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 이제 학교에 가고 싶어요!
아일린이 데이케어란 곳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거의 작년 이맘때였던 듯 하다.
한국에서 돌잔치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 거의 머리에 꽃을 달고 시차적응을 한 후 '더는 이렇게 일에 쫓기고 육아에 쫓기면서는 못살아!'라고 외치며 항복을 했던 그 때.
그리고 나서 남편과 나는 근처의 데이케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데이케어에 보내겠다고 해서 당장 보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한국은 임신해서부터 어린이집 접수한대."라고 남들이 말하면 막 웃었다.
"미쳤나봐. 왠일이야!"하며 남의 일처럼 치부해버렸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뉴욕에서 2시간이 떨어진 한적한 곳이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라 자신했었다.
동네 데이케어를 몇 개 알아보고 전화상담/방문상담을 거쳐보니 내가 어리석고 미쳤었다.
그러나, 이 곳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나쁘다면 나쁠 수도 있었다.
맞벌이가 생활화 된 곳이고, 아이를 낳고 다음날부터 회사에 나가는 열혈 워킹맘들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듯 하다.
역시나 신생아반부터 토들러반까지 남는 자리는 없었다.
어느 곳을 가던지 "조금 기다리셔야해요!"를 단골 메뉴처럼 듣게 되었다.
나는 내가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이 어린것을 이제 떼어놓을 때가 되었다'고 결심하면 언제든 나를 향해, 우리를 향해 모든 데이케어에서 반갑게 손을 뻗어올 줄 알았던게 오산이었다.
몇몇 곳에 웨이팅을 걸고 힘없이 돌아서야만 했던 나름의 좌절감.
모유 수유를 위해 공부하고 해보고 싶었으나 결국 젖을 빨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모유수유 직수를 포기하던 그 낙심함 이후 처음으로 맛보는 인생의 쓰디 쓴 맛이었달까.

"파트타임 자리가 있는데......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올래?
신은 나에게 관대하지 않다고-
또다시 아이와 24시간 시간을 보내고 일하고 머리에 꽃을 달며 살아내야 한다고 좌절하고 있는데
구세주같은 전화 한통이 왔다.
"풀타임은 언제 날지 모르는데, 마침 화/목 이틀 오는 파트타임 자리가 있어요. 관심있나요?"
"네네!! 갈게요!"

그렇게 튀어갔다.
하루만에 모든 서류들을 작성해서 기쁘게 짠~ 두 손에 쥐고 달려갔다.
"다음달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내일이 아니고 다음달?'
두번째 실망을 하고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왜 한국에서 임신중부터 어린이집 문을 두드리는지 알것만 같아 쓴웃음이 나왔었다.
"나는 애미로서 자격이 없어. 이런 애를 어쩌자고......
아일린의 데이케어 적응기는 파란만장했다.
첫날, 엄마 아빠와 함께 등교한 아가는 첫 낯선 환경이 신기해서 우리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잘 떨어져 놀기 시작했다.
너무너무 신기했다.
그러나 10분 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울음이 시작되면서 잠시나마 대견하고 평화로웠던 시간이 무너져 내렸다.
아이는 당시까지도 낯을 심히 가렸다.
13개월인데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의젓하고 걸어다니며 잘 노는데 나의 아이는 이 모든 낯선 환경이 무서워 더 꼭 내 목을 끌어안고 울어댔다.
일주일 내내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도 지쳤고, 한 순간은 안되어 보였고, 다른 한순간은 내 아이만 이러나 싶어 속이 상했다.
화도 났다. 그 당시 나의 화는 고스란히 남편에게로 돌아가버렸다.
이렇게 계속 아이를 보내야하나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울어대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져서 내 욕심때문에 어긋난 방향으로 자라날까봐 두려워졌다.
'그만 둘까'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거의 그만두는 쪽으로 70% 이상 기울었을 때,
아일린 반의 담당 선생님께 이메일을 드렸다.
'더는 못하겠어.. 그만...두는게 좋겠지?'
선생님은 장문의 이메일로 답장을 주셨었다. 요지는 아이와 함께 오전시간 내내 있다가 가는 건 옳지 않은 방법이니 내일부터는 아이가 울더라도 자신들을 믿고 맡겨달라는 것이다.
아이도 자신들과, 또래 녀석들과 신뢰를 쌓아야만 한다고... 얼굴을 익히고 함께 해야할 곳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길고 긴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워킹맘이라 힘들지?라는 위로도 길게......

"매정하게 돌아섰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도저히 우는 아이를 볼 자신이 없어 남편에게 토스했다.
아침에 남편은 아이를 챙겨 데이케어에 갔고,
몹시나 경직된 얼굴로 집에 돌아와 나를 마주했다.
우는 아이를 처음으로 떨어뜨려놓은 애비의 처참함이 얼굴에 어렸다.
남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이게 뭐냐고...
너무 힘들다고...

