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2000원만 내주면 이 인형을 살 수 있어."'
막 군대를 제대했던 어린 남자가 여자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싫어. 남자는 울먹이며 아버지께 전화로 구조를 요청했다. 때마침 휴무로 집에 있던 아버지는 동네 ATM기계로 달려가 아들에게 이천원을 송금했다. 가까스로 손에 넣은 인형. 여자친구가 매일 애용하는 귀여운 이모티콘 캐릭터다. 그녀에게 반드시 이 인형을 선물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기뻤다. 비록 이천원도 보태주지 않은 매정한 여자지만.
또 다른 시점.
굳이 갖고 싶지도 않은 인형을 무리해서 사주려는 이유는 뭘까?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아 건네 줄 지폐 하나 없는데. 그렇다면 여자가 먼저 결제하고, '2000원'을 제외한 돈을 남자에게 입금받는 방식인가? 아니면 분할 결제 요청 후, 계산대에서 나란히 결제를 이어가는 모습인가? 난 그저 만만한 무료 이모티콘이라 남발했을 뿐이라고! 필요 없으니 제발 괜찮다고 말하는 여자친구를 만류하며 아버지께 전화 거는 남자친구. 여자는 일행이 아닌 척 다른 코너로 숨었다.
2016년 7월의 어느 날, 이것은 삼성역 카카오프렌즈 코엑스점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이다. 당시 말년 병장 월급이 21만원 정도였으니, 그 인형은 월급의 10%를 넘는 사치품이었다. 이천원만 요구하며 선물하려는 자와 이를 외면하며 선물 받지 않으려는 자의 진땀 나는 기싸움. 실제 각자의 이유로 약간의 구슬땀을 흘렸다. 너무 다급해서, 너무 창피해서. 치기 어린 자존심 겨루기 끝에, 그 인형은 남자친구1의 고집스러운 선물로 여자의 방에 놓여졌다. 대놓고 귀여우면서도 괜스레 얄미운 듯한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요.'라는 표정으로. 이후 10년의 시간이 채워져 가는 지금, 그 웃기는 녀석은 아주 위풍당당하게 우리의 침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천원이 모잘랐던 그때의 우리는, 우리가 함께 돈을 벌고 쓰고 모으며 우리만의 보금자리까지 만들 미래를 몰랐다. 아무것도 몰랐던 건 인형뿐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어떤 부분은 부족한 채로 남아있지만, 빠른 시일 내의 우리가 거뜬히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예를 들어 어제 방문했던 카센터에서 "이걸 고쳐서 쓰게요?"라는 말을 들은 우리가, 기약은 없지만 하여튼 곧 새 차의 오너가 되는 것처럼. (부디 제발) 이러한 희망과 야망으로 '이천원'이 아닌 '이천억'이라는 꽤나 거창한 이름을 인형에게 선물했다. 이천억과 함께 겪게 될 우리들의 끊임없는 풍파와 성장의 신화를 기리며, 펼쳐질 미지의 미래를 우선 해맑게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