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치는 물개부터 부처님까지
나와 L은 이제 정식 부부이며 모든 삶의 동반자가 되었다. 즉 각자의 친구들과도 접점이 생겼다는 뜻이다. 특히 집들이에 모인 게스트라면 가볍게 스쳐가는 인연이 아니다. 저마다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사람들이다.
하루종일 먹고 떠들다보면 L의 친구들에게 나는 새로운 친구가 되고, 나의 친구들에게 L이 그렇다. 아주 자연스럽게 비슷한 듯 다양한 우리 친구들의 범위가 확장된다. 모두가 친구가 되는 파티. 다른 파티는 못 가봐서 모르겠지만 집들이에서는 가능하다. 16번의 집들이 파티동안 쌓인 애정을 담아 그들의 유형을 파악해보았다. 유형에 따른 더 세심한 대응을 미리 준비하면 좋다.
1. 반짝반짝 물개박수 형
대부분의 게스트가 여기에 속한다. 들어오자 마자 정말 고생했고 집도 너무 예쁘다고 손뼉 치며 극찬을 보내준다.
~박수 1 times~
본격적인 식사 전, 모두를 끌고 다니며 내가 구성한 공간별 컨셉과 타이틀 및 세부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는 도슨트 투어를 진행한다. 이때 이들의 활약도 함께 돋보인다. 마치 롯데월드에 온 것 같은 환호성이 온 집안을 울려 퍼진다.
~박수 2 times~
나의 약 10분간의 도슨트 투어가 끝날 쯤에 맞추어 L은 분주히 웰컴 드링크를 준비한다. 드디어 테이블에 모여 앉았을 때, 거실의 컨셉인 “Youth Park” 속 블루 레몬에이드가 각자의 코스터 위에 올려진다.
~박수 3 times~
이제 휘황찬란한 음식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여기엔 무엇이 들어갔고, 그것들은 전부 좋은 것들만 선별한 것이며, 요리는 이렇게 했고 등등 각 음식에 대한 개별 추가 코멘트를 덧붙인다.
~박수 4 times~
이제 직접 한술 떠 몸소 음미한다.
~박수 5 times~
*TIP : 이들의 박수 세례에 부끄럼없이 더 강하게 반응하면 분위기 활력도가 최대치를 찍는다. 기대치를 꺾는 괜한 겸손함보단 와우포인트를 살리는 당찬 자신감이 필요하다.
좋은 예 : “이 웰컴 드링크는 오늘을 위한 특급 레시피로 만들어졌답니다. 후후”
나쁜 예 : “아..뭐 별거 아니야. 그냥 밀키스랑 파워에이드 섞은 거야. 하하.”
2. 물음표 가득 궁금이 형
결혼을 생각 중이거나 신혼부부 혹은 곧 이사가 예정된 친구들. 이런건 어디서 샀어? 이렇게도 해놓을 수 있구나! 인테리어 구조나 가전/가구 그리고 자잘한 꿀템들의 사진을 찍어가고 구매 링크를 요청한다. 음식에 관심이 가득한 친구도 있다. 이건 어떻게 만든 거야? 나도 똑같이 만들어 먹을래! 참고한 레시피를 찾아 공유한다. 모두 매우 뿌듯한 순간이다. 한때 블로그를 열심히 했던 나로서 정보 공유는 익숙하고 즐거운 일이다.
또한 부동산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묻는 친구들도 있다. 우리가 매매한 아파트의 가격을 떠나 ‘내집마련’에 대한 키워드 자체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부분은 시원한 답변을 해줄 수 없다. 부동산과 관련하여 그럴듯한 지식이 많지도 않은데, 개인의 상황을 잘 모르면서 함부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제안할 수 없다.
단지 우리가 활용한 대출 및 요건은 이러했고, 예전부터 주식도 좀 해보고 이것저것 정책도 살펴보고 있다가 타이밍 좋게 따악 구했다, 읽어볼 만한 책들을 추천하며 함께 더 공부하자, 그래도 뭔가 궁금한게 있으면 같이 알아보자 으쌰으쌰! 이렇게 협동을 도모하며 마무리한다.
*TIP : 궁금이들은 보다 자세하고 빈틈없는 설명을 좋아한다. 물건의 용도, 책의 내용 등 꼼꼼하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야 한다. 관련 링크도 그 즉시 보내면 좋다.
좋은 예 : “이 상어 슬리퍼로 말하자면 수영장에 들이닥친 귀여운 아기 상어를 표현했지요. 지금 바로 링크 보냈으니 확인해보시지요.”
나쁜 예 : “이거 뭐더라? 몰라. 까먹었어.”
3. 갑자기 신혼 갈망 형
갑자기 당장 결혼하고 싶어졌다는 친구들. 파티 호스트로서 고군분투중인 귀여운 우리 둘의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죠.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당신의 욕망을 인정합니다. 하핫.
"언니. 나 언니처럼 남자친구랑 빨리 집 구하고 서재 만들어서 공부하는 게 꿈이야!"
"와 너 보니까 나도 진짜 빨리 결혼해야 되나 싶다."
