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위로의 시간
나는 자주 밤에 산책을 나선다.
누군가에게 밤은 하루의 끝이겠지만, 나에게는 시작이다.
햇살이 사라지고, 자동차 소리도 멀어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들 무렵이면
나는 조용히 집을 나선다.
밤은 낮의 분주함이 걷힌 자리에 놓인 빈 의자 같다.
햇빛이 내리쬐는 낮에는 숨기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내 감정도, 타인의 시선도, 세상의 기대도.
하지만 밤이 오면, 그런 것들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래서 나는 밤이 좋다.
고독마저 온전히 내 것처럼 느껴지니까.
어렸을 적 나는 밤을 무서워했다.
어둠 속에 숨어 있을지 모를 귀신,
그리고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들에 늘 긴장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이제는 낮이 더 무섭다.
밝은 햇살 아래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위선과 이기심, 무관심이 더 두렵다.
밤의 어둠은 최소한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있는 만큼만 보여준다.
어둠은 정직하다.
겉모습을 가려주고, 목소리를 낮추게 하고, 마음을 드러나게 만든다.
그래서 연인들은 밤에 더 가까워지고,
친구들은 밤에 비밀을 털어놓고,
나 자신도 밤에야 비로소 솔직해진다.
혼자 걷는 밤길은 외롭다기보다 따뜻하다.
낮에 미처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
불쑥 떠오른 감정들,
그 모두를 나만의 속도로 끌어안을 수 있다.
세상과 잠시 거리두기를 하며,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밤은 때때로 외로운 영혼들의 안식처가 된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손을 잡는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 비친 내 그림자도,
가끔 스쳐 지나가는 고양이 한 마리도,
모두가 조용히 나의 산책을 응원해주는 듯하다.
그렇게 나는 밤을 걷는다.
마음이 가는 대로, 발이 닿는 대로.
밤의 고요는 내게 위로가 되고,
그 위로는 다시 하루를 살아낼 용기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밤의 산책을 즐긴다.
달빛 아래 고요히 살아 있는 나를 확인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