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史記)』 유림열전의 손숙통
누군가와 역사 이야기를 하다가 실수를 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유학자 '숙손통'을 발음이 꼬여 그만 '숙성통'이라고 말해버렸다.
"숙성통? 술 담그는 통 말하는 거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말실수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숙손통이라는 사람, 정말 거대한 '숙성통' 그 자체 아닌가?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했을 때 조정은 난장판이었다. 개국공신들은 대부분 시장바닥에서 칼을 휘두르던 거친 사내들이었다. 연회장에서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고, 기둥을 칼로 내리쳤다. 황제 유방조차 골머리를 앓았다. "내가 황제가 되었는데도 왜 이리 시장통 같은가."
이들은 말 그대로 날것이었다. 에너지는 넘치지만 그대로 두면 썩거나 식초가 되어버릴 불안한 존재들. 이 거친 에너지를 담아낼 그릇이 없었다.
그때 숙손통이 등장했다.
숙손통은 유방에게 말했다. "학자는 진취적인 일은 못 해도, 성과를 지키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의례를 만들겠습니다."
그는 노나라의 제자들을 불러 모아 몇 달간 조회 의례를 만들고 공신들을 훈련시켰다. 재미있는 건 그가 공신들을 내치거나 억지로 찍어 누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예법'이라는 시스템 안에 그들을 집어넣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술을 빚는 과정과 닮았다. 거친 원료를 통에 넣고, 적절한 온도와 시간을 주어 기다리는 것. 숙손통이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장락궁의 동이 트고, 새로운 의례가 거행되던 날. 어제까지만 해도 칼을 뽑아 들던 공신들이 정해진 위치에 서서 절도 있게 움직였다. 아무도 고개를 들어 떠들지 않았다. 엄숙한 침묵 속에 황제의 수레가 들어왔다.
유방은 탄식했다. "내 오늘에서야 비로소 황제가 귀한 자리임을 알았노라!"
숙손통은 알았다. 사람을 바꾸는 건 잔소리나 형벌이 아니라, 그들이 머무는 공기와 그릇을 바꾸는 거라는 걸. 그는 무질서한 조정에 품격이라는 향기를 입혔다. 싸구려 포도주스 같던 한나라 조정이 깊은 풍미를 지닌 와인으로 다시 태어난 순간이었다.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 급성장한 스타트업, 사춘기를 겪는 아이. 우리 모두는 어느 시기엔가 거칠고 불안한 날것이다.
이때 필요한 리더십은 밖에서 쪼아대는 망치가 아니다. 안에서 스스로 익어갈 수 있게 감싸주는 숙성통 같은 리더십이다. 실수해도 튕겨 나가지 않게 잡아주는 단단한 테두리가 필요하고,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유지해 주는 온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익은 뚜껑을 자꾸 열어보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날의 말실수가 자꾸 생각난다. 숙손통, 숙성통. 나는 지금 어떤 통에 담겨 어떤 향기로 익어가고 있는지, 혹은 누군가에게 넉넉한 숙성통이 되어주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