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보헤미안으로 가는 길
♪ BGM : 임재범 - 비상 (링크) ♪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줄 거야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할 거야
더 이상 아무것도 피하지 않아
이 세상 견뎌낼 그 힘이 돼줄 거야
힘겨웠던 방황은
오늘은 해맑은 크루아상 권법을 몸소 실천 중인 50대 후반 여성을 만나보겠습니다. 바로 정몰뚜뚜를 잉태하신 해바라기킴(가명)인데요, 하루아침에 날벼락처럼 보헤미안이 되어 현재 그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자세히 알아보시죠.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33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보헤미안 1년 차가 된 해바라기킴입니다. 작년 말에 희망퇴직 제안을 받고 갑작스러웠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Q. 희망퇴직이라니. 당시 심정이 어땠나요?
사실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죠.(웃음) 정년퇴직까지 아직 몇 년이 남아있어서 이 한 몸 바쳐 최선을 다해 일했어요. 그러다가 정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당일 통보받은 거예요. 그것도 숨 가빴던 월요일 업무를 다 마친 후 퇴근 시간이 지나서요. 시대의 흐름이다 뭐다, 한 발짝 밖에서 바라보면 요즘 시대에는 특별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대상이 제가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너무 잔인하고 아픈 이야기예요. 지금까지의 인생 절반 이상을 쏟아냈던 곳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건지. 가족들은 물론이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까지 큰 충격에 빠져 같이 울고 불고 난리였다니까요. 그 상처를 억지로 잊어냈다기보다는 슬프고 허무했던 감정들을 다 하나하나 겪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아직도 괴로운 꿈을 꾸기도 해요. 자그마치 33년의 시간이에요. 그래도 뭐,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회사밖으로 나왔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Q. 월요일을 맞이하는 마음이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아주 행복합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평일은 내내 당연히 출근하고, 금요일 저녁에 잠시 숨을 고르고 토요일 저녁부터 슬펐어요. 다음 주 업무는 어떻게 시작하고 회의하며 보고는 또 어떻게 할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예민하게 고민하면서 제 자신을 들들 볶았거든요. 자유인이 된 지금은 마냥 행복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독한 감정도 있더라고요. 좋든 싫든 언제나 많은 사람들과 둘러 쌓여 살다가 혼자 나온 거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나를 위한 계획이 필요해요. 누구를 만나러 간다던지, 무엇을 배우러 간다던지. [고독이 곁들여진 행복]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이를 잘 활용하는 저만의 노하우를 터득해가고 있답니다.
Q. 벌써 은퇴하신 지 1년이 되어가신다고요. 그동안 뭐 하고 지내셨나요?
제 자신에 대해 깊이 탐구 중이에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익숙하고 지루한 주제일 수 있겠지만, 전 이제야 시작했답니다. 주변 은퇴 선배님들의 조언이 하나같이 무작정 이것저것 다 해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동네 주민센터에서 캘리그래피를 시작으로 어반스케치, 팝아트, 아크릴화 등 특히 미술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어요. 아파트 헬스장에서 줌바 댄스도 등록해서 처음으로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Q. 그림에 푹 빠지셨군요. 평소에도 취미로 그림을 그리셨었나요?
아니요. 전 취미가 아예 없었어요. 주 7일을 오로지 일만 생각했거든요. 한때 피아노를 배워 보기도 했는데, 오히려 시간을 제대로 쏟을 수 없어서 더 큰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차라리 취미를 없애는 게 맘이 편했어요. 그러다가 이제야 어렸을 때부터 동경만 하던 그림 그리기에 푹 빠진 거죠. 반년 전에 시에서 운영하는 컬러테라피 수업을 들었는데, 색깔에 나를 투영할 수 있다는 말이 제 심금을 울렸어요. 이후 그림을 그리며 ‘궁금하다고 생각도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해 찬찬히 파고들고, 배우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화가가 꿈이신가요?
화가..는 6개월 차 미술 초보자 입장에서 아직 좀 거창하고 부담스럽네요. 그렇지만 계속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선 작가 정도로 말해도 될까요? 그림이든 글이든, 무언가 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사람을 꿈꾸고 있습니다.
Q. 올해 제일 재미있었던 순간 하나 뽑아주세요.
서해 바다에서 수영한 날이요. 난생처음으로 튜브에 몸을 맡기고 바다에 둥둥 떠있었어요. 애들이 어렸을 때 바닷가에서 같이 손을 잡고 발을 담그거나, 애들이 탄 튜브를 밀어주는 정도는 해봤었죠. 그런데 이번엔 제가 저를 놀아줬어요. 그냥 별거 없이 온몸이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게 냅뒀어요. 와, 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나는 물에 젖는 걸 하나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시시하죠? 분명히 예전에도 바다를 즐길 기회가 없진 않았는데, 왜 그땐 몰랐을까요? 왜 나는 그렇게까지 나를 다그치고 못살게 굴었던 건지. 이제부터는 더 재밌게 이것저것 질러보고 싶어요. 그동안 못해본 경험이 사소한 것부터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더 설레네요.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나요?
나만의 스타일대로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어요. 딸이 전시도 하게 해 준다던데,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말을 믿고 열심히 제 실력을 키우려고요. 그리고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고민이 빠질 수 없겠죠. 10개월간의 구직 급여도 이제 끝났거든요. 국민연금 받기 전까지 퇴직금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솔직히 조금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잘 해낼 거예요. 아, 정말 너무 일만 하면서 살았네요. 그리고 진짜 진짜 더 중요한 건 건강! 힘들었던 출퇴근과 직장생활이 담당했던 절대적인 활동량이 없어졌잖아요. 이젠 더 막중한 책임감으로 운동을 해야겠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해바라기킴에게 해맑은 크루아상 권법이란 무엇인가요?
피할 수 없는 원치 않은 상황에도 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요. 실컷 욕하다가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고 또 울면서 맛있는 빵 먹으러 나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여전히 악몽을 꾸기도 하는. 갑자기 과하게 우울해지거나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여기면서, 인생의 다채로운 맛을 끝까지 겪어보겠습니다.