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몰뚜뚜 May 04. 2024

16) 야매로운 홈메이드 퀴진

실력보다 감과 끈기로 완성한 만찬



2023년 9월의 어느 일요일. 드디어 첫 번째 집들이가 열렸다. 8월 중순 입주 후 한 달간 미친 듯이 텅 빈 집을 채우고 치우고 채우고 치웠다. 제1회 파티의 게스트들은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그중 한 명이 당시 결혼 준비를 하고 있어 그 친구가 가능한 날짜로 간신히 일정을 잡았다.



이후 하루에 최소 2명부터 많게는 5명까지. 나와 L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번갈아 우리집으로 모였다. 5개월간 총 16번의 집들이 파티에 대략 60여 명의 파티원들이 참석했다. L이 처음 보는 나의 회사 친구들, 내가 처음 보는 L의 회사 친구들 등 각자를 처음 소개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잘 대접하고 싶다. 


이날의 사소할 수 있는 식사 자리가 쉽게 잊지 못할 훈훈한 경험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게 어떤 걸까? 어떻게 하면 더 즐겁고 더 특별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게스트에게 진정성 있는 환영과 감사를 전할 수 있을까? 정답은 쉬웠다. 우리가 직접 정성스레 거하게 음식을 만들자! 



(여유로운 주말의 브런치. 물론 준비는 매우 힘들었지만.)


그리하여 우리만의 홈메이드 퀴진 철학을 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넓지 않은 주방, 익숙지 않은 요리 실력, 무한하지 않은 예산 등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하여 다이닝 시스템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파티원들의 취향이 가장 중요하고 재방문자가 있을 경우 메뉴가 겹치지 않도록 더욱더 세심히 머리를 굴렸다. 독립도 요리도 홈파티도 처음인 우리 둘의 3가지 원칙은 아래와 같다.





[1] 탄성을 자아내는 압도적인 비주얼



(초대 손님 수가 늘어나면 음식도 함께 늘어난다.)


“와! 잠깐만! ”

(찰칵찰칵찰칵 x100)


핵심은 플레이팅이다. 맛은 기본이고 보기에도 황홀해야 궁극적인 다이닝이 완성된다. 시판 음료수의 조합은 레몬 조각이 들어있는 커다란 아이스볼과 민트잎을 더해 몰디브 바다를 담은 에이드로 진화한다. 텅 빈 페트병을 들키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비밀을 의심할 수 없다.


평범한 채소 위에는 눈꽃 치즈를 하늘 높이 쌓는다. 옐로우 컬러가 가득하니 붉은색 파프리카 훈제 파우더와 초록색 파슬리로 컬러감을 채워 넣는다. 성수동에 있는 인스타 감성 레스토랑에서 먹을 법한 애피타이저다. 전골은 푸짐한 고기의 양이 한눈에 보여야 한다. 채소와 버섯으로 색감은 물론 식감과 영양까지 밸런스를 다진다.



부족할까 싸우지 말고 맘껏 드시라.



피날레는 퍼포먼스다. 반드시 냄비채로 들고 가서 모두의 눈앞에서 뚜껑을 여는 냄비밥. 자! 이제 열립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몇 초간의 김이 관중의 기대감을 한층 더 끌어올린다. 이어서 돈 주고 사 먹는 솥밥 전문점에서는 불가능한 넉넉한 토핑과 흑미현미의 건강한 존재감이 서서히 드러난다. 누구도 섣불리 숟가락을 들지 않는다. 환호성과 함께 찰칵찰칵 카메라 사운드가 테이블을 가득 채운다. 곧이어 게스트들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우리의 식사 현장이 가득하게 남겨진다. 음식점을 차리라는 여러 제안에는 단호하다.


그건 할 수 없어요. 우리는 단가를 고려하지 않거든요. 이렇게 하면 망해요.



(오동통한 새우를 몽땅 털어 넣은 버터갈릭쉬림프)


비주얼은 결국 본판이 되어야 한다. 본판? 바로 그릇! 플레이트!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플레이팅'해도 정작 ‘플레이트'가 탐탁지 않는다면 호감도는 미궁 속으로 사라진다. 


아직은 값비싼 그릇들을 여유롭게 구매하지는 못해도, 깔끔한 식기 세트를 기본으로 하마와 돼지 얼굴의 접시, 강낭콩 모양의 소스 종지 등 다채로운 텍스쳐, 컬러, 사이즈의 식기류를 구비해 두었다. 또한 센스 있는 친구들의 선물로 색다른 식기류도 함께 예쁘게 쌓여가고 있다. 우리집에 모인 가지각색 좋은 그릇들을 통해 플레이팅의 매력도가 한껏 증폭된다.






[2] 시간이 걸려도 비교적 간단한 레시피



“이걸 다 만들었다고?”

앞서 강조한 제1원칙 덕분에 우리의 여러 취약점이 보완된다. 그럼에도 요리는 쉽지 않다. 숙련된 기술은 아직 없으니 시간을 들이자! 이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식재료 구매는 어찌해야 하나. 새벽부터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출동해야 하나? 아니. 근처 대형 마트나 새벽 배송의 신선 식품 퀄리티라면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대기업이 보장하는 품질을 무척 신뢰하는 편이다. 또한 검색 몇 번으로 그새 바뀐 나의 알고리즘에는 초보자를 위한 수많은 레시피가 쏟아진다. 그저 충분한 시간만 확보하면 된다.


