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라디오 하나를 샀다.
산진(SANGEAN) WR‑16, 대만에서 만든 클래식 모델이다.
상태는 새것처럼 깔끔했고,
가격은 믿기 어려울 만큼 착했다.
집에 돌아와 플러그를 꽂고 다이얼을 천천히 돌렸다.
‘치직’ 하는 익숙한 노이즈. 주파수를 맞추자 곧이어 DJ의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음색은 맑고 따뜻했다. 마치 오래된 턴테이블을 듣는 듯한 기분.
이런 소리를 듣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그 순간,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사주셨던 라디오.
작은 안테나를 조심스레 뽑아 올리고, 밤마다 귀 기울이던 방.
팝송, 사연, 그리고 말없이 라디오를 건네던 아버지의 손.
라디오를 듣다 울컥했다.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어느새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진 탓일까.
요즘은 밤마다 WR‑16을 켠다.
WR‑16은 단순히 소리를 들려주는 기계가 아니다.
잊고 있던 기억을 끌어내 그때의 나, 그리고 아버지와 다시 마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