남편은 그런 나를 향해 아무말도 해줄 수가 없었던지 가만히 어깨만 두드려주었었다.
뭐라도 해야할 거 같아서,
일을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머릿속은 온통 아이의 생각뿐이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걱정만 되었다.
혹시나 싶어 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담임선생님께서 불안하면 언제든 전화를 하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나 어렵고 힘들게 수화기를 들었다.
"Hi, I'm Eileen's mom."
"Oh, Hi, How are you?"
"Worrying about her..."
"I know. I just wanted to call you Eileen is doing great! Right after James left, she stop crying and started playing."
"Oh, great! Would you think we need to pick her up before the nap time?"
"I don't think so. But, if you want. We will try. Okay?"
"All right. Thank you so much! Please call me when you think Eileen is needed us."
"Of course. Have a good day!"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시간이 흘러 낮잠 시간이 되었다.
아이는 그때까지도 늘 안겨잤었다.
아마 낮잠까지는 어렵겠다 싶어 전화기에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는데 이메일 알람이 울렸다.
아일린의 담임선생님이 짤막한 메일과 더불어 사진을 한장 보내주셨다.
"Eileen is sleeping now."
아이는 분신과도 같은 양인형 (일명, 양양이)을 끌어안고 엎드려 너무나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흐느낌으로 번져나갈 때까지 하염없이 울었다.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고,
그때까지 전전긍긍하며 걱정하던 내 마음 속 번민이 소용돌이치며 심하게 흔들렸었다.
"마미, 아이 원투 고투 스쿨!"
아일린은 아침에 일어나면 Miss Kelsi가 있는 학교에 가겠다 한다.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는 Miss Kelsi란다.
미스 켈시는... 선생님인데.... �
오늘도 미스 켈시와 허그하지 않고 데리고 나왔더니 복도에서 울고 불고 난리다.
결국엔 미스 켈시가 부랴부랴 나와서 아일린을 부비부비해주고 하이파이브를 해준 후에야 아이는 돌아설 수 있었다.

지금 아이는 풀타임으로 데이케어에 다닌다.
월화수목금.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오늘은 일이 조금 일찍 마쳐졌고, 아이가 보고 싶어 3시30분에 갔더니-
막 밖에 나가서 노는 대열에 끼어 "Ants go marching"을 부르고 있었다.
환히 웃는 얼굴로 달려와 안기고 나서는 다시 대열로 들어가네? 어랏? 집에 가야하는데... ㅠ.ㅠ

더 놀고 싶단다.
그래서 30분을 더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밖에서 아이들과 혹은 혼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던 아이는 다시 대열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며 교실로 들어섰고,
나는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봐 복도에서 서성이며 그런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밝아보였고 행복해보였다.
선생님이 주시는 찬물을 받으며 "땡큐"라고 하고 벌컥벌컥 들이켜고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환히 웃어보였다.
데이케어를 보내야하나 고민하시는 맘들께
미국이란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 나처럼 가족이 전혀 근처에 없는 경우,
데이케어는 구세주였다.
아이가 적응을 못한다,
아이가 울기만 한다,
이런 고민을 토로하는 엄마들도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들은 얘기, 그리고 내가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조언을 해준다면-
"매정하게 돌아서고, 아이를 믿어라!"
아이는 엄마보다 강하고,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잠재력이 크며,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적응력이 빠르다.
킨더에 갈 때까지 끼고 키울 생각이 아니라면 하루라도 빨리 믿을 수 있는 좋은 데이케어를 찾아 아이를 맡겨 보는게 옳다는 생각이다. 아이가 데이케어에 이른 시기에 가면 갈수록 적응력도 빠르고, 더 많이 성장하는 듯 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백일 후에 바로 보냈을거라고 나는 늘 사람들에게 우스개 소리 반 진담 반으로 얘기를 하곤한다.
무엇보다 아일린이 현재 다니는 데이케어는 공립이고, 특정 카테고리에 해당되어야만 어플라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여서 조금 더 파트타임을 오래 하면서 풀타임을 기다렸는데-
그만큼의 값어치를 해주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1년동안 지켜본 바, 선생님들도 너무 친절하고 아이들을 누구보다 예뻐하는게 느껴진다.
시설도 만족스럽고, 다양한 액티비티를 하다보니 집에서 해줄 수 없는 버라이어티한 놀이들을 하며 아이는 즐거워한다.
대도시가 아니다보니
공기도 좋고 들판도 드넓고 놀이터도 많아서 아이는 학교 가는 것을 상상 이상으로 즐거워한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 프리스쿨부터는 킨더를 준비하기 위해 뉴욕 한복판으로 옮겨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년쯤 옮길 생각인데, 그렇게 된다면 토들러 반까지 이 곳에서 2년을 꽉 채우고 뉴욕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아이를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키우고자 한다면, 늦게는 4살까지 이곳에 있을 수도 있겠다.
앞으로 적게는 1년, 많게는 2년동안 아이가 그 누구보다 데이케어를 사랑하고 늘 매일 아침 지금처럼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러나 아이의 변덕을 누가 알 수 있으랴.
당장 어쩌면 내일 아침 학교에 안가겠다고 할 수도 있을텐데...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