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본항공 JL123편 추락사고 1985.8.12

유가족 지원과 안전대책을 중심으로 되짚어본 참사의 교훈

by JM Lee

1985년 8월 12일, 일본 항공사상 가장 큰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일본항공(JAL) 123편이 군마현 오스타카 능선에 추락하면서 524명 중 520명이 목숨을 잃었고, 단 4명만이 생존했습니다. 단일 항공기 사고로는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로 기록된 이 참사는, 단순한 항공 사고를 넘어 일본 사회 전체에 깊은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사건은 항공안전 의식을 환기시키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JAL과 일본 정부의 대응을 계기로 항공업계 전반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사고의 발생 배경과 원인은 물론, 이후 유가족 지원 조치와 항공 안전 제도 개혁까지 포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520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 사고가 남긴 교훈을 함께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사고 개요: 일본 항공사상 최악의 참사


1985년 8월 12일 오후, 도쿄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오사카 이타미공항으로 향하던 일본항공 123편(JA8119, 보잉747SR 기종)은 출발 직후 기체 후방에서 이상이 발생했고, 조종이 불가능한 상태로 약 30분간 비행한 끝에 군마현 우에노촌 인근 산악지대에 추락했습니다.


승객 대부분은 일본 기업 임직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승객이었으며, 이로 인한 국민적 충격은 매우 컸습니다. 구조가 늦어졌던 점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공백의 16시간'이라 불린 초동 구조 지연은, 일본 구조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식 조사 결과: 부실 수리가 부른 대형 참사


1987년, 약 2년간의 조사 끝에 일본 운수성 산하 항공사고조사위원회는 사고 원인을 최종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1978년 시리모치(꼬리 착지) 사고 이후 보잉사가 수행한 수리 작업이 기준에 미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금속 피로가 누적돼 격벽이 파열됐다는 점이었습니다.


압력 격벽이 무너진 순간, 수직 꼬리날개가 떨어져 나가고 네 계통의 유압 장치가 모두 고장나면서 기체는 조종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조종사들은 끝까지 엔진 추력만으로 비행을 시도했으나, 결국 산악지대에 충돌하며 대형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유가족 지원: 단순 보상을 넘어선 ‘동행’


초동 조치와 위로금 지급


사고 직후 일본항공은 유가족에게 임시 숙소, 교통편, 장례 지원 등을 제공했습니다. 같은 해 말까지 약 7억8천만 엔에 달하는 위로금이 지급되었으며, 생존자 가족 및 유자녀를 위한 장학금 제도도 부분적으로 운영됐습니다.


유가족 단체와의 협력: ‘8·12 연락회’ 출범


1985년 말, 유족들은 ‘8·12 연락회’를 결성해 사고 원인 규명과 항공 안전 강화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본항공은 유족 전담 창구를 설치하고, 정기 간담회를 통해 유가족과의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안전계발센터 건립 과정에서도 유품 전시 구성 등에 유족 의견이 적극 반영되었습니다.


위령 행사와 추모 문화


JAL은 매년 8월 12일, 오스타카 능선에서 유족들과 함께 추모 등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이사 및 직원들도 정기적으로 행사에 참여해 도의적 책임을 표하고 있으며, 위령비와 등산로 정비를 통해 현장의 보존과 접근성 향상에 힘쓰고 있습니다.



항공안전 개혁: 제도와 문화의 전면 개편


사고편 영구 결번 및 사고 기종 퇴역


JAL은 사고편 번호인 ‘JL123’을 영구 결번 처리했으며, 사고 기종인 747SR은 점진적으로 운용을 중단해 1990년대 중반까지 모두 퇴역시켰습니다. 대신, 보잉777 등의 신기종을 도입해 항공기 안전성과 성능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정비 및 검사 체계 재정비


사고 이후 JAL은 정비 품질보증 부서를 신설하고, 이중 점검 시스템 및 비파괴 검사(NDT)를 도입했습니다. 항공기 구조 진단을 위한 기술연구소도 설립하여 재발 방지를 위한 기술적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사내 안전문화 교육 확대


‘Safety First’라는 원칙 아래, JAL은 전 직원 대상 안전 헌장을 수립하고 비상대응 훈련을 정례화했습니다. 조종사와 정비사는 물론 신입사원, 간부 직원까지 사고 사례 중심의 교육을 통해 안전문화의 내재화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안전계발센터’ 설립: 사고를 기억하는 공간


2006년, 하네다공항 인근에 ‘JAL 안전계발센터’가 설립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사고 당시 기체 잔해, 유품, 보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매년 약 35,000명이 방문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도 견학이 가능하여 안전문화 확산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 이행과 국제 협력


사고 직후 JAL 사장은 TV 생중계를 통해 공개 사과하고, 경영진은 전원 사퇴했습니다. 1주기 추모식에서는 보잉사 사장이 직접 유가족 앞에서 과실을 인정하며 사과하는, 유례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고위 임원들이 매년 유족을 찾아가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JAL은 ICAO, IATA 등 국제 기준을 수용하고, 비상탈출 지침을 포함한 국제 매뉴얼을 개정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안전체계를 완성했습니다.



유족의 독립적 활동: 기억을 넘어 행동으로


‘8·12 연락회’는 기술부회를 독립시켜 항공 좌석의 충격흡수 구조, 정비 기록의 디지털화 등 구체적 기술개선 제언을 지속해왔습니다. 이 공로로 2009년 미국 항공피해자협회(NADA)로부터 ‘항공안전상’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가라앉지 않는 태양》, 《클라이머즈 하이》 등의 문학·영화 콘텐츠는 대중의 기억 속에 사고를 되살리고, 기업의 책임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형사 책임과 재조사 논란


1989년, 도쿄지검은 관련 기술자 및 JAL 정비 담당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하였고, 이에 유족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후 2010년 유족들은 정부에 재조사를 요구했고, 2011년에는 정부가 ‘사고조사 보고서 해설서’를 발간하여 질의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지만, 정식 재조사로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결론: ‘520명의 희생’이 남긴 오늘의 교훈


JL123편 사고는 단지 기술적 결함 때문만이 아니라, 정비 소홀, 구조 지연, 안전문화 부재가 복합적으로 얽힌 참사였습니다. 하지만 이 사고를 계기로 일본 사회는 항공안전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했고, 일본항공은 조직 문화 전반을 바꾸는 노력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해 나갔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유가족들이 단순한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항공안전 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노력은 오늘날까지도 항공업계에 귀중한 교훈을 남기고 있으며, 앞으로도 전 세계 항공안전 체계 발전에 중요한 자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각이 삶을 창조한다: 좋은 생각을 선택하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