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목적지가 하나가 된 지금
토요일 혹은 일요일 밤 9시 30분쯤, 지하철 개찰구를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눈다. 도착한 열차를 향해 아쉬운 발걸음을 옮긴 L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문이 닫힌 뒤 점점 멀어지는 창문 너머 L에게 괜스레 투정 부리며 외친다. 신데렐라야 잘 가렴! 이제 L은 *BMW를 타고 2시간을 달려야 집에 도착한다. 외제차를 끌고 다녔냐고?
아니요. 바로 *BUS/METRO/WALK.
대한민국의 훌륭한 대중교통에 항상 감사한 뚜벅이다. 우리는 서로 꽤 먼 거리에 살았지만, L은 언제나 나를 데려다주었다. 집도 회사도 각자 멀리 있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간신히 만나거나 사정이 있으면 아예 못 볼 때도 있었다. 대학교 시절에도 비슷했다. 공강 일에 맞춰 고속버스를 타고 상대방의 학교 주변으로 가거나, 주말마다 중간 어딘가에서 만났다.
그런데 지금은 함께 있어야 당연해졌다. 떨어져 있는 순간이 오히려 예외가 되었다.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집으로 향하던 7년의 섭섭한 밤이 점점 흐릿해져 간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집에 가자."
자연스럽게 지하철 앱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던 각자의 도착역. 나는 나의 집으로, L은 L의 집으로. 이제 그 2개의 도착지는 하나가 되었다. 우리집을 떠올렸을 때의 ‘우리집’이 바뀌었다. 더 이상 우리집은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공간이 아니다. 나와 L이 발품을 팔고 대출을 실행하고 계약서를 쓴,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실컷 먹고 놀기도 했던 바로 지금의 집이다. 현관부터 거실, 침실, 주방, 화장실의 핸드워시 하나까지도 우리의 취향과 편의로 세심히 선별하여 구성한 우리만의 우리집.
둘 다 대학생 시절에 자취 혹은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독립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간 특성상 짐도 많이 둘 수 없으니 크게 할 만한 것도 없고, 주말마다 각자 부모님 집으로 갔기 때문에 평일 동안만 묵는 숙소 정도로 여겼다. 그 이후의 시간이 흘러 첫 정식 독립이 지금의 신혼집이다.
약간의 세미 독립 경험이 전부인 우리 둘에게 진짜 살림의 시작은 상상 이상으로 힘겨웠다. 둘이 사는데 빨래는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건지, 창틀은 왜 이렇게 빨리 더러워지는지, 난방비는 왜 이렇게 비싼 건지, 수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신혼집이 아닌 첫 독립이기에 쏟아지는 물음표에 익숙해져야 했다. 나와 L 모두 의견 차이가 생길 때 고집을 부리거나, 쌓여있는 할 일을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성격이 아니라 매우 다행이다. 그저 우리는 독립 초보 듀오로서 익숙해져야 할 살림 기술을 함께 단련하고 있다.
여전히 서툴고 불완전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고 또 성장시키는 우리집.
오직 우리 둘 만이 주인공인 우리집.
오늘도 우리는 자신을 돌보고
서로를 아끼며 삶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