(우리의 베스트셀러 탄생 현장)


우리의 베스트 메뉴 중 알배추 샐러드는 이렇다.


1. 예쁘게 생긴 알배추 한통을 4등분으로 길게 자르고, 깨끗이 씻고, 올리브 오일에 숨이 완전히 물렁물렁 거리기 직전까지 서서히 굽는다. 강불은 금세 타버리기 때문에 중불로 계속해서 뒤집어 줘야 한다.


2. 흑임자 소스를 그릇에 먼저 깔고, 구워진 알배추 잔뜩 눕히고, 눈꽃 치즈를 두 주먹 크게 올린다.


3. 전날 에어프라이어로 구워 준비해 둔 베이컨 칩을 한 움큼 얹는다. 베이컨 칩의 목적은 수프를 장식하는 식빵 크루통과 같다. 전체적으로 물렁한 알배추 샐러드의 식감에 짭짤한 바삭감을 더해준다.


4. 이제 마지막으로 파슬리와 훈제 파프리카 파우더를 솔솔 뿌린다.


(너무 많이 먹어서 우리는 질려버린 알배추 샐러드. 하지만 남녀노소 모두에게 반응이 좋아서 포기할 수 없음. 꼭 맥이고 싶은 예쁘고 아주 맛있는 메뉴.)


보시다시피 셰프만의 굽기 스킬 혹은 김치를 담그는 소스 배율 등 고난도의 손기술은 필요 없다. 저 묵묵히 과정 하나하나에 충실하면 요리가 완성된다.



메인 디쉬 중 하나인 얼큰 아롱사태전골의 레시피.


1. 파티 직전에 맞춰 신선한 고기를 구매하고, 2. 찬물에 담가 고기의 핏물을 빼고, 3. 한 시간 동안 대파와 마늘 등을 넣어 끓이고, 4. 고기만 건져내어 먹기 좋게 썰어서 손질한 버섯과 채소를 육수와 함께 끓인다. 


보통 참석 인원 대비 고기의 양을 과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푸짐해 보이는 상차림은 눈속임이 아니다. 부족함 없이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는다. 개인 그릇에 깨끗이 덜어 먹기 때문에, 남은 고기는 다음날 둘이서 또 맛있게 먹는다. 공을 들이는 방향을 기술보단 시간을 택했다. 






[3] 절대로 멈추지 않는 음식의 흐름



“나 지금 할머니집 왔어?”



웰컴 드링크를 시작으로 애피타이져, 메인 디쉬, 각종 사이드 등 커피, 디저트 스낵과 과일까지 쉼 없이 이어진다. 당신의 입은 금일 휴식 시간이 없습니다. 너무 배부르면 아쉽게도 생략되는 메뉴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언제나 음식은 풍족하다. 모두가 함께 모인 파티의 날이니까! 그러나 막무가내로 음식을 벌크로 쌓아두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어떠한 흐름으로 먹고 떠드는지 대략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면 소주를 각 2병씩 먹는 A 그룹과 술 한 방울 없이 먹방만 주구장창 이어가는 B 그룹이 있다. 주요 메뉴는 비슷할 수 있으나 조금씩 달라야 한다. 


A그룹의 경우 뻔하지만 국물이 있는 메인 메뉴가 좋고 가벼운 감자튀김, 꼬치류, 과일, 팝콘 등을 준비한다. 보통 소주 애호가들은 밥도 잘 먹어서 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필요한 소주 주종 N병과 일품 진로도 한 병 사놓으면 좋다. 


B그룹은 쉽다. A그룹이 먹는 음식만큼 준비하고, 여기에 빵이나 아이스크림 등의 디저트를 종류별로 마구마구 더 추가하면 된다. 아마 그 두 집단은 서로 의아해할 것이다. 


“어떻게 그걸(=그 술을) 다 먹어?”
“어떻게 그걸(=그 음식을) 다 먹어?”

나는 보통 B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A그룹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놀랄 정도로 술을 많이 먹곤 한다. 그만큼 즐거운 순간이라는 것이지. 암요. 


(배부르다면서 끝까지 먹고 간 앙버터 미니 붕어빵. 붕어빵을 갈라 소분해둔 무염버터를 야무지게 넣으면 완성.)


밝은 햇살은 어느덧 새까만 야경이 되었다. 

따끈한 미니 붕어빵을 하나씩 호호 불며 먹을 때쯤이다. 배불러서 더 이상은 못 먹겠어, 그런데 이 붕어빵 왜 이렇게까지 맛있는 거야? 붕어빵까지 홈메이드는 아니지만 가장 맛있는 에어프라이어용 붕어빵을 추적해 냈다. 시간을 잘 봐가며 몇 번 뒤집어줘야 한다. 앞서 등장했던 음식사랑 나라사랑 B그룹은 팥붕어빵에 기어코 버터 조각을 넣어 앙버터 붕어빵을 창조하고야 만다. 


이때 테이블에는 붕어빵만이 아닌 샤인 머스켓, 딸기 등의 상큼한 과일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파티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오늘 너무너무 진짜 잘 먹었고, 다 맛있고 재밌었어. 초대해 줘서 고마워. 앞으로 더 잘 살아!


게스트의 평균 연령은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으로, 나 역시도 그렇고 신혼집 집들이가 처음인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더더욱 열과 성을 다해 우리만의 파티를 창작했다. 모든 노고는 게스트의 진심이 담긴 표정과 마지막 인사로 뿌듯하게 치유된다.









이전 16화 15) 전속력으로 집꾸미는 5 STEP -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