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이 지는 바다와 도시의 야경을 한번에 즐기자
어딜 가나 비슷비슷한 가족여행지. 뭔가 새로운건 없을까?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가족여행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항상하는 고민이다. 그 때, 문득 부산이 떠올랐다. 대도시라 볼거리, 먹거리는 당연히 많을테고 거리상 자주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새로운 즐길거리가 있지 않을까? 부산의 전통직인 대표관광지로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 감천문화마을, 용궁사, 태종대 등이 있겠지만 이걸로 아이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때 내 관심을 끈 건 KTX와 요트투어였다.
열차를 타고 가는 가족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러 4인동반석으로 예약했다. 가격도 일반석보다 저렴한데다 아이들에게 열차타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내심 기대가 되는 모양이다. 큰애는 함께 게임을 하자며 포커카드를 챙겨왔고, 둘째는 어디서 들은게 있는지 일부러 사이다와 삶은 계란까지 매점에서 사왔다. 평소 자동차를 이용해서 여행할 땐 뒷자리에서 핸드폰을 보거나 게임만 하던 아이들이 이렇게 여행에 적극적이라니… 평소 말도 별로 없던 녀석들의 수다를 듣다보니 금새 부산역에 도착했다. 출장으로 혼자 부산을 오갈때는 열차에 있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더니 가족들과 함께하니 오히려 너무 짧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쉽다.
요트하면 부자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대중화가 되어서 단체요트투어 정도는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국내 최대의 해양도시답게 부산에는 이런 요트투어 프로그램들이 가장 많은데, 대부분 광안리해변을 한시간 정도 돌아보는 단체투어가 일반적이다. 2명이 단독으로 이용하는 프라이빗투어도 있지만 가격이 단체투어에 비해 최소 5배 이상 비싸고, 어차피 이용시간과 동선은 동일하기 때문에 연인끼리 특별한 이벤트나 행사를 위한게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편안한 하와이안 셔츠를 걸치고 맥주 한병 마시며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망망대해를 여유롭게 감상하는 영화속 광경을 상상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단체투어도 주간과 야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광안리해변의 야경을 볼 수 있어서인지 야간시간대가 더 인기가 있다. 여기서 조금 더 팁을 드리면 해가 질 무렵의 시간을 예약하는 것을 추천한다. 석양과 야경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별로 해지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일기예보를 확인할 것)
예약시간보다 조금 일찍 선착장에 도착했다. 푸릇한 바다내음, 주변 노천카페와 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하는 조명등까지…벌써 기분이 설렌다. 선착장에서 노을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보니 프랑스에서 들여왔다는 최신형 쌍동식 요트가 슬그머니 다가온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차례로 승선을 한 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벌써 부터 내 눈은 어느 자리가 뷰가 좋을지 스캔중이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면 요트 앞쪽, 느긋하게 앉아서 경치감상을 즐기고 싶다면 2층 지붕쪽이 좋고, 광안리 해변을 다 돌고 돌아오는 길에는 후미쪽에 앉아 무료로 제공되는 다과를 즐기며 멀어져가는 광안대교를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
요트가 서서히 광안대교로 들어선다. 오늘따라 날씨요정이 날 도와주는지 맑은 하늘에 도화지처럼 적당히 펼쳐져있는 구름사이로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 때를 놓칠세라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어느새 광안대교의 웅장한 주탑과 마주하였다. 거대하고 투박하지만 주탑과 연결된 주케이블이 만드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광안리해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인간이 만든 인공구조물이 자연과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는걸까? 파리의 에펠탑처럼 광안대교도 처음 건설계획을 발표했을 때 해양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반대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부산의 상징물로 자리잡았으니 세상일은 참 모를 일이다.
낙조가 사그러들고 어둠이 내려올 때 쯤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주변의 요트들이 광안리 해변한가운데 둥글게 모여 동시에 폭죽을 터트리는 것이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장난삼아 하는 장난감 폭죽으로 하는 구색맞추기용이려니했는데, 여러 대가 모여서 동시에 그것도 꽤 오래 터트리니 제법 볼 만했다. 그래, 바닷가에 놀러 왔으니 이런 재미도 느껴봐야겠지? 이것때문에 사람들이 야간투어를 더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광안리해변은 완전히 어두워졌지만 광안대교의 조명과 멀리 고층건물들의 불빛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노을이 질 때의 화려했던 붉은 세상은 푸르름을 머금은 보랏빛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요트에 처음 올라탈때의 설렘과 불꽃놀이를 할 때의 흥분을 차분히 가라앉혀주는 색상이다. 돌아오는 요트 안에서 큰 딸은 인스타에 올릴 사진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