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아주 먼 훗날의 슬픔이기를
어느 날 아빠에게서 친할아버지의 묘비에 새길 문구를 고른다는 메시지가 왔다.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제 현실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에, 굳이 벌써부터 이렇게 해야 하는 건가 싶은 슬픔이 몰려왔다. 하지만 나보다 더 큰 상실감을 느끼는 건 아마 나의 아빠일 테지. 미리 다 준비해 두면 더 장수한다는 엄마의 말과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게 그래도 감사한 건가 싶은 마음으로 혼자 훌쩍였다.
아주 오래전, 정확히 초등학교 입학도 전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너무 어린 기억이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가족의 장례식이 치러진 적은 없다. 부모님을 비롯해 일가친척 모두 열심히 주어진 생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 누군가의 장례식 소식이 들리면, 벌써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문득 너무 두려워진다. 제대로 겪어 본 가족의 장례식이 없다는 건, 다가올 장례식만 남았다는 말과 같다.
나의 친할아버지는 하루에 등산 4시간을 훌쩍 넘게 다닐 정도로 건강했다. 1년 정도 되었을까. 아흔에 가까워진 어느 날, 작은 부상 이후 갑자기 몸의 활력을 잃기 시작했다. 당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더 이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없어 병원 침대에만 누워계신다. 수십 년간 산을 오르내리던 건장한 몸은, 단어 그대로 '거짓말처럼' 뼈밖에 남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제 예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항상 가까이 살며 나의 어린이집 등하원도 담당했던 할아버지는 곧 다가올 나의 결혼식에 올 수 없다. 그 결혼식을 가장 재촉하던 사람이었으면서.
할아버지, 내 결혼식에 뭐 입고 올 거야? 하나도 안 멀어. 아빠나 작은 아빠가 데리러 올 테니까 1시간 쪼금 더하면 금방 와. 너무나도 당연했던 우리의 대화는 '거짓말처럼' 간절한 희망사항이 되었고, 하지만 모두 그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얼핏 스쳐가는 상상으로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이제 할아버지를 보려면 병원에 면회 신청을 해야 한다. 마스크를 끼고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급하게 안부를 물으면, 여기까지 먼데 왜 또 왔냐면서 빨리 가라고 한다. 집에 자주 안 온다고, 전화도 잘 안 한다고 맨날 나한테 틱틱거리던 할아버지였다.
"나는 너 결혼식 못 가는 게 너무 서운해!"
"내가 더 서운해! 그니까 할아버지가 더 노력해! 그래서 와!"
추석을 맞이해 들렀던 병원에서 할아버지가 말했다. 서운하다고. 내가 더 서운하니까 노력해서 오라는 나의 장난스러운 말에 할아버지의 얼굴이 서글퍼진다. 나는..이제 못 가..하며 체념한다. 아빠한테 물어봤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냐고. 아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할아버지는 이제 나를 보면 맛있는 거 많이 먹으라는 말만 한다. 열심히 뭐 뭐해라 하던 염려 섞인 잔소리는 없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둘이 잘 지내라는 말 뿐이다. 삶의 끝자락에 남는 아쉬움이 고작 그런 것들이라 느껴지면, 내 일상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좀 더 단순해진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그 끝이 왜 이렇게 벌써부터 슬프고 허망한 걸까, 결국 우리 모두가 생을 마치는 건 똑같은데. 내가 가야 할 장례식들이 조금 더 멀리 있었으면 좋겠다. 마냥 모른 척 하기엔 이젠 그럴 수도 없지만, 부디 먼 훗날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