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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합니다.

by 이해하나

그는 수많은 현장을 거치며 몸으로 익힌 경험 위에
책과 기술 자료를 곁에 두고 스스로의 판단을 다져왔다.
판단은 빠르고, 행동은 단순했으며,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그의 손끝에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축적된 숙련된 기술력과
이론으로 뒷받침된 판단의 깊이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그의 말이 어려웠다.
“그렇게 하면 돼.”
“이럴 땐 그냥 이렇게 넘어가.”
정확한 설명 없이 던지는 말들 속에서
처음 듣는 나는 그 의미를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웠다.
답은 그의 안에 있었지만, 그 언어는 나에게 닿지 않았다.


처음엔 답답했다.
왜 명확히 알려주지 않을까.
왜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까.
왜 모두가 이렇게만 해왔을까.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그런 방식으로 배우고 적응해야만 했던 사람이었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았고,
문서보다 기억에,
체계보다 현장감각에,
설명보다 인내에 의존해 온 시간이었다.
그런 환경에서는,
무언가를 기록하기보다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아야만 버텨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를 탓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버텨냈고,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까지 이어져왔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그의 경험을, 후배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일.
그가 말하지 못했던 맥락을
문서로, 흐름으로, 체계로 정리하는 일.


그가 남긴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분명히 쌓인 지혜가 있었다.
그가 쓰던 언어는 그에게는 너무도 익숙했지만,
후배들은 그것을 번역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그에게서,
나의 시행착오에서.
그리고 이제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선배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했는데,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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