보여줬는데 의외의 반응을 보인 책이 꽤 있었다. 혹은 아이가 재미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보여줬는데, 시큰둥할 때도 있다. 어른들이 보고 해석하는 방식과 아이들이 보고 해석하는 방식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처럼 어린이편집자를 뽑아 어린이의 시선을 살펴보고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듣고자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보면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잖아요, 빙하는 왜 자꾸 녹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자동차도 많이 타고 다니고, 전기도 아껴 쓰지 않아서 지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어요. 그곳으로 태양빛이 많이 들어와 빙하가 자꾸 녹고 있어요.”

“동물들은 그럼 왜 자꾸 사라지는 걸까요?”

“사람들이 자연을 정성껏 돌보지 않고 담배를 많이 피고, 숲을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파괴해서 동물들이 살아갈 곳이 사라지고 있어요. 나무를 많이 베어서 깨끗한 공기도 사라지고 있어요. 물을 아껴 쓰지 않아 물도 오염되고,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가 공기도 나쁘게 해요. 중국에 사는 판다는 중국 사람들이 판다 숲에 건물을 많이 짓고 있고, 코알라는 호주 사람들이 유칼립투스 나무를 많이 베어서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평소에 진혁이와 나누는 대화 주제가 아니라, 진혁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던 부분이었는데 진혁이의 답변을 들으며 조금 놀랐다. 내가 예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비공개 책 3권도 함께 보았다. 한 권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그림이 예쁜 국내 작가 그림책이었고, 다른 한 권은 영어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진 캐릭터 그림책이었다. 꽤 많은 내용들에 대한 이야기를 긴 시간 나누었고, 진혁이는 크게 힘들어하지 않고 잘해주었다.

마주 보고 앉은 어른편집자와 어린이편집자 ⓒ미디어창비

“엄마 나 내일도 유치원 마치고 여기 와서 편집자님 만날래.”

“왜 그러고 싶어?”

“편집자님이 정말 좋아. 매일매일 또 오고 싶어.”


예쁜 미소를 가진 편집자가 본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고, 잘한다 칭찬까지 해주니 진혁이는 편집자가 정말 좋았던 모양이다. 편집자와 함께 하는 편집회의 시간을 즐거워하니, 나도 그저 감사하게 느껴졌다. 책 표지를 들고 두 편집자가 사진을 찍은 뒤,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데, 진혁이가 편집자 품에 반복적으로 안기는 것이었다. 아직 미혼처럼 보이기에 부담스러우실까 진혁이에게 제재를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진혁이는 편집자 볼에 뽀뽀도 아끼지 않았다. 엄마 아빠를 제외한 사람에게 이런 애정표현하는 것을 처음 본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편집자가 잘 받아주었다.


조금 가다 뒤돌아 인사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진혁이와 겨우 카페를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러 갔다. 가는 길에 꽃집이 하나 보였다. 동물만큼이나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진혁이가 빨간 열매가 달려있는 화분을 지목하며 사달라 했다. 집에 들고 가려면 불편하고 힘들 테니 집 근처 꽃집에서 주말에 사주겠다 했다. 진혁이는 지금 그 화분을 편집자님 갖다 드리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헤어지며 너무 많은 인사를 했던 터라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아 진혁이를 타일렀고 진혁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떼를 썼다. 떼쓰며 우는 진혁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서 있는 상태로 헤드셋을 씌워 오디오북을 틀어주고 나서야 진혁이는 조용해졌다. 엄마와 오래간만에 하는 데이트는 어른 편집자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애정표현과 떼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