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善財)와 미카엘
나는 기도하며 살아간다.
하느님을 믿고 성당에서 손을 모은다.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때때로 사찰에 들러 고요한 풍경을 마주한다.
기도는 성당의 장엄한 종소리 속에서도,
절 마당에 내려앉는 낙엽 소리 속에서도 흐른다.
나는 두 세계를 지나왔고, 여전히 그 안에서 숨 쉰다.
하느님을 믿으며 세례를 받았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인도를 믿는다.
삶이 흔들릴 때면 조용히 기도한다.
"하느님, 저를 이끌어 주소서."
그 기도는 나를 감싸는 위로가 되었고, 나아갈 길을 밝혀주었다.
하지만 때때로 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성경을 펼쳐 내 삶을 돌아보았다.
기도가 쌓이고 믿음이 깊어질수록 깨달았다.
모든 순간은 의미가 있으며, 나는 신의 계획 속에서 걷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여전히, 나는 사찰의 고요함을 그리워했다.
사찰에 갈 때면 마음이 가라앉았다.
향이 천천히 타들어 가는 모습,
나무 아래 앉아 바람이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그곳에서는 말이 필요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성당에서의 기도처럼, 사찰에서도 기도했다.
불경을 외우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온전히 나 자신을 느끼며
그저 조용히 숨 쉬었다.
기도는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도는,
성당의 장엄한 종소리 속에서도,
사찰의 맑은 풍경 속에서도 흐르는 것일지도.
나는 그 사이에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은 불교 신자인가요, 가톨릭 신자인가요?"
나는 대답한다.
"나는 나입니다."
나는 선재(善財)이고, 나는 미카엘이다.
하느님을 믿고 기도하며 살아가지만,
사찰의 고요함도 내 삶의 일부다.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땅을 딛고 묵묵히 걸어간다.
기도는 이름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기도는 내 마음속에 있다.
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고요함 속에서 나 자신을 찾는다.
나는 더 이상 이름으로 나를 구분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나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