신혼인 친구들은 이때는 같이 쓰레기만 버려도 재밌다며 함께 공감을 해준다. 사실 나는 아직도 신혼이라는 게 어색하다. 대출을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했고 실제로 신혼 가구 요건으로 받았으니 법적으로 신혼부부는 맞다. 그렇지만 여전히 낯설다. 결혼식을 하지 않아서 그런 듯싶은데, 글을 쓰며 신혼, 신혼부부 등 언급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이젠 조금 지겹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신혼부부가 되어 깨달은 인생 교훈이 있다. 세상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나름 재밌는 거구나! 사실 결혼이라는 게 막연하고, 당시 내 주위에 아직 결혼 커플이 없어서 딱히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었다. 아내, 남편이라는 호칭이 낯간지러우면서도 신혼부부라고 불리며 아주 즐겁게 살고 있다. 주변 친구들이 우리를 통해 결혼이 되었든 뭐든 긍정적인 기분을 느끼고 더 나아가 새로운 계기를 만든다는 점도 흐뭇한 일이다.
*TIP : 그들의 다짐에 대해 그저 응원 하면 된다. 후에 도움을 청할때 답을 줄 수 있도록, 혹은 참고할 법한 좋은 레퍼런스로 남을 수 있도록, 우리 둘이서 잘 살면 된다.
좋은 예 : “막막하긴 해도 어떻게든 둘이서 머리를 굴리면 뭐가 되긴 되더라구!”
나쁜 예 : “그냥 혼자 사는게 낫지. 어휴. 너무 많이 먹어서 등골이 축난다.”
4. 틈을 찾는 걱정인형 형
대표적으로 우리 엄마. 집에 뭐가 더 필요한지 어디를 더 손봐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세탁실 수도가 얼 수 있는데 어떻게 방한해야 할지, 침대 패드랑 양모 이불은 왜 아직도 안 사는지, 테이블을 큰거 사버려서 소파 둘 데가 없는데 편히 쉴 작은 소파라도 있어야 한다, 일반 냉장고에 김치를 두면 금방 익어버려서 맛이 없어진다 등등 우리가 아직 겪지 않아 모르는 일들을 미리 걱정한다. 엄마의 걱정 사항은 대부분 엄마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시기 때문에 언제나 환영한다.
설거지도 제대로 못하는 애가 밥은 어떻게 먹을지 항상 염려하는 할머니 걱정인형도 있다. 우리는 양가의 부모님과 조부모님까지 밑반찬, 김치, 쌀,과일 등 열렬한 조공으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살고 있다. 또한 난방비와 관련하여 내 걱정인형 친구가 있다. 대충 넘기려는 나를 진지하게 붙들고 연설했다. 이렇게 하면 절대 안된다고, 당장 줄일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그래서 두꺼운 커튼도 달고, 유튜브도 찾아보고, 보일러 타이머도 설정하고, 관리 사무실에도 물어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난방비가 많이 나온다. 관리비 내역서를 보면 아파트 전체를 두고도 우리집이 평균 이상인데, 내가 집에서 하루종일 글을 쓰다 보니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춥게 살기는 싫거든요!
*TIP : 집들이까지 오신 게스트의 걱정은 애정이 100%담겨있는 찐걱정이다. 고로 단단히 새겨듣고 해당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여 개선해야 한다.
좋은 예 : “헉! 어쩌면 좋아? 방법을 알려주시겠어요? 당장 착수하겠습니다!”
나쁜 예 : “몰라. 내가 알아서 할게."
5. 묵묵한 부처님 형
큰 반응이 없어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계속 미소를 짓고 있다. 집을 잘 꾸며놨고 음식을 맛있게 준비했고 이런저런 것들을 다 떠나서 무엇보다도 나와 L이 사이좋게 잘살고 있다는 게 제일 좋다는 우리 할아버지도 여기에 속한다. 집에 와준 모든 게스트들이 모두 진심으로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해주지만, 상대적으로 더 오랜 기간 함께 기쁘고 아픈 성장 과정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감동의 감도가 살짝은 더 깊을 수밖에 없다.
예쁘고 건강하게 우리를 키워주신 가족들과 힘들었던 시기에 묵묵히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 네가 행복해 보여서 나도 좋아. 별다른 감탄사 없이 담담하게 전하는 말에 나는 더 크게 외친다. 다음 파티 땐 더 맛있는 거 해줄게! 아직도 매번 나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던 때를 말하는 할아버지는 가기 전에 용돈도 쥐여주고 가셨다. 그 용돈으로 파티 분위기를 위한 가랜드 트리를 사고 기념으로 테슬라 주식도 1개 샀다. 할부지 덕분에 테슬라 주주 등극! 물론 현재 폭락해서 조금 쓰라리지만 뭐 어떤가. 그래봤자 나는 1주이지만, L은 더 많은 테슬라와 고통을 함께하고 있는 걸!
우리에게 전해진 뜨끈한 정들이 영원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지.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때때로 영원을 믿는다. 테슬라도 더 힘내자!
*TIP :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중요하다. 억지로 꾸며낼 수 없는 만큼 평소에도 서로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좋은 관계를 굳건히 다져놓으면 된다. 우리도 잊지 않으려 매일 명심한다.
좋은 예 : “앞으로도 이렇게 평생 잘 살테니 아무 걱정 마시라요. 하하핫”
나쁜 예 : “에이 뭐 아직 신혼이라 그렇죠 뭐. TV보면 부부들 말도 안한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