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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고 싶어서, 아팠던 당신에게

—김주환 교수의 강의를 듣고 나를 돌아보다

by JM Lee

가시처럼 박혀 있던 그 말 한마디


“넌 왜 그것밖에 못 해?”
“와, 그 정도면 잘했네. 근데 누구는 더 잘했다더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까, 열심히 해봐.”

우리는 자라나는 동안 수많은 말들에 둘러싸여 살아왔습니다. 그중엔 칭찬도 있었지만, 때로는 비교와 조급함, 기대와 실망의 말들이 마음 깊은 곳에 ‘가시’처럼 박히곤 했죠.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고, 실수하면 안 될 것 같고, 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 언젠가부터 ‘진짜 나’보다는 ‘누군가가 좋아할 만한 나’를 연기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김주환 교수는 이것을 **‘인정의 가시’**라 말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마다 가시가 움찔거리고, 비난을 받을까 봐 잔뜩 움츠러든 우리. 인정이라는 마취제 없이는 자기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삶, 그것은 얼마나 아프고 외로운 일일까요?


우리는 왜 그렇게 인정에 목을 매는 걸까?


인정은 마약처럼 달콤합니다.
누군가의 ‘좋아요’ 하나에 기분이 들뜨고, 누군가의 무심한 한 마디에 하루가 무너집니다. 칭찬을 받으면 살아 있는 것 같고, 무시당하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한 기분이 들죠.

그렇게 우리는 인정이라는 리모컨에 조종당하며 삽니다.
자존감이 높은 척, 여유 있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 모든 ‘척’들 속에는 사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받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말합니다.
“우리는 평가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고 존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
이 문장을 들은 순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합격점’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다그치고 몰아붙였던 걸까요?


인정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정의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김 교수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 따뜻하게 박수치는 사람이 되자.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불안하게 말하지 말고,
면접장에서도 ‘저 분들 오늘도 수고 많으시겠다’며 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사람은 의외로 그런 따뜻함에 더 반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향한 인정과 존중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을 거두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겁니다.
“괜찮아. 오늘도 수고했어. 나 참 잘 살고 있어.”


몸부터 다독여 주세요: 뇌가 안심해야 마음이 바뀝니다


“이게 다 마음의 문제니까 마음을 고치면 돼.”
맞는 말이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요?

김 교수는 뇌과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우리의 불안, 초조, 분노는 대부분 편도체의 과잉반응에서 비롯됩니다.
쉽게 말해, 뇌가 늘 ‘비상사태’ 모드로 켜져 있는 거죠.


이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몸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가 소개한 방법은 바로 ‘존(Zone) 2 운동’.
자신의 최대 심박수의 약 65~75% 수준, 즉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강도로, 30~40분 정도 천천히 걷거나 조깅하는 것입니다. 숨이 가쁘지 않고, 몸에 따뜻한 열기가 도는 정도가 가장 적절한 상태입니다.

이 운동을 꾸준히 하면 편도체가 안정되고, 전전두엽―즉 이성적 사고와 감정을 조율하는 영역―이 활성화되며, 불안에 덜 흔들리는 뇌가 만들어집니다.

특히 “달리기 명상”이란 개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발바닥이 땅을 딛는 감각, 숨소리, 주변 나무와 바람을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놀랍게도 이 단순한 ‘느낌의 알아차림’이, 우리의 뇌를 조용히 가라앉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하더군요.


자기존중이라는 단단한 기둥


인정의 갈증에서 벗어나려면 자기존중감이 필요합니다.
남이 나를 알아봐줄 때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보지 않을 때에도 나는 나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작은 실천 하나로 시작해보세요.

아침에 거울을 보며 “오늘도 잘 살아보자” 말 걸어주기.

나를 도와준 사람에게 “덕분에 힘이 났어요” 말해주기.

내 곁의 사람에게 “고마워, 참 소중한 사람이야” 전하기.

이런 사소한 실천들이 모여, 내 뇌의 회로가 달라지고
내 삶의 진동수가 바뀝니다.
존중은 배워서 남 주는 게 아니라, 써서 나를 지키는 힘이 되어줍니다.


결국, 사랑과 존중은 뿌리처럼 우리를 지탱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건,
명품도, 화려한 이력도, 멋진 말솜씨도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외부의 인정에 목말라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군가의 박수가 없어도,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존귀하니까요.
가시를 뽑고 나면, 거기엔 상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음이 자리하게 됩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오늘 하루 작은 평안과 존중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 마디,
“수고했어요. 오늘도 멋졌어요.”
먼저 건네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zjqJh3oB2o&t=